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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줘! 경제] 2천억원 써가며 '노동자 아니에요'

[알려줘! 경제] 2천억원 써가며 '노동자 아니에요'
입력 2021-02-28 07:32 | 수정 2021-02-28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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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줘! 경제] 2천억원 써가며 '노동자 아니에요'
    지난 편에 이어서 오늘은 쿠팡INC 상장 추진으로 다시 이슈가 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의 성격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쿠팡의 플랫폼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건별로 배송비를 받으며 쿠팡의 배송을 담당하는 '쿠팡 플렉스'와 쿠팡이츠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기사가 있습니다.

    쿠팡은 이들을 '이츠 딜리버리 파트너' EDP(Eats Delivery Partner)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알려줘! 경제] 2천억원 써가며 '노동자 아니에요'
    이들의 법적인 성격을 쿠팡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신고서 내용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We believe that our Coupang Flex partners and EDPs are independent contractors because, among other things, they choose whether, when, and where to provide these services, provide these services at days and times that are convenient for them (or not at all), are free to hold other jobs and provide services to our competitors…

    언제 어디서 일할지 정할 수 있고, 다른 일을 하거나 경쟁사와도 일할 수 있어서 '독립계약자'로 보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업체에 종속된 플랫폼 노동 종사자

    그런데 실제 배송, 배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분위기는 이 설명과 좀 다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플랫폼 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요, 설문조사 응답자의 64.2%가 겸업을 하지 않고 플랫폼 노동이 유일한 직업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플랫폼 노동이 소득의 전부라고 답한 사람의 비중도 62.7%에 달했습니다.

    자유롭게 겸업을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겠죠. 또,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와 <뉴스데스크>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를 했지만 일단 배달 일에 뛰어들면 그때부터 직간접적인 통제를 받습니다.

    인공지능이 배달 시간을 압박하고,
    [알려줘! 경제] 2천억원 써가며 '노동자 아니에요'
    시시각각 수요 공급에 따라 널뛰는 배달료를 그냥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알려줘! 경제] 2천억원 써가며 '노동자 아니에요'
    즉 겉으로는 자유롭고 대등한 계약으로 보일지 몰라도, 배달 시간도, 요금도, 자기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질적으로는 플랫폼 업체에 종속돼있는 셈입니다.

    유럽, 플랫폼 종사자는 '노동자'

    해외에서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가 개인 사업자인지 노동자인지 판단할 때 이 '종속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랫폼 택시 서비스인 우버 운전자에 대한 판단인데요, 며칠 전 영국 대법원이 이들을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알려줘! 경제] 2천억원 써가며 '노동자 아니에요'
    영국 대법원은

    √ 요금이나 계약 조건을 우버가 정했고 운전자들은 결정권이 없었던 점,

    √ 운전자가 승차 거부를 자주 할 경우 승차 배정이 제한되는 점,

    √ 별점을 통해 운전자 서비스를 모니터링하고 서비스가 개선되지 않으면 계약 관계를 종료할 수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우버 운전자들이 사실상 우버에게 종속된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프랑스의 대법원에서도 얼마 전 비슷한 판결이 있었고, 독일은 지난 12월, 다른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해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유럽에서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도 최저임금이나 연차수당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겁니다.

    노동법 전문가인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의 경우 판결과 더불어 정부 차원에서 플랫폼 노동에 대한 보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산재, 연금, 건강보험을 강화하고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해 일종의 '회색 지대',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향입니다.

    2천억 여론전에 물러난 미국

    우버의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아포니아 주는 아예 조금 더 적극적인 법안(의회법안5: AB5)을 만들어 지난해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플랫폼 노동 종사자'를 기본적으로 노동자로 보는, 근본적인 시각에 변화를 준 법안이었습니다.

    플랫폼 사업자 측에서 종사자가 개인사업자라는 점을 입증하지 않으면 대가를 받고 일하는 사람은 모두 '직원'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플랫폼 업체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죠. 우버나, 비슷한 플랫폼 택시 사업자인 리프트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차량 호출 서비스에 예외를 두는 주민발의법안 22호를 통과시키기 위해 2억 달러, 즉 2천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광고를 방송하는 등 여론전을 펼친 겁니다.

    플랫폼업체가 이들을 직접고용하면 비용 부담 때문에 고용 규모가 줄어 앱 기반 운전자의 90%가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알려줘! 경제] 2천억원 써가며 '노동자 아니에요'
    결국 주민발의법안 22호는 통과됐고, 차량호출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시 개인사업자의 지위로 돌아왔습니다.

    다만 최저 시급과 휴식시간 보장 등 일부 보호장치가 생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 세계의 돈을 휩쓸고 있는 플랫폼 강자들의 성공 뒤에는 플랫폼 노동을 둘러싼 논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플랫폼 종사자들을 '독립 계약자'나 '자영업자'로 보기보다는 '노동자'로 보고 보호하려는 큰 방향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플랫폼을 이용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넓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는 179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정부도 이들을 위한 보호장치를 검토하고 있는데요,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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