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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M부스] '노건호' 메일받은 의원실 해킹…"미행·도청 없었다"?

[국회M부스] '노건호' 메일받은 의원실 해킹…"미행·도청 없었다"?
입력 2021-02-17 10:32 | 수정 2021-02-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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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M부스] '노건호' 메일받은 의원실 해킹…"미행·도청 없었다"?
    박지원 "사찰, 직무범위 벗어난 불법"

    박지원 국정원장은 어제 과거 정부 국정원이 벌인 사찰 실태와 보관 중인 사찰 문건의 처리 문제에 대한 입장을 국회 정보위원회에 직접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박 원장은 사찰이 국정원 직무 범위를 이탈한 불법이었음을 명확히 하고, 박근혜 정부때에도 계속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국회 정보위원들은 전했다. 지난달 김승환 전북교육감 사찰 문건 공개 이후 불거진 정치인 사찰에 대해선, 실제 신상정보 관리를 국정원이 맡았다고 확인했다.
    [국회M부스] '노건호' 메일받은 의원실 해킹…"미행·도청 없었다"?
    * 2009년 12월 16일 국정원이 작성한 문서의 일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보안 유지 하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신상자료를 관리해 주기를 요청"했고 "VIP 통치 보좌와 대정부 협조관계 구축 및 견제" 목적이라고 적시돼 있다.

    비공개로 진행된 정보위 회의 내용은 통상 회의가 끝난 뒤 여야 간사들이 합의한 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한다. 이날 브리핑에선 여당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의원과 야당 간사인 하태경 의원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하 의원은 불법 사찰 논란을 의식한 듯 "미행이나 도청 방법 사용했냐 물으니 미행과 도청이란 방법 사용했다는 근거는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즉시 김병기 의원은 확인하지 못한 것은 "도청만"이라면서 "미감('미행 감시'의 정보기관 약어)을 하는 팀 등 여러 가지 팀들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는 데에는 (박지원 국정원장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국회M부스] '노건호' 메일받은 의원실 해킹…"미행·도청 없었다"?
    국정원 '특명팀' 의원실 해킹도 자행

    그런데 도청, 감청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MB정부 국정원은 당시 야당 국회의원 컴퓨터를 해킹해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실제 2011년 10월 한 의원 보좌관에게 온 이메일은 그대로 국정원 요원에게 탈취돼, 상부에 보고됐다. 보낸 이가 '노건호'였기 때문이다. 이 보좌관의 대학 동창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와 동명이인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해킹으로 남의 컴퓨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해서 내부 자료를 빼돌리는 것은 법적으로 도·감청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이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에서도 일부 확인됐지만 최종 기소 과정에선 빠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해킹을 한 1년 전부터 걸어놓고 컴퓨터가 바뀌지 않는 한 자기 것처럼 열어볼 수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초 해킹했던 시점부터 시효를 따져보니 시효가 이미 지난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관련 보도 "추적 '포청천' 작전의 비밀"



    국정원에서 해킹 등 도청과 미행 감시는 간첩과 산업스파이를 잡는 대공부서, 방첩부서가 전문이다. 각종 불법 사찰에 이들도 동원됐다. 원세훈 국정원장 지시로 2009년 만들어진 특명팀 얘기다. 방첩 부서에서도 성과가 우수한 직원들을 뽑아 팀을 꾸렸지만 목적은 간첩을 잡는게 아니었다. 취약점을 발굴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과 연계됐을 가능성을 보겠다는 취지로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중국 방문을 미행하고 친민주당 성향 기업인의 휴대 전화를 해킹했다.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이들은 불법을 전제로 활동하는 부서"라며 "휴대전화 해킹 장비는 현재 보유하고 있지 않아 스마트폰을 '점거'했다"고 전했다. 기업인 휴대전화를 점거한 이후엔 자주 통화하는 이성을 찾아내 내연관계 여부를 추적했다. 11개월짜리 자녀가 있는 것을 본 국정원 요원은 쓰레기 더미에서 아이 엄마가 내다 버린 기저귀도 훔쳤다. DNA 검사를 맡겨 혼외자인지 확인하겠다는 '공작'이었다. 공작은 실패했다. 검사 결과, 공작 대상인 기업인의 아이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정원 최정예 요원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웃을 수 없는 '흑역사'. 특명팀 회식자리에서 작심한 팀원들은 상관에게 항의했다.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자 회식을 주재하던 국장은 버럭 "원장의 지시하는데 왜 안 따르냐, 너희들 죽을래?"라고 소리쳤다.

