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났네!…중국 최고 베이징대에 합격하다
중국 후난성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중팡룽은 올해 중국대입시험인 가오카오 (중국은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서 여름에 대입 시험을 치릅니다) 에서 750점 만점에 676점을 받았습니다. 인구가 7천만 명에 가까운 후난성 전체에서 4등을 차지할 만큼 훌륭한 성적이었습니다.
중팡룽은 이 점수로 베이징대학 고고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중국 최고의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마을에선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축하 인사를 하러 오고 마을 사람들이 선물을 들고 중팡룽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동네에 경사가 났습니다.뭐라고!…'류수아동'이 고고학을 한다고?
그런데 이 훈훈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논란의 이유는 중팡룽이 왜 고고학과를 가냐는 것. 보다 구체적으로는 '시골 출신 가난한 학생이 돈을 많이 버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고고학과에 지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네티즌들이 중팡룽을 '가난한 시골 학생'이라고 생각하게 한 건 기사에 중팡룽이 '류수아동' 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류수아동(留守兒童)이란 글자 그대로 남아서 집을 지키는 아동입니다. 중국 전역에서 6천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이들의 부모는 시골 고향을 떠나 도시에 가서 일하는 농민공이라고 불리는 이들입니다. 생활이 여유롭지 못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실제로 중팡룽의 아버지는 광저우시 광둥의 가구공장에서, 어머니는 선전시의 병원에서 안내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팡룽은 고향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는 시인이 되선 안 된다
중팡룽의 선택을 비판하는 네티즌들의 의견을 몇 개 보겠습니다. <나중에 취업할 때 되면 울게 될거다> <힘들게 베이징 대학까지 합격했으면서 그런 과를 가려하느냐> <어려운 가정에서 컸으면 경영학과 같은 데를 가서 돈을 벌어야지> … 이른 바 가난한 집 아이가 '돈 안되는' 학과를 선택한 것에 대한 비난입니다.
중국 SNS인 웨이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많았습니다. <시골에서 공부 잘 했으면 집안을 일으키는데 힘써야지> <고고학은 부유한 집 아이들이 하는 거야.. 돈 없으면 부자가 될 방법을 찾아야지> 같은 의견들입니다.
좀더 함축적인 표현도 있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는 시인이 되선 안 된다. 窮人家的孩子不要去學什?當詩人>
너는 장녀인데…부모님을 생각해야지
사실 중팡룽의 담임 선생님도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고고학을 전공하겠다는 중팡룽에게 "충동적으로 선택해선 안 된다"고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했습니다. "너는 장녀이고 부모님이 모두 너를 의지하고 있지 않니. 네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면서 다른 전공을 열 개나 더 제시했습니다.
중팡룽이 전공을 최종결정하기까지 선생님을 비롯한 이런 외부의 시선과, 높은 점수에 기대 가득했던 (중국은 먼저 가오카오 점수를 받고 나서 대학에 지원하는 '선시험 후지원' 시스템입니다.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 주위의 기대와 바람이 컸습니다) 친척들의 회의에 중팡룽도 흔들렸던 게 사실입니다. 중팡룽은 그러나 한참 고민을 한 끝에 '그래도 나는 고고학을 하겠어' 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중국판 '인디아나 존스'의 꿈
어릴 때부터 고고학자를 꿈꿨던 중팡룽은 롤 모델이 있었습니다. 중국 최고의 여성 고고학자 판진스라는 인물입니다. 판진스는 세계 최대 석굴 사원인 중국 간쑤성 둔황에 있는 막고굴 연구에 최고 명성을 가지고 있는 학잡니다. 판진스는 중팡룽의 선택이 보도로 알려진 이후 중팡룽에게 자서전과 함께 친필 편지를 보내서 "초심을 잃지 말고 세상을 크게 보는 젊은이가 되길 바란다" 라고 격려했습니다.
물론 SNS에는 중팡룽의 선택을 지지하면서 중팡룽을 비난하는 이들을 질책하는 의견들도 많이 있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원론적인 것부터 <중팡룽 취업 걱정하지 마라. 비난하는 당신보다 더 잘 될 거다> <당신이 베이징대 합격한 중팡룽에게 무어라 말 할 자격이 되나?>
집에 광산이 없으면…중국판 '흙수저' 논쟁
중팡룽의 고고학 지원이 촉발시킨 중국판 흙수저 논쟁의 바탕엔 기본적으로 중국 농촌의 빈곤문제가 있습니다. 공부를 잘 했으면 좋은 곳에 취업해서 돈을 많이 벌어 집안을 일으켜야지 본인의 취향만 생각해서 진로를 결정하는 건 무책임하지 않느냐는 생각들이 배경입니다. 중국 대도시의 소비 수준은 우리와 맞먹거나 오히려 뛰어넘는 수준이지만 지난 6월 리커창 총리가 공식적으로 밝혔듯이 아직 6억명의 인구가 한 달 소득이 1천위안, 우리 돈 17만원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농촌 지역의 경제 상황은 열악합니다.
중국 경제 또한 과거의 고속 성장에서 침체기에 접어든 것 아니냔 우려가 커진 상황인데, 올해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취업난이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에 중팡룽의 선택이 더욱 논란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중국에서 입시 철이 되면 흔하게 보는 말 중에 <집에 광산이 없으면 이런 전공은 택하지 말라 - 家中沒有?,就不要選某專業 > 란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예시되는 전공은 안타깝지만 문학.철학. 역사... 이런 것들입니다.
[P.S]
여러 네티즌들의 우려와는 달리 중팡룽의 취업에는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중국은 땅이 넓고 역사가 깊습니다. 중국 전역에 역사적 유물 관련한 박물관은 많고 특히 여러 민족들이 얽혀있어 국가적 정체성 확보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보니 역사와 관련한 각종 프로젝트도 차고 넘칩니다.
게다가 베이징대 고고학과는 중국 고고학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미 중팡룽의 소식을 접한 중국 각 성 정부의 박물관과 연구소 십여 곳에서는 선물과 함께 졸업 후에 함께 일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러브콜까지 보냈습니다. 중팡룽의 부모는 딸의 선택을 지지한다며 중팡룽에게 응원을 보냈습니다.
세계
김희웅
[World Now] 가난하면 안되나요?…중국 '인디아나존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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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8-06 09:32 |
수정 2020-08-0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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