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난 2016년 12월, 국회에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단 두 번뿐이었던 현직 대통령 탄핵안 의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소속이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소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거대 정당은 최근 대선을 앞두고, 오래전 이미 건넌 줄 알았던 '탄핵의 강'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건너긴커녕, 오히려 경쟁적으로 '그 강'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 이재명의 포문…"이낙연, 盧 탄핵 반대한 거 맞나?"
벌써 나흘째, 이재명 경기지사 측의 공세는 어제도 아침 일찍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지사 측 정성호 의원이 SNS에서 다시 포문을 열었는데요. 이번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까지 인용했습니다.
"진실한 것 이상 더 훌륭한 전략은 없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용서와 이해를 구하면 누가 계속 비난하겠는가. 그러나 끝까지 거짓과 위선으로 나간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7월 23일, 정성호 의원 SNS 中)
이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의 탄핵 진실공방은 지난 21일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이 지사 측 김영진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 2004년 이 전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 밝히라고 요구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낙연 후보가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할 때 탄핵에 찬성했습니까? 반대했습니까? 분명한 입장이 없어요. 명확한 자기 입장이 필요한 거고요.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시면 안 돼요." (7월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中)
최근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이 지사의 1위 자리를 위협하자, 과거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았던 이 전 대표의 정체성과 적통성에 문제 제기를 한 건데요.
이 지사 측 김남국 의원도 SNS에 노 전 대통령 탄핵안 의결 당시 사진 3장을 올리며 "이게 가짜 사진이냐"고 이 전 대표를 압박했고,
급기야 다음 날 이 지사까지 직접 의혹 제기에 나서며 후보 간 직접 대결로 전선을 확대했습니다.
"과거 사진을 보니까 이낙연 후보께서 스크럼까지 짜가면서 탄핵 표결을 강행하려고 물리적 행동까지 나서서 하셨던 것 같은데 사진에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반대표 던졌다고 하니까 제가 좀 납득이 안됩니다." (7월 22일, 국회 기자회견 中)
■ 이낙연 "盧 탄핵 반대했다" 반박…송영길, 양측에 자제 당부
"추가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17년 전 사진과 영상이 공개된 뒤, 경남도청을 찾은 이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탄핵 표결 논란에 일단 말을 아꼈습니다.
이틀 전 KBS 9시 뉴스에 출연해 짧고 명료하게 "탄핵에 반대했다"고 말했던 것과 비교하면 확전을 자제하려는 모습인데요.
앞서 이 전 대표 측은 당시 신문 기사까지 공개하며 적극 반박한 데 이어, 이 지사를 향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해 네거티브를 할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었죠.
"이재명 후보는 정동영 지지모임의 공동 대표로 활동하며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저격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괴롭게 했던 정치적 흐름에 이재명 후보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7월 23일, 최인호 의원 SNS 中)
여기에 제3자 격인 후보들까지 탄핵 공방을 각자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가기 위해 한마디씩 보태자,
"제가 마지막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 탄핵을 막기 위해서 의장석을 지킨 사람이죠." (정세균 전 총리, 7월 2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中)
"더 중요한 것은 그 당시 한나라당이라는 야당과 손잡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한 정당의 주역이잖아요. 추미애 대표하고 이낙연 후보가.." (김두관 의원, 7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中)
결국, 송영길 대표가 양측에 자제를 당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과거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미래로 가기 위한 선택입니다. 금도 있는 논쟁,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수준 높은 경선이 될 수 있도록.." (7월 23일, 최고위원회의 中)
■ '탄핵의 강' 건너간 이준석 vs '탄핵의 강'으로 돌아간 윤석열
시간을 거슬러 '탄핵의 강'으로 다시 돌아온 건 야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고 당 밖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20일 대구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됐습니다.
"지역에서 배출한 대통령에 대한 수사 소추를 했던 것에 대해 섭섭하거나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윤 전 총장이 박근혜 향수를 자극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이준석 대표는 곧바로 "탄핵의 강으로 다시 들어가는 취지의 발언이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는 "'님아, 그 강에 빠지지 마오'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탄핵을 연상시키는 발언은 저희 당에 입당하고자 하는 주자들은 자제해야 한다"고도 말했는데요.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전당대회 과정에서 대구를 찾아 '탄핵의 강을 건너자'며 이렇게 호소한 바 있습니다.
"국가가 통치불능의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탄핵은 그 시점에 정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준석의 이런 생각을 대구·경북이 품어줄 수 있다면..(중략)..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으나 문재인 정부의 부패와 당당히 맞섰던 검사는 위축되지 않을 것입니다." (6월 3일, 대구 합동 연설회 中)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기대와 달리 윤 전 총장이 '탄핵의 강'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 대표가 크게 아쉬움을 표한 겁니다.
"윤 전 총장이 오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 강을 내가 건너자'하고 치고 나가서 건넜다고 생각했는데, 윤 전 총장의 발언은 다시 그 강으로 들어가는 취지의.." (7월 21일, SBS 여야 대표 토론 中)
■ "與, 김경수 빈자리 커"…"野, 박근혜 사면론 맞물려 위험"
시사평론가인 리얼미터 배철호 수석연구위원은 "민주당 내 탄핵 갈등을 조율하고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였다"며 "김 전 지사의 빈자리가 여권엔 앞으로도 뼈 아플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MBC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은 지지자들의 감정싸움 수준이 아니라 이재명, 이낙연 두 후보가 직접 나서서 싸우고 있다는 점을 잘 봐야 한다"면서 "이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갈등을 넘어서는 수위여서 이러다 자칫 분당 사태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탄핵의 강'에 빠진 야권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엄경영 시대와정신연구소장은 "야권이 중도확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은 바로 '탄핵의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면서 "윤 전 총장이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대구 발언 같은 방식으로 반등시키려 한다면 '탄핵의 강'을 건너긴커녕 중도확장도 요원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명예교수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될 경우 야권이 다시 '탄핵의 강'에 빠질 수도 있다"면서 "홍준표 의원을 대선 후보로 만들고, 황교안 전 대표를 전당대회 1위로 만든 극렬 보수층이 건재한 상황에서 당대표 1명 바뀌었다고 야권이 금세 '탄핵의 강'을 건넌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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