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영끌과 벼락부자 그리고 벼락거지 사이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가 바로 '대장동'입니다.
개발 사업비 1조 4천억 원, 민간 배당이익 4천억 원.
평생 가까이 가기도 어려운 숫자들과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의 이름이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여러분은 '대장동'을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누군가 형사처벌을 받으면 이 사건이 끝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장동 사태는 지금의 대규모 택지개발 방식이 정말 공정한지 또 개발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익을 둘러싸고 정치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대장동을 통해 우리는 '개발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재산권을 빼앗아가면서도 '공익을 위해' 진행하는 대규모 택지 개발
여기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공동체가 어떻게 공유할지를 논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대장동의 개발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장동 이야기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무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 진짜 알아야 할 이야기 '대장동 프롤로그-1' 시작합니다.
*2004년, 도심 속의 시골을 한국판 베버리힐즈로?
100년 넘게 자리 잡은 원주민들이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던 곳.
상하수도 시설과 도로도 제대로 없었던 마을
'도심 속의 시골'이라 불렸던 그곳이 바로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당과 판교 사이에 자리 잡은 알짜배기 땅을 가만 둘리는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신 대한주택공사가 대장동 개발계획을 세웁니다.
2004년, '공공개발' 방식이었습니다.
LH는 대장동에 아파트 일색이 아닌 저층형 주거단지 '한국판 베버리힐즈'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반발이 있었습니다. 강남의 주거 수요를 분산시키려면 대장동 역시 아파트 중심의 대단지로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그러나 LH의 저층형 주거단지 공공개발 기조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 개발 소식이 알려지기 전 이미 낙후된 지역이었던 대장동에 갑자기 다세대 주택들이 우후죽순 지어집니다. 개발 정보가 유출돼 부동산 업자들이 이른바 '알박기'를 시도한 겁니다.
성남시 모 구청 소속 공무원은 아예 자신이 주택을 지어 동료들에게 팔기까지 합니다.
대장동에 따라붙은 개발 이권에 대한 욕망은 이렇게 작은 수준으로 시작됐습니다.
결국 LH는 부랴부랴 일단 기존 개발 계획을 백지화했지만 공공개발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었습니다. 공공개발을 하게 되면 토지를 감정가 수준으로 강제수용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민간업자들이 나타나 민간 개발을 한다며 땅값을 2배 3배 이상 쳐주겠다는 제안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욕망은 곧 격랑과 혼란을 만들어 냅니다.
*2009년, 대장동 비극의 씨앗이 싹트다.
2009년 7월 29일 LH는 성남시에 토지 강제수용 방식으로 공공개발을 하겠다며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제안서를 보냅니다.
두 달 뒤인 2009년 10월 1일 성남시는 이를 수용한다고 LH에 통보합니다.
LH의 공공개발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뒤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시작이었습니다.
2009년 10월 7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으로 만들어진 LH 출범식에 참석한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말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2009년 10월 7일, LH출범식)
"이 통합된 회사(LH)는 민간 회사와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민간기업이 이익이 나지 않아서 일을 안 하겠다고 하는 분야에 우리가 보완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익이 나는 개발 사업은 민간에 맡기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민간이 대규모 택지개발 권한을 갖는 건 건설업계의 숙원이었습니다.
당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한국의 주택시장도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부양이 필요하다는 배경이 있긴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발언의 불씨는 바로 '대장동'으로 날아듭니다.
이 발언 2주 뒤 이번에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대장동' 이름이 직접 등장합니다.
성남시에 지역구를 둔 당시 한나라당 신영수 의원이 LH사장에게 대장동 공공개발 포기를 촉구합니다.
신영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2009년 10월 20일, 국정감사장)
"대장동 주민들은 민간에서 (개발을) 추진하자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셨고, 사장님께서 취임하시면서 민간과 경쟁하는 사업은 안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지송 LH사장 (2009년 10월 20일, 국정감사장)
"의원님에게 별도로 보고를 드리고 우리 정관에 맞지 않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LH와 성남시간의 공공개발 합의가 끝난 지 불과 19일 만에 공공개발 철회가 도마에 오른 겁니다.
노골적으로 공공개발 철회를 촉구하는 당시 신영수 의원.
신 전 의원의 동생은 지역구의 민원을 수렴하는 특별보좌관이었는데 대장동 민간개발업자에게 LH가 대장동 공공개발을 포기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에 5천만 원을 받은 제3자 뇌물수수죄가 인정돼 결국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받았습니다.
*LH, 공공개발을 포기하자 그들이 나타났다.
LH는 바로 흔들렸습니다.
8개월 뒤인 2010년 6월 25일 LH는 성남시에 대장동 공공개발 철회 공문을 보냅니다.
공공개발 철회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그대로였습니다.
-LH 공공개발 철회 사유
"민간과 경쟁보다는 민간에서 참여하지 않는 분야를 보완하는 통합공사의 역할 수행
성남대장지구는 지자체와 협의하여 명품도시 건설을 위한 공공사업으로 출발한 점 등을 감안할 때 민간과 경쟁하는 사업과는 차별화되어야 하나
외부 여건이 변화함에 따라 '민간과 경쟁'하는 구도로 변화"
결국 5년여를 끌어온 LH의 대장동 공공개발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LH가 언급한 민간은 누구일까?
2009년 6월 20일 대장동 토지소유자들이 설립한 도시개발사업 추진위원회와 민간업자가 세운 업체가 도시개발 시행업무 대행계약을 체결합니다.
이 민간업체에 합류한 사람들이 바로 대장동 사건의 키맨으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번 검찰 수사로 재판에 넘겨진 '정영학 회계사', '남욱 변호사'입니다.
이른바 '화천대유' '천화동인'의 씨앗이 LH의 공공개발 포기와 함께 싹트기 시작한 겁니다.
-> 진짜 알아야 할 이야기 '대장동 프롤로그-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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