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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탈북 예술인 '대부'의 두 얼굴… 기부금은 어디로?

[외통방통] 탈북 예술인 '대부'의 두 얼굴… 기부금은 어디로?
입력 2020-09-05 09:20 | 수정 2020-09-0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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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통방통] 탈북 예술인 '대부'의 두 얼굴… 기부금은 어디로?
    주유소 세차원에서 장관 표창까지, 성공한 '회장님'

    "귀하는 투철한 봉사정신과 사명감으로 북한 이탈주민 정착지원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기여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2017년 12월 29일 통일부 장관 조명균"


    남한 정착 17년 만에 장관 표창.

    밑바닥에서 맨 손으로 쌓아올린 성과였다. 20여년 전, 당시 마흔살의 정 ○○씨는 혈혈단신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과 캄보디아를 거쳐 한국 땅에 도착하는데 2년이 걸렸다.

    남한에서 새로운 이름을 얻고 주유소 손세차장에 취직했다. 차량 1대에 1만 원을 받았다. 당시 그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만큼 정성과 친절로 승부한다"며 1시간이면 되는 세차를 1시간 30분씩 했다.

    이후 예술대학 출신인 이력을 살려 2002년 자유총연맹의 후원으로 '탈북예술인교육문화단'을 만들었고 3년 뒤 '평양민족예술단'을 꾸렸다. 이듬해 민족을 '민속'으로 바꾼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북한에서 무용과 노래를 했던 여러 예술인들이 정 씨의 예술단에서 활동을 하다 하나둘 자립했다. 사람들은 정 씨를 탈북 예술인의 '대부'라 불렀다.

    2017년에는 다른 탈북민 단체 7곳을 모아 사단 법인 '탈북예술인연합회'(이하 연합회)를 창립하고 통일부 등록까지 마쳤다. 정씨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다른 단체들을 대변하고 자립을 돕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주유소 세차원에서 시작해 회장님으로 성공한 정 씨의 이야기는 탈북민 사회에서도 화제가 됐다.

    스스로를 '왕'이라 칭한 회장님… 드러나는 전횡

    '연합회' 조직이 커지면서 숨겨졌던 정 회장의 일면이 드러났다. 견고하던 정 회장의 왕국에 내부 균열이 생겼다.

    '연합회'는 창립 당시부터 법인 계좌로 어떤 돈이 드나드는지 '회장님' 정 씨를 제외한 다른 임원들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연합회 법인 계좌를 공개하라는 임원들 성화에, 정 회장은 스스로를 '왕'에 비유했다고 한다.

    "사무국에서 일을 하자면 공인인증서도 필요하고 통장도 있어야하잖아요. 우리가 모여서 도장 받아내는데 '왕이 옥새를 주는 거 봤는가' 하고 안 주더라고요." (단체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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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어렵게 계좌를 열어보니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터져 나왔다."

    '연합회' 기본 재산 5천만 원은 대부분이 창립 1년도 안 돼 사라졌다. 2017년 8월과 9월, 먼저 1천800만 원이 정 씨의 평양민속예술단으로 이체되고 3천만 원은 평양민속예술단 버스를 사는데 쓰였다.

    정 회장은 당당했다. 처음 설립 비용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왔으니 가져다 쓰는 게 무슨 문제냐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불법이었다.

    "기본 재산이 없다면 단체가 지속성 있게 존재하는 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기본 재산을 사용할 땐 주무부처 승인을 받게 한 이유다." (공익 법인 전문 최호윤 회계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

    이쯤에서 드는 의심 한 가지.

    과연 정 회장은 오늘날의 자신을 만든 <평양민속예술단>(이하 예술단)은 투명하게 운영했을까. 수출입은행은 이 단체에 2013년부터 수천만 원을 믿고 후원해왔다.

    지정기부금 단체인 예술단은 규정에 따라 매년 기부금 모금액과 활용 실적을 홈페이지와 국세청에 공개해야 한다.

    당연히 같은 내용이어야 할 이 두가지 자료는 확인 결과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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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단'이 국세청에 신고한 2018년 기부금 명세서엔 지원받은 4천만 원을 그해 10월 "남북 문화적 이질감 해소를 위한 공연"에 모두 쓴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홈페이지 공개 내역엔 10월 한 차례가 아니라 3월부터 10월까지 1천만 원씩 네 번 썼다고 했다.

    2016년, 2017년 역시 기부금 사용 시기와 액수가 국세청 자료와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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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회장은 "기부금을 준 수출입은행에는 정확하게 세부사항을 보고했다"고 항변했다. 그렇지만 자료 제공은 끝까지 거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국회의원의 도움으로 해당 보고서를 입수했다.

    "출연료 40만원 줬다"… 단원들 "받아 본 적 없어"

    기부금 보고서에는 회당 출연료가 40만 원, 적을 때만 36만 원씩 지급된 것으로 나왔다.

    인건비만 기부금 사용액의 절반, 매년 2천만원을 차지했다.

