■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통합당에서 출마한다고요?"
- "지금 지지율이 잘 나오고 있긴 하죠. 이쪽에선 1위긴 한데.. 그게 참 뭐랄까.. 그렇다고 그냥 출마할 수 있나요? 그 분이 뭐라도 해야죠." (통합당 TK 의원 A)
TK(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한 미래통합당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지율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마냥 좋아할 수도,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는 딜레마. 이를 두고 윤 총장이 정치를 하려면 '뭐라도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 "(뭐라도 하라는건 사과를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렇죠. 사과가 됐든 해명이 됐든 당원들에게 '그 때의 일'에 대해서 뭘 하긴 해야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통합당에서 출마한다면 당원들이 받아줄 수 있을까요?" (통합당 TK 의원 A)
이 의원이 언급한 '그 때의 일'이란 보수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국정농단 수사를 말합니다.
당시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윤 총장이 박근혜 정부 주요 인사들을 줄줄이 사법처리한 데 대한 앙금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며 문재인 정권과 각을 세우는 모습, 그로 인해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야권 후보 중 1위까지 오른 현상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좋긴 한데, 애증이랄까요. 구원이랄까요.
TK 지역 당원들에게 '미래통합당 대선 후보, 윤석열'은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카드인가 봅니다.
한 친박 의원도 MBC와의 통화에서 "현재 윤 총장의 지지율은 본인이 뭘 해서 오른게 아니라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핍박받는 모습때문에 얻은 것 뿐이고, 그런 걸로 나라의 지도자가 되느냐 안되느냐를 따지는 자체가 웃기는 얘기"라며 윤 총장 지지율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본인 의사에 달려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밖의 사람'인 윤 총장의 지지율 상승이 그리 싫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통합당 대선 후보로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자, "본인 의사에 달려있다"고 답했는데요.
현직 검찰총장으로서는 아니지만, 민간인 윤석열은 통합당 대선후보로 받아 줄 가능성을 열어둔 겁니다.
최근 실시된 한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지율은 13.8%로 범야권 후보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2%에서 5%대에 머물고 있는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등 야권 잠룡들과도 큰 격차를 보였는데요.
통합당 내 분위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원내로만 보면 초선 의원들이 전체 103명의 절반이 넘는 59명이나 돼, 상당수가 윤석열 총장과 애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최근 윤 총장 본인이 정치인들이나 쓸 법한 '독재', '전체주의'같은 과격한 정치적 수사를 써가며 반(反)문재인 지지층을 열광시키고 있고요.
그러면서 윤 총장은 자의든 타의든 여의도까지 영향을 끼치는 반(半)정치인이 돼 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고구마 화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진중한 언행을 이어가고 있는 이낙연 의원이 윤 총장에 대해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이니까 말이죠.
'본인 의사에 달려있다'는 꽃놀이패 형국이 되어서 일까요?
올해 초 언론사의 지지율 조사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해달라고 했던 것과 달리, 윤 총장은 이젠 지지율 발표에도 별다른 거부감을 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 "통합당은 이익집단. 지지율 1위면 누군들…"
미래통합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통합당의 성격을 '이익집단'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통합당 주류의 무게중심은 이익이 되는 쪽으로 언제든 옮겨갈 수 있고, 당 내 인사든 외부 인사든 그가 과거에 뭘 했든 '일단 이기고 보자.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 기본 정서라는 얘깁니다.
- "우리는 민주당처럼 이념집단이 아니에요. 민주당에서 어떤 후보가 과거 DJ나 노무현 대통령을 부정했던 전력이 드러나면 그쪽은 난리가 날겁니다. 절대 못받아주죠. 그런데 통합당은 달라요. 지지율 1위 후보고 당선 가능성이 있으면 과거 흠결이 좀 있더라도, '다 옛날 얘긴데,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넘어가는게 우리 정서에요. 지금 거대여당이 이렇게 무도하게 하는 상황에서 정권을 되찾을 수 있다면 뭘로 문제를 삼겠어요?" (통합당 핵심 당직자 B)
통합당은 역대 선거에서도 시장의 변화, 민심과 여론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될 사람을 중심으로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는데요. 원조친박이었다가 지금은 '배신자' 낙인이 찍힌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 "(그럼 유승민 전 의원도 받아줄 수 있나요?) 통합당 후보로요? 당연히 가능하죠. 우리는 이익집단이라니까요. 지지율 1위만 되면 '배신자' 이런거 다 없어질껄요. 단, 그 분이 본인 지지율을 20% 이상은 만들어서 와야죠. 지금 지지율로는 안되죠." (통합당 핵심 당직자 B)
■ 추대? 경선? 사퇴?…아련한 반기문의 기억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지지율이 한 때 40%에 육박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야를 통틀어 단연 1위였고, 당시 새누리당은 반 전 총장을 영입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고, 새누리당 지지율과 함께 반 전 총장의 지지율도 급전직하 떨어졌습니다.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자,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바른정당조차도 반 전 총장에게 후보 추대가 아니라 당내 경선에 참여하라고 종용했고, 결국 반 전 총장은 보수정당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귀국 3주 만에 쓸쓸히 정계를 떠났습니다.
반기문 후보의 전철을 밟지 않고, 통합당이 윤석열이라는 이름으로 결집하려면, 윤 총장의 지지율은 지금의 13%보다 더 올라야 합니다.
앞으로 더 오르지 못하거나, 밑으로 빠지게 되면 이익에서 멀어져 과거 반기문 후보처럼 바로 내쳐질 수 있습니다.
- "윤석열도 지지율 떨어지면 끝이죠. 이익집단인데 지지율 빠진 사람한테 매달릴 이유가 없는거 아니에요? 또 13%로는 좀 부족하죠. 아무리 이익집단이라도 13%는 성에 안차지." (통합당 핵심 당직자 B)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약 1년 7개월.
'당 밖의 사람'인 윤 총장이 혼자 잘 나가고 있지만, TK 저변에 깔린 복잡다단한 정서를 달래줄 묘안도, 지지율이 급격히 빠질 경우 이를 대체할 플랜B도 통합당엔 아직 없습니다.
마냥 좋아할 수도 내칠 수도 없는 통합당의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정치
이기주
[국회M부스] "마냥 좋아할 수도, 내칠 수도 없는…" 통합당의 윤석열 딜레마
[국회M부스] "마냥 좋아할 수도, 내칠 수도 없는…" 통합당의 윤석열 딜레마
입력 2020-08-08 09:00 |
수정 2020-08-0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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