    "사찰, 적절치 않다"항의하자 "너희들 죽을래?"

    이들이 공작 대상으로 삼은 건 최소 38명으로 추정되는데, 명진 스님, 한명숙 전 총리,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 우희종 서울대 교수 등이 포함돼 있다. 홍정욱 전 의원이나 이종구 전 의원처럼 현 국민의힘 진영 정치인들도 대상으로 삼았다.

    ▶관련 보도 [단독] MB 국정원, 노무현 측근·시민단체 무차별 사찰

    이들 외에도 언론사, 검찰, 법원, 대기업 등 각종 분야에 출입하던 국내 정보 파트 조정관(I/O) 2백여명이 일상적으로 작성하는 이른바 첩보 보고서들이 있다. 여기엔 통상적인 일정부터 각종 동향보고가 포함되는데, 국정원 내부 첩보 등록망에 등재됐다. 이들의 첩보를 분석해 청와대에 종합 보고서를 올리는 전략부서도 별도로 내밀한 사찰 정보를 담은 문건들을 생산했다. A보고서는 대통령에게, B보고서는 각 수석실로 배포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문건 불법 사찰 정보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에 대해선 국정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찰 정보들을 꺼내 확인하는 것조차 당사자 요청 없이는 불법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사찰 피해

    이와중에 사찰을 당했던 당사자들은 10년 안팎의 시간에도 진상을 알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국정원 사찰과 공작 여파로 겪게된 피해도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M부스] '노건호' 메일받은 의원실 해킹…"미행·도청 없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 곽상언 변호사는 정보공개 청구로 지난달 자신에 대한 사찰 문건을 받아보기 전까지, 관련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0년 KT에서 해고돼 10년째 거리를 전전하고 있는 조태욱 씨가 그렇다. 조 씨는 2009년 7월, 당시 새로 출범한 KT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탈퇴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 빌미가 돼 이듬해 해고까지 됐다. 기자회견에서 배후에 "정권과 자본"이 있다고 한 점을 문제 삼았다. KT는 허위사실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고소했고, 재판에서 벌금형까지 확정됐다.

    그러나, 조 씨가 제기한 의혹은 모두 사실이었다. 뒤늦게 국정원 내부 감찰 결과, MB정부 국정원이 21개 노동조합의 민주노총 탈퇴를 공작하고 제3노총인 국민노총 출범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이 이같은 움직임에 방해가 될 것으로 보이는 조 씨를 강성으로 낙인찍고 수시로 동향을 파악했던 사실도 10여년 만에 밝혀졌다. 조 씨는 정보공개청구로 이같은 사찰 문서들을 받고 나서야 실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알게 됐다. 그사이 40대 노동자는 정년인 환갑을 맞았다.
    [국회M부스] '노건호' 메일받은 의원실 해킹…"미행·도청 없었다"?
    국정원 당사자 청구해도 소극적 공개

    당사자들 청구 없이는 비공개 열람조차 불법이라는 국정원. 그러나, 정작 정보공개를 청구한 당사자들에게는 부실한 공개로 비판을 받고 있다. 곽노현 전 교육감 사찰 문건에선 "자료를 사람 편으로 보냈다"는 대목은 있는데, 이 자료는 빠뜨렸고 "이면합의설을 첩보로 기보고"했다면서도 이 첩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많은 늦었지만 선제적 공개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국회 차원의 결의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회 정보위는 국정원 내부에 새로 진상규명 위원회를 설치하는 안을 권고했다. 국정원은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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