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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강경화는 '패싱' 책임 피하려고 여자임을 방패 삼았나?

[외통방통] 강경화는 '패싱' 책임 피하려고 여자임을 방패 삼았나?
입력 2020-11-18 10:01 | 수정 2020-11-1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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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통방통] 강경화는 '패싱' 책임 피하려고 여자임을 방패 삼았나?
    강경화 외교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강 장관이 16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솔직한 소회를 밝혔는데, 일부 언론이 이를 비판적으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강 장관 솔직 발언에 논란

    조선일보는 외교가를 인용해 "정부의 외교 정책 난맥상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 장관이 젠더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외교부 안팎'에서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을 왜 여성 문제로 대응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자기 방어를 위해 여성 문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외통방통] 강경화는 '패싱' 책임 피하려고 여자임을 방패 삼았나?

    조선일보

    그러나, 발언의 앞뒤를 살펴보면 보도와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교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논의 중에 나온 발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을 여성 문제로 대응한다'는 것은 부정확한 비판이다.

    이날 프로그램엔 강 장관의 대담 상대는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가 초빙됐다. 한국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에 대해 언급한 것도 다이아몬드 교수였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한국 사회의 만성적 위기는 여성의 역할 문제"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이 '만성적인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을 하면서 그 이유로 젠더 문제를 언급했다.
    [외통방통] 강경화는 '패싱' 책임 피하려고 여자임을 방패 삼았나?
    "한국은 이미 위기 속에 있죠. 바로 대한민국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건 한국 여성들에게도 비극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성들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게도 위기입니다. 한국은 5천1백만 명의 인구에도 불구하고 마치 (절반인) 2천5백만 인구만 있는 것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어서 "한국인들이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줄곧 자원고갈, 기후변화 문제와 함께 사회적 불평등이 중대한 위기라고 경고해왔다.
    [외통방통] 강경화는 '패싱' 책임 피하려고 여자임을 방패 삼았나?
    홍석천 "마음 할퀴는 일 많아‥20년 전 커밍아웃 때 아픔 느껴"

    이후 패널인 방송인 알베르토 씨와 홍석천 씨가 코로나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차별과 위기'에 대해 말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알베르토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홍석천 씨는 이태원 클럽 사건을 거론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얘기했다. 특히 오래 전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 '오픈리 게이'인 홍 씨는 "(최근 사태를) 보면서 20년 전 커밍아웃 때 당했던 아픔을 느낀다"고 진솔한 속내를 털어 놓았다.

    논란의 발언은 여기에서 나왔다.

    강 장관은 패널들에 질문에 답하며

    "저도 여성으로서 이제 첫 외교 장관이라고하는 막중한 자리에서 기를 쓰고 다하고 있습니다만 저도 간혹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가' 이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의 남성 위주의 기득권 문화 속에서 '내가 받아들여지고 있나' 질문을 할 때가 없지 않습니다"고 했다.

    소수자로서 겪는 불편한 경험을 먼저 솔직하게 드러낸 이들과 소통하려는 차원에서 한 말로 풀이된다. 나에게도 '이런 고민이 있다'는 공감의 대화를 하려한 셈이다. 맥락상 '여성 장관이라 패싱당했다'는 변명의 의도가 읽히는 지는 보는 이들의 판단에 맡긴다.

    강 장관은 또 고충 토로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다소 김빠지게도 그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냥 제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밤에 잘 때 '오늘 할일을 다 했나' 제가 편한 답을 할 수 있으면 편히 자고 그다음 날을 대비합니다"
    [외통방통] 강경화는 '패싱' 책임 피하려고 여자임을 방패 삼았나?
    강경화 "'여성이기 때문에…' 느낄 때 있다"

    강 장관은 또 앞으로 외교부는 "여성이 다수가 되면서 많이 바뀔 것"이고 그러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란 예측을 했다. 또 저출산 문제는 일가정 양립이 가능해야 해결된다는 시각도 드러냈다.

    개인(강경화)과 집단(외교부), 사회(한국) 세 가지 차원에서 젠더 문제에 대해 소신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엉뚱하게도 '패싱' 논란으로 연결돼 해석됐다.

    지난 13일 SBS에 출연해 박지원 국정원장의 8일 방일과 한일 정상 선언 제안에 대해 "충분히 협의했다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발언한 사실 때문에 논란이 증폭됐다. 그러나 이날 방송은 SBS '패싱' 발언이 있기 일주일 전인 6일 사전 녹화됐다.

    한 여성 외교관은 "과거 강 장관의 발언을 찾아보면 이번 발언의 진의를 알 수 있다"며 2013년 유엔 사무차장보 시절의 인터뷰를 꼽았다.

    당시 강 장관은 "'내가 여성이라서 이런가' '내가 한국인, 동양인이라서 차별받나' 생각할 때가 있다" 면서 "진의가 무엇인지 계속 의심하고 곱씹기보다 먼저 신뢰를 보여주려고 정말 노력한다"라며 이번과 유사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 이는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명예남성을 원하는 한국 사회

    소위 성공한 여성에게 우리 사회는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는 명예 남성이길 요구한다. 차별 경험에 대한 언급이 "리더십을 스스로 깎아 내릴 수 있다"는 비판이 이에 해당한다. 피해를 발화하는 순간 취약함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여성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지적엔 반응하지 않고 이와 관련해 '기득권 문화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는 강 장관의 증언을 나약한 변명이라고 보는 것도 이중적이다.

    다만, 여성 리더가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이 수용될 때도 있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부인이라는 가부장제 속 지위를 명확히 할 때다. 이를테면 강 장관이 국감장에서 남편 이일병 교수의 출국에 대해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자 국회의원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함께 공세를 멈춘 일이 그렇다.
    [외통방통] 강경화는 '패싱' 책임 피하려고 여자임을 방패 삼았나?
    원고에 없던 국정원장 방일 비판

    강 장관이 지난주 박지원 원장의 방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 내 불협화음이 드러나는 것을 감수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기 때문인데, 이는 준비된 예상 답변과도 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박 원장의 방일 행보는 그동안의 외교 관례에 맞지 않았다. 한일 언론을 통해 정보기관장의 방일 일정이 사전에 알려졌고 최종 합의 때까지 물밑에서 진행되어야 할 '한일 정상의 공동선언' 제안 역시 거의 실시간으로 공개됐다. 요란했지만, 예상대로 일본은 난색을 표하며 거절했다. 사실상의 외교 실패다.

    한 일본 기자는 "한국이 문제 해결보다는 한일 관계를 보는 미국에 '우리는 노력했다'라고 보여주려 이러는 것 아닌가"라고 진정성을 의심했다.

    '유임' 유력 강경화, 자기 목소리 낼까?

    그간 강 장관은 한일과 북핵 등 청와대가 주도하는 이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이 이슈들 모두 한두 가지 정치적 이벤트로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임이 더 명확해졌다.

    방송에서 홍석천 씨는 "'커밍아웃'하고 나서 성소수자 대표 얼굴이 됐다. 정말 힘들고 포기하고 싶지만 '형 때문에 저희 살아요'라는 얘기에 버틸 수 있었다. 강 장관님도 여성 분들의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고 했다. 강 장관이 외교관들의 수장으로서 더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할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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