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논쟁]
"국내 대기업의 이사회에 들어온 해외자본이 핵심 기술과 관련된 정보들을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기술패권 전쟁을 단순한 투정으로 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해외 경쟁 기업의 관계자가 투기자본과 결탁해 우리 기업의 감사위원에 선임되어 기밀이 유출되고 소송 남발로 기업 경영이 침해된다는 과장된 선동은 접어야 한다."
팽팽한 논쟁입니다.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과 관련한 논리 대결이죠. 여야가 공방을 벌인 걸까요?
[與 최고위원들, 공개 석상서 '설전']
놀랍게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제기된 논쟁입니다.
16일 최고위원회의의 풍경으로, 당사자는 양향자 최고위원과 박홍배 최고위원입니다. 여당 지도부의 공개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이견이 표출된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양향자 "한목소리 우려에는 귀기울여야"]
삼성전자 상무 출신인 양향자 최고위원은 경제 3법의 핵심인 '감사위원 분리선출 3%룰'에 대한 우려를 계속 제기하고 있습니다. 외국계 투기자본 또는 해외 경쟁기업이 국내 기업에 침투, 중요한 기술들을 탈취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3%룰'은 기업이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입니다. 감사위원을 대주주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뽑지 말고, 제대로 대기업의 전횡을 감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뽑으라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조항이 도입되면 당초 의도와 달리 감사위원 선출에 외국계 투기자본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고, 기술 유출에도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게 양 최고위원의 생각입니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모든 기업이 절박하게 감사위원 분리 선출 및 3% 규정을 거론했다. 기업들이 한목소리로 이야기 한다는 것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홍배 "왜곡된 선동과 과장 멈춰야"]
반면, 금융노조 위원장 출신인 박홍배 최고위원은 지나친 우려라고 반박했습니다. 해외 경쟁기업 관계자나 투기자본이 우리 기업의 감사위원으로 선출되고, 이로 인해 기밀이 유출된다는 건 가능성도 낮고 과장된 얘기라는 겁니다.
박 최고위원은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왜곡과 과장된 선동을 멈추고 상식을 회복해야 할 때"라며 "이 법으로 기업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 최고위원은 양향자 최고위원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이같은 반박에 나섰는데, 일순 회의장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핵심 쟁점 '3%룰'…민주당 내 기류는?]
일단 원안대로 처리하자는 분위기가 다수인 것처럼 보입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15일 "재계에서 가장 반대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만 하더라도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더 강력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면서 옹호했습니다.
그렇다고 양향자 최고위원과 같은 의견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앞서 이낙연 대표는 "외국의 헤지펀드가 우리 기업을 노리도록 틈을 열어준다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며 완곡하게 3%룰에 대한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아직은 야당과의 힘겨루기에 앞서 여당 내 교통정리 과정이 흥미롭고, 어떻게 결론이 날지도 궁금한 상황입니다.
[국민의힘 내부도…여전한 '온도차']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도 '공정경제 3법'을 두고 계속해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찬성 및 추진 입장입니다. 사실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던 김 위원장으로서는 당연합니다. 그는 2011~2012년 새누리당 시절 경제민주화 법안을 만든 때를 떠올리면서 "그때 만든 공약은 지금보다 더 강하게 만든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내 의원들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만 해도 공정경제 3법인지 기업규제 3법인지 모르겠다면서 중립적으로 '경제3법'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습니다. 기업에 주는 악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다른 의원들 역시 '기업을 옥죄는 법'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공정경제 3법…노동관계법과 연계?]
김종인 위원장이 제안한 '노동관계법 개정' 문제를 두고도 당내 시각차가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두 법안을 꼭 연계해서 처리하자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여당이 '공정경제 3법'을 처리하고 싶다면 '노동법 개정안'도 패키지로 받아야 한다, 이런 의미는 아니라는 겁니다.
반면 주호영 원내대표는 두 법안이 동시에 처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입니다. 가뜩이나 '공정경제 3법'에 담긴 기업 규제적 속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렇게 하려면 노동시장 경직성 문제도 해소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속내로 보입니다.
이 문제는 공정경제 3법 처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용 취약계층이 증가한 상황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노동유연성을 더 높이는 법안을 추진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야당이 '패키지 연계' 입장으로 정해진다면 여야 합의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끝 보이는 국감…공정경제 3법 행방은?]
여야는 국정감사 증인 채택 등을 두고 전선을 형성한 채 팽팽한 힘겨루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 당이 뭉쳐서 상대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감이 끝나면 입법을 두고 이같은 전선이 다시 만들어질 겁니다. 그런데 '공정경제 3법'은 방정식이 좀 복잡해 보입니다. 법안 내용은 물론 처리 방식을 두고 같은 당 안에서도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공정경제 3법'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국회를 통과하게 될지 시선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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