    어렵게 접촉한 여러 명의 전·현직 단원들은 기가 차다고 했다. '예술단'이 책정된 출연료를 절반 이상 후려친 것이었다.

    "40만 원 받은 사람이 없어요. 다 18만 원씩 계산을 해서, 금방 들어온 애들은 5만원도 주고 10만원도 주고. (지방) 왔다갔다 밤에 택시타고 하면 뭐가 남는게 있어요" (전직 단원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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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단원에게 준 돈은 회당 15만 원에서 20만 원. 한달에 열번 정도 공연을 하면 총액 150에서 200만 원이 되는데, 여기에서 세금을 뗀 나머지를 월급으로 받았다.

    정 회장은 깎은 출연료만큼 다음 공연에서 주최 측한테 받는 공연비를 남길 수 있다.

    '예술단'을 떠난 단원들은 정 회장이 "점점 자본주의에 물들어 사람이 달라졌다"고 했다. 한 전직 단원은 단원들이 흘린 땀의 댓가를 받지 못한다며 정 회장을 여왕 개미, 단원을 일개미로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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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나는 비리… '대포 통장 썼다'

    정 회장은 또 4년 전부터 매년 기부금 1천만원 씩을 의상·소품비로 썼다고 했다. 수소문 해보니, 예술단 간부 김 모 씨 의상업체에 맡겼다. 김 씨는 "손수 옷감을 떼서 의상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김 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지인에게 털어놨다. MBC가 입수한 내용을 일부 공개한다.

    "이게 걸리면 진짜 다 걸릴 수 있어요. 이게 1천만 원이라는 의상 값을 나는 받은 적도 없고..."

    "통장 이렇게 다 만들어서 저기 뭐야 예술단에 들어가 있잖아요."

    "어떤 일이 있었냐면 통장 하나가 사용을 안하는 통장인데, 내가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나가지고 그냥 번호를 새로 바꾼거야. 정 대표가 전화가 왔어. (자기가) 돈을 뽑을래니까 안 뽑아진다는 거야."


    자기 명의의 통장을 예술단이 대포통장으로 사용했다는 얘기다. 징역 5년 이하 혹은 벌금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해당하는 범죄.

    정 회장의 '오른팔'로 꼽히는 예술단장 김 씨는 '한 번에 1천만 원을 입금받지 못 했다는 뜻일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대포 통장을 실토한 대목에 대해선 "유도 질문에 말이 헛나왔다"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장비 안 쓰고 "기부금 썼다"… 밥값도 허위 청구

    정 회장은 "남북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나라사랑 콘서트'를 매년 서너 차례 여는 비용으로 기부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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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서트를 열었다는 행사장에 일일이 확인해봤다.

    먼저 작년 김해에서 열린 가야문화축제. 예술단은 음향 설비 대여 1백만 원, 음향 조명 스태프 45만 원 등 기부금 7백60만원을 썼다고 기재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가야문화축제의 무대는 주최측이 모두 꾸민 상태였다.
    [외통방통] 탈북 예술인 '대부'의 두 얼굴… 기부금은 어디로?
    같은 해 전남 고흥에서 열린 읍민의 날 행사 때도 음향 설비 대여 등으로 7백 80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역시 고흥읍이 기획사를 통해 자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옥외 무대와 음향을 빌렸다. 고흥읍은 공연 비용 3백만 원을 예술단에 지불하기도 했다.

    고흥읍은 먼 곳까지 와서 공연해준 단원들에게 지역 '맛집'에서 영양돌솥밥을 대접했다. 정 회장은 이날 식대 20만원을 썼다고 허위로 적었다. 단원들 밥값까지, 정말 꼼꼼하다.

    무대와 음향은 예술단 간부 이 모 씨 업체가 전담했다. 간부 이 씨는 허위 매출을 발생시킨 것은 시인하면서도 대신 다른 공연 때 무료로 장비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서류를 살펴본 최호윤 회계사는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다. 형사 문제로 봐야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른 단체 1백여 곳과 비교해봐도 이런 곳은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했다.

    평균적인 시민 단체의 기준에 한참 못미친다는 얘기다.

    "횡령은 없다"했지만… 시작된 조사

    정 회장은 지금도 기부금 횡령은 결코 없었다는 입장이다.

    "단 돈 10전이라도 (횡령)했으면 사람도 아니다"고 했다. 대포 통장은 10여 년 전 한 번 문제된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론 절대 쓴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기자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의 희망과 달리 <평양민속예술단>에 기부금을 준 수출입은행과 <탈북민연합회>가 등록된 통일부 모두 조사에 나섰다.

    수출입은행은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올초 시작된 통일부 조사는 현장 방문을 앞두고 있다.

    탈북 단체에서 오래 활동해온 전수미 변호사는 "과일이 상했을 때 상한 부분 도려내고 새로 돋아나게 해야 한다. 탈북사회에선 지금이 그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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