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딸을 여러 차례 성추행 한 인면수심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를 본 딸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다른 진술을 해, 아버지의 죄를 묻는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말이 바뀌었더라도 가족들의 회유와 압박 같은 번복 배경을 고려해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며 아버지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확정했습니다.
사건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9살이었던 A양은 지난 2014년 여름 집에서 아버지로부터 처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갔던 2017년 가을경에는 아버지의 성추행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신체 일부를 만지는 수준에서 더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이듬해인 2018년 3월경 아버지는 또 A양을 성추행했습니다.
속으로만 앓던 A양은 어머니에게 털어놓았지만 돌아온 건 아버지의 폭행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고 이를 지켜보던 A양에게 온갖 욕설까지 퍼부었습니다.
결국, 이같은 피해 사실을 친구와 학교 상담교사에게 털어놓은 뒤 A양은 보호시설에 들어갔고, 그 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며 아버지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A양이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강제추행 등 피해를 당한 사실이 없다. 아버지가 미워서 수사기관에서 거짓말했다"고 말한 겁니다.
결국, 1심에서 성추행 부분은 무죄.
'정서적 학대'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아버지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A양은 왜 진술을 바꿨을까?
A양을 치료한 정신과 의사는 법정에서 이런 취지로 증언했습니다.
"A양이 엄마의 부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였다. 가족들이 눈치를 많이 주었고, 할머니는 아버지를 (감옥에서) 빨리 꺼내야 한다고 욕하고, 어머니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데 정말 성폭행한 것이 맞느냐며 재차 묻고, 못 믿겠으니 그런 일 없다고 하라고 했다고 말하였다"
A양이 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엄마가 아빠 교도소에서 꺼내려고 나한테 거짓말하래"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같은 피해자이기도 한 어머니가 계속 회유했던 셈입니다.
실제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접견하는 과정에서 "딸에게 없던 일로 해 달라고 설득해 보겠다"는 말을 했고, 나중엔 "울면서 부탁을 했더니 딸이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친족간 성범죄'는 진술 번복의 동기·배경을 봐야!"
피해자와 가해자가 친족 관계로 묶인 성폭력 사건들에서 가끔 대두하는 쟁점이기도 합니다.
밉긴 해도 가족이니까요.
피해자로선 '처벌'과 '용서' 두 마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법원은 A양의 상고심 판결을 내리면서 '친족간 성범죄'에 있어 새로운 판단을 추가했습니다.
"친족간 성범죄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등 때문에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 내용 자체의 신빙성 인정 여부와 함께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게 된 동기나 이유, 경위 등을 충분히 심리하여 어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진술 번복의 배경과 동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7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와 동향에 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52%는 강제추행이고, 20%는 성폭행입니다.
특히 가해자의 절반 이상은 소위 아는 사람이었고, 가족과 친척이 성범죄 가해자인 경우는 18.4%에 이릅니다.
가족에 의해 저질러진 성범죄 피해를 치유하기는 커녕, 오히려 가족이라는 미명으로 회유와 협박까지 더한다면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가 된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 판결입니다.
사회
강연섭
[서초동M본부] '가족간 성범죄' 쉬쉬해도 소용 없어…대법원 "'친족 특수성' 고려해야"
[서초동M본부] '가족간 성범죄' 쉬쉬해도 소용 없어…대법원 "'친족 특수성' 고려해야"
입력
2020-05-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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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0-05-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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