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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암호명 '태백산'…노태우 "내가 익었다고 할 때는 맛있을 것"

[외통방통] 암호명 '태백산'…노태우 "내가 익었다고 할 때는 맛있을 것"
입력 2021-03-29 15:37 | 수정 2021-03-2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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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통방통] 암호명 '태백산'…노태우 "내가 익었다고 할 때는 맛있을 것"
    암호명 '태백산'… 한소정상회담 개최의 막후 외교전

    지난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극비리에 추진됐고, 한·소 관계개선을 막기 위해 북한 김일성 주석이 직접 소련 측에 압력을 가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외교부는 1990년 당시 '태백산'이라는 암호명 아래 두 달간 극비리에 추진된 한·소 정상회담과 한·소 수교의 내막이 담긴 외교문서 33만쪽 분량을 원문해제 요약본과 함께 오늘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공개된 문서에는 외교관계도 수립 안 된 소련과의 정상회담 성사 내막과 한·소 국교수립 과정, 북한의 반발 등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과 관련한 이슈들이 담겨 있습니다.
    [외통방통] 암호명 '태백산'…노태우 "내가 익었다고 할 때는 맛있을 것"
    김일성 "소련이 한국과 관계정상화하면 소련 내 공식 사절단 철수"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노태우 정부는 동구 공산권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는 '북방외교'를 야심차게 추진했습니다.

    소련 역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며 자유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꾀하고 있었는데요. 이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과 소련이 관계개선을 시도한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지만, 문제는 소련의 우방인 북한의 반응이었습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은 1988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상에게 "소련이 헝가리식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 모스크바주재 대사관 이외 공식 사절단을 전원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에 소련 외상은 "어떤 형태의 정부 접촉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같은 북한의 반발은 1989년 1월 한국을 방문한 미구엘 스테클로프 소련연방상 고문과 코트라 측과 면담을 통해 우리 정부에도 알려졌습니다.

    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김일성이 우리와의 대화나 접촉을 거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푸는 최상의 길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라며 한·소 정상회담을 추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마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1990년 5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태백산'이라는 암호명 아래 미국에서 한·소 정상회담이 추진되기에 이릅니다.

    극비리에 작업에 들어간 한·소 당국은 정상회담을 불과 이틀 앞둔 6월 2일에서야 구체적인 시각과 장소에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외통방통] 암호명 '태백산'…노태우 "내가 익었다고 할 때는 맛있을 것"
    노태우 "내가 (과일이) 익었다고 할 때는 맛있을 것"

    6월 4일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마침내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페어몬트 호텔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계의 변화에 따라 개혁·개방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노태우 대통령에 김일성 주석에게 전할 메시지를 묻습니다.

    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①책임있는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제일 중요함 ②소련이 추구하고 있는 개방정책을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촉구 ③남한은 군사적 우위를 추구하지 않으며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고르바쵸프 대통령은 한국에 미군기지와 핵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거론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미·소간 협의해서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하나, 명백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핵무기는 폐기되어야한다는 입장"이라고 답했습니다.

    다음 해인 1991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5대 원칙'을 발표하기 전 이미 핵무기 폐기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한 겁니다.

    한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본주제인 수교 문제와 관련해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양국간의 관계 개선은 점진적으로 진전되어 완전히 매듭지어 나가야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는데요. 이에 노 대통령은 외교·경제관계 등 협력을 위해 사절단을 모스크바 또는 서울로 파견해 구체적인 협력을 시작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이후 회담 마무리에 이르러 발언록에 정리된 두 대통령의 대화가 의미심장합니다.

    고: 너무 먼 장래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일은 익어야 제 맛이 날 것으로 생각함.
    노: 나는 잘 기다리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음. 내가 익었다고 할 때는 맛이 있을 것임.
    고: 시간 낭비는 말자는 말에 찬성함.

    고르바초프가 '과일은 익어야 제 맛'이라며 '수교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을 에둘러 설명했지만, 노 대통령이 '내가 익었다고 할 때는 맛 있을 것'이라며 '지금이 수교의 적기'라는 뜻을 밝힌 겁니다.

    결국 이날 회담은 불과 3개월 뒤인 9월 30일 한소 외교장관 회담에서 수교에 합의하는 것으로 문자 그대로 '결실'을 맺습니다.

    북방외교 본격화…북한은 반발

    결과는 훈훈했지만, 한국과 소련 양국으로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인만큼 끝까지 조심에 조심을 거듭했습니다.

    한국 외무부는 후에 "한·소 정상회담 합의가 최종순간 극적으로 이루어졌고, 소련 측이 미·소정상회담 종료 시까지 완벽한 보안을 요구했다"고 평가했는데요.

    소련 측 역시 "북한이 무척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측이 회담을 지나치게 홍보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한국 측에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 당부가 무색하게도, 정부는 한·소 정상회담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그 흔적은 1990년 6월 4일 이후 MBC 뉴스데스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메인앵커가 직접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스를 진행하며 노태우 대통령을 인터뷰했을 뿐만 아니라, 한·소 정상회담에 대한 각국 반응도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는데요. 한·소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친 노태우 정부는 곧바로 한·중 정상회담 추진까지 발표하는 등 북방외교에 박차를 가합니다.

    북한은 예상대로 소련을 상대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회담 사흘만인 6월 7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증오하는 한국의 지도자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배신적인 거래를 했다"면서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또 주소련 북한대사관의 김희수 공사가 소련 외무성을 항의 방문해 "이 회담이 한반도에서 남·북한을 첨예하게 대립시키고 '두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항의했습니다.

    소련 측은 "이번 정상회담은 외무성이나 당에서 준비한 것이 아니"라며, "회담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북한 측은 납득하지 않는 태도였다는 내용 역시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도서관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원문은 외교사료관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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