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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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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M본부] '세월호 구조실패' 줄줄이 무죄?… "판사가 해경 지휘부 변호사냐"

[서초동M본부] '세월호 구조실패' 줄줄이 무죄?… "판사가 해경 지휘부 변호사냐"
입력 2021-02-16 16:31 | 수정 2021-02-1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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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M본부] '세월호 구조실패' 줄줄이 무죄?… "판사가 해경 지휘부 변호사냐"
    #. 재판부의 이례적 소회…"비판 감수하겠다"

    어제(15일) 서울중앙지법에선 김석균 전 청장 등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의 지휘부 10명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렸습니다.

    법정에 선 건 당시 해경의 총책임자였던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사고 해역의 관할 지방청장이었던 김수현 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당시 일선서의 서장이었던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 등 해경 지휘관.

    또, 이들을 보좌했던
    이춘재 전 해경 경비안전국장,
    여인태 전 해경 경비과장,
    유연식 전 서해해경청 상황담당관,
    최상환 전 해경 차장,
    임근조 전 해경 상황담당관,
    김정식 전 서해해경청 경비안전과장,
    조형곤 전 목포해경서 상황담당관도 함께 재판을 받았습니다.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즉각 필요한 구조 지휘를 하지 않아 303명을 숨지게 하고, 142명을 다치게 한 혐의.

    결과는 이미 보도된 것처럼 '전원 무죄'였습니다.

    구조엔 실패했지만 지휘부에겐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결과입니다.

    선고 내내 재판정에 앉아 있던 세월호 가족들은 목소리를 높여 "말이 되느냐" "판사가 해경의 변호사라도 되느냐"고 항의했고

    선고가 끝난 뒤에도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법정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이례적으로 소회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2021. 2. 15 해경 지휘부 1심 선고 中]
    재판장 : "한마디 덧붙이겠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생명을 잃은 여러 피해자들, 가족들,
    그리고 그 상황을 화면으로 아침 일찍 지켜봐야 했던 많은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준 사건입니다. 여러 측면에서 사건을 돌이켜봐야 하고…" (더 작아진 목소리로) "재판부 판단에 대해 여러 평가가 이뤄질 것인데, 재판부도 그런 평가에 대해서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권위를 생명으로 여기는 법관 스스로 판결에 대해 비판을 감수하겠다고까지 말한 이유가 무엇일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서초동M본부] '세월호 구조실패' 줄줄이 무죄?… "판사가 해경 지휘부 변호사냐"
    #. 번번이 빠져나간 해경 수뇌부…뒤늦은 기소

    2014년 4월 16일,

    우리 사회는 그 날 일어난 일을 '참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안전 대신 이윤을 추구한 해운사의 선박 불법 개조와 규정을 넘어선 과적,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승조원,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

    눈 앞에서 배가 침몰하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만 있었던 해양 구조 책임자.

    '참사'란,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일어난 비극적인 사태의 본질을 단적으로 표현한 단어일 겁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 국회 국정조사, 해양안전심판원의 특별조사, 감사원 감사에 이어 세월호 특조위 등 무려 7개 기관이 8차례나 조사와 수사를 했죠.

    이 과정에서 해운사 관계자와 선장은 물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의 말단 지휘관까지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독 해경 지휘부만은 번번이 처벌 대상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다 결국 지난해 2월에야 재판에 넘겨졌는데, 참사로부터 6년이나 지났고, 일부는 이미 퇴직까지 한 뒤였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책임자 처벌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참사'에 대한 사회적 반성 때문일 겁니다.

    결국,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관통하는 이번 사건에 대한 선고는, 개개인의 유·무죄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의미가 큰 판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초동M본부] '세월호 구조실패' 줄줄이 무죄?… "판사가 해경 지휘부 변호사냐"
    #. 123정장 판결엔 '지휘부 공동책임' 명시

    그런데 따지고 보면, 기소의 근거가 된 사실관계들은 이미 6년 전에 밝혀진 것들이었고, 그 이후에 변한 건 딱히 없었습니다.

