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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자이미지 이남호

"정부가 무차별 벌목" 조선일보 기사는 사실일까?

"정부가 무차별 벌목" 조선일보 기사는 사실일까?
입력 2021-05-18 15:34 | 수정 2021-05-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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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무차별 벌목" 조선일보 기사는 사실일까?

    2021년 5월 17일자 조선일보 1면. 정부의 탄소정책 탓에 민둥산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어린나무 새로 심어 탄소 흡수하려고 무차별 벌목?

    17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입니다. 충북 제천에 있는 여러 산들이 통째로 민둥산이 된 사진이 실렸습니다. 나무가 모두 베어진 산들은 마치 황폐한 사막을 보는 듯한 모습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산으로 가는 文정부 탄소정책…어린나무까지 무차별 벌목>입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정부 목표에 맞춰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어린나무 30억 그루를 심어 향후 30년간 3400만 톤의 탄소를 흡수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황당한 발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앞서 오마이뉴스 역시 14일에 비슷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산림청이 저지른 엄청난 사건, 국민 생명 위험하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 역시 "문재인 정부는 30억 그루를 심기 위해 전국 산림의 1/3을 베어낸다고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기사들만 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잘라내고 새 나무를 심는다니, 멀쩡한 보도블록을 부수고 새로 까는 예산 낭비 사례도 떠올랐습니다. 이 기사 내용은 사실일까? 정말 정부의 어이없는 탄소정책에 산림이 황폐화되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탄소중립 30억 그루 사업"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일단 왜 숲을 밀었는지 따져물으려 산림청에 전화를 걸었는데 답변이 이상했습니다. 보도된 사진 속 산이 국공유림이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해당 산지의 벌목은 소유주가 알아서 한 일이지 산림청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에 나온 사진은 두 곳, 강원도 홍천군 두천면 일대와 충북 제천시 신동 부근입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곳 산지의 주인은 모두 개인으로 소속 지자체에 정식 허가를 받아 벌채를 진행했습니다. 이 산들은 원래부터 산 주인들이 목재 생산을 목적으로 운영하던 숲이라 언제든지 베어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나무를 내다 판 자리에는 새로 나무를 심어 다시 키울 예정입니다.

    기사에서는 마치 산림청이 직접 나서 이곳 산지를 다 밀어버린 것처럼 묘사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산림청이 올해 초 밝혔던 탄소 중립을 위한 '30억 그루 나무 심기' 사업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점입니다. 산림청은 해당 사업은 아직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여러 논의 과정을 거쳐 올해 10월쯤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산림청 관계자는 아직 시작도 안 한 사업을 가져다가 개인 산주가 진행한 벌목 사업과 엮어서 기사를 냈다며 답답해했습니다. 기사에서는 산림청이 전국 각지에 산재한 숲을 동시에 파괴하고 있다고 나왔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실제로 산림청이 공개한 표를 보면, 한국은 탄소중립과 상관 없이 매년 경제적 목적을 위해 벌채(목재수확)를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현 정부 들어 연평균 벌채 면적과 목재 수확량은 조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무차별 벌목" 조선일보 기사는 사실일까?

    연도별 벌채 면적과 목재수확량. 산림청 제공

    어린나무가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할까?

    물론 '30억 그루 나무심기' 사업은 그 자체로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산림청은 나이 든 나무를 베어내고 새 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2050년까지 나무 30억 그루를 새로 심어서 국가 탄소 배출량을 줄여보자는 계획입니다.

    그런데 국토 면적이 제한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새로 조림 사업을 할 만한 부지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산림청은 기존 노후 산림을 순차적으로 없애고 새로 나무를 심는 안을 만들었습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오래된 아름다리 나무를 베어내고 묘목을 심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산림청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숲은 폭발적으로 생장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생장이 전에 비해 더뎌집니다. 천천히 자라나는 숲은 광합성도 적게 하면서 탄소흡수량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늙은 숲'을 '젊은 숲'으로 대체해 탄소 흡수량을 늘려보자는 게 산림청의 생각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있습니다. 나이든 나무가 탄소를 더 잘 흡수한다는 논문이 나온 적도 있고, 나무도 생명인데 마치 탄소를 흡수하는 기계처럼 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서는 앞으로 공청회 등을 거쳐, 과연 타당한 사업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세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사업을 두고, 엉뚱한 현장 사진을 붙여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한 건,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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