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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남효정

'미라클 작전', 그날의 이야기

'미라클 작전', 그날의 이야기
입력 2021-09-02 11:43 | 수정 2021-09-0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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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라클 작전', 그날의 이야기

    공군 수송기에 오르는 아프간 협력자들 [외교부 제공]

    '미라클 작전', 그날의 이야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가 어제부로 공식 완료됐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프간 현지에는 수백 명의 한국 협력자들이 탈출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카불 공항을 노린 IS의 자살폭탄 테러와 로켓포 공격.

    하루 이틀만 늦었더라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을 겁니다.

    390명,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분쟁 지역에서 구출해 온 대규모 인원인데요.

    작전 관계자들이 들려주는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8월 23일 새벽, '미라클 작전' 개시

    특별기여자들을 무사히 구출해 오려는 '미라클 작전'은 8월 23일 새벽 개시됐습니다.

    작전은 총 3단계였습니다.

    특별기여자들을 실어 올 공중급유수송기 KC-330와 공군 수송기 C-130J 2대를 파키스탄으로 보내는 게 1단계.

    지대공 미사일 등 혹시 모를 탈레반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C-130J 2대를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보내 아프간인들을 파키스탄으로 수송하는 게 2단계.

    그리고 이들을 한국까지 실어오는 게 3단계.

    1단계는 무난히 마쳤지만, 2단계는 협력자들이 공항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탈레반의 훼방…"버스에 올라타 협박·구타"

    미군의 도움을 받아 버스 6대를 구하고, 카불 공항 근처에 집결지 2곳을 정하고, 비상연락망을 통해 협력자들을 모두 버스에 태우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미라클 작전', 그날의 이야기
    이제 공항 안으로만 들어가면 되는 상황.

    하지만 공항 밖을 지키고 있는 탈레반들이 훼방을 놓았습니다.

    당시 공항 안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김일응 주아프간대사관 공사참사관은 이 때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탈레반이 (버스에) 올라와 위협하는 과정에서 협력자 한 명이 구타도 당했다"면서 "이들을 돌려 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탈레반이 문제삼은 건 우리 외교부가 협력자들에게 발급해준 증명서가 '사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협력자들이 버스 안에 갇혀 있었던 시간은 14~15시간.

    보안을 위해 유리창을 검게 칠해 어둡고, 에어컨도 나오지 않아 무더운 버스 안에서 이들의 불안과 고통은 커졌습니다.

    결국 김 참사관이 증명서 '원본'을 들고 직접 나갔고, 그제서야 탈레반은 버스를 놔줬습니다.

    꼬박 밤을 새우고서야 공항 안으로 들어온 버스 6대.

    초조했던 마음에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고, 뜨겁게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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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참사관은 자신이 얼싸안은 협력자에 대해 아프간에서 1년을 같이 일한 동료라며, "그의 얼굴이 특히 상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습니다.

    카불공항 이륙한 순간…수송기에 울려 퍼진 '환호성'

    우여곡절 끝에 버스에 탄 협력자 364명이 공항에 도착했고, 8월 25일 아침 공군 수송기 C-130J 2대에 나눠 타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갔습니다.

    앞서 카불공항에 스스로 도착한 협력자 26명은 이미 파키스탄에 도착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미라클 작전을 현장에서 총괄한 이경구 특수임무단장(국방부 국제정책차장)은 수송기가 카불을 뜨는 순간 기내에는 안도의 환호성이 들렸다고 전했습니다.

    이 단장은 "당시 카불 날씨가 30도를 넘어 굉장히 무더웠는데, 다들 대기할 때부터 땀을 많이 흘리고 있어 좁은 수송기 안에서 아픈 사람이 나올까봐 땀도 닦아주면서 파키스탄까지 갔다"면서 특히 "일부 아이들이 더위에 열이 오르자 군의관들이 해열제를 처방해주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8월 25일 정오쯤 이들은 무사히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고, 이제 마지막 과제인 한국으로의 이송이 남았습니다.

    빽빽한 수송기…"짐 위에 엎드린 채 11시간 버텨"

    협력자 대부분은 가족 단위, 어린 아이들도 많아 가급적 한 수송기에 태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군수송기인 KC-330의 적정 탑승 인원은 270여 명에 233톤.

    협력자 377명과 작전 승무원·군인, 외교부 직원 등 40여 명이 타고 나니 수송기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는데, 다행히 한계 중량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남은 중량은 겨우 260kg, 성인 3~4명만 더 탔어도 수송기는 아예 뜨지 못할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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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단장은 "우리 장병들은 협력자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짐 위나 짐 사이에 구겨져서 탔다"면서 "거의 엎드린 채 11시간을 버틴 장병도 있고, 이·착륙시 짐이 사람들에게 떨어질까 봐 장병들이 몸으로 막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식사는 고기 대신 빵·음료수…분유·매트리스도

    특수임무단의 세심한 배려도 있었습니다.

    이슬람 문화를 존중해 고기 대신 빵과 음료수 등으로 세 끼 음식을 제공했고, 아기에게 줄 분유와 매트리스도 준비했습니다.

    이 단장은 "신생아들에게 준비해 간 분유를 타서 갖다 줬더니 어머니들이 상당히 감동하고 주변 사람들이 박수도 치고 감격스러웠다"며 "급하게 이륙하면 신생아들의 고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봐 최대한 천천히 이륙하고 천천히 착륙했다"고 밝혔습니다.

    덕분에 한국으로 오는 11시간의 비행은 아픈 사람 없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딸 넷' 공군 특수임무요원 "저희 애들이 생각났어요"

    이번 작전에는 작전 참여자와 아프간 협력자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협력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역할을 수행한 CCT 공군 특수임무요원 8명도 투입됐습니다.

    그 중 한 명인 김 모 상사는 아이들을 보니 이번 작전에 더욱 진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딸 4명의 아빠인 둔 김 상사는 "아이들이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 있는 딸들이 떠올랐고 이 아이들을 꼭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불안해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계속 웃어줬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아프간 탈출 보름 전에 태어난 쌍둥이 신생아도 직접 수송기로 옮겼습니다.
    '미라클 작전', 그날의 이야기
    그는 신생아가 있는 아기 요람을 들고 이동했는데, 생각보다 무거워서 덮개를 열어보니 쌍둥이 신생아가 있었다며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쳐다봤다고 당시의 소회를 기억했습니다.

    8월 26일 첫 번째 수송기에 이어 8월 27일 나머지 13명의 협력자가 수송기도 한국에 도착하면서 미라클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이들은 입국하자마자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고 음성판정을 받은 후 진천의 공무원인재개발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미라클 작전이 성공적이었듯이 협력자들의 한국 생활도 평탄하길 바랍니다.

    김 상사는 영어를 할 수 이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한 아이가 "한국에 가니까 좋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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