    그러나 참사 당시엔 예를 들어 '대형 화재로 다수가 사망했을 때 현장에 없었던 소방방재청장을 처벌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논리가 우세했는데요.

    게다가 비슷한 판례도 전혀 없다는 법리적인 이유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지휘부를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된 건 현장 지휘관이었던 123정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 덕분이었습니다.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123정장, 2심에서 징역 4년형이 3년으로 깎였는데, 감형의 이유로 '지휘부 책임'이 분명하게 판시된 겁니다.

    [광주고등법원, 123정장 2심 판결(2015년 7월)]
    "(해경 지휘부가) 피고인으로 하여금 구조 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하였으며, 평소 해경들에게 조난 사고에 대한 교육훈련을 소홀히 하는 등 해경 지휘부나 사고 현장에 같이 출동한 해경들에게도 승객 구조 소홀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으므로, 피고인에게만 피해자들의 사망·상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가혹하다"


    그리고 이 판결은 2015년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결국, 판결문의 이 짧은 문장에 힘입어 뒤늦게라도 해경 수뇌부 10명을 재판정에 세울 수 있었던 겁니다.
    [서초동M본부] '세월호 구조실패' 줄줄이 무죄?… "판사가 해경 지휘부 변호사냐"
    #. 그때는 '지휘부 탓' 지금은 '현장 탓'

    그러나 어제 나온 1심 판결은 앞서 희망을 보여줬던 법원 판단을 다시 정면으로 뒤집었습니다.

    재판부가 내세운 무죄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일단, 현장에 도착한 123정이 보고를 너무 늦게 했고, '퇴선을 유도하겠다'고 해놓고도 이행하지 않았다며 123정장에게 책임을 미뤘습니다.

    이에 더해 당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배를 버리고 도망친 것을 고려하면, 설령 해경 지휘부가 현장에 퇴선을 지시했다 하더라도 묵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러나 현장에 탓할 게 있다고 해서 제대로 지시하지 않은 지휘권자의 잘못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김문홍 당시 목포해경서장은 현장에 있던 123정장의 보고를 받고서도 "힘 좀 내봐"라고 소리쳤을 뿐입니다.

    반대로, 해경 수뇌부가 제대로 지휘했다면, 한 명이라도 더 구조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결국 법원이 지휘부와 구조 현장, 양측 책임을 일관성있게 따지긴 커녕 매번 다른 쪽에 책임을 떠넘긴 셈이 됐습니다.
    [서초동M본부] '세월호 구조실패' 줄줄이 무죄?… "판사가 해경 지휘부 변호사냐"
    #. 재난 상황인데 '예상하기 힘들어' 무죄?

    무죄의 또 한가지 이유는 '세월호가 예상보다 빨리 침몰할 거라고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겁니다.

    예상 밖의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경우가 바로 재난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논리대로라면 사실상 지휘부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없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어제 판결에 대한 비판 성명에서 재판부의 이같은 판단에 일침을 놨습니다.

    [2월 16일자 민변 성명서 中]
    "모든 것이 예상대로 진행되면 재난은 발생하지 않는다. (중략) 재난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연속되어 발생한다. 재난 상황에 처한 국민의 생명을 '미리 예상할 수 없었다'는 말로 포기할 수는 없다"


    재판부가 지나치게 형식적인 논리에 사로잡혀 이번 판결의 사회적 의미를 망각한 건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서초동M본부] '세월호 구조실패' 줄줄이 무죄?… "판사가 해경 지휘부 변호사냐"
    #. "우리 사회를 참사 이전으로 회귀시킨 판결"

    재판이 끝난 뒤 4.16가족협의회는 '이번 판결이 우리 사회를 참사 이전으로 회귀시켰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선고 직후]
    "'참사'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살아야 했는데 사는 게 당연했는데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참사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재판 결과는 '아쉽고 안타깝지만 죄를 물을 수 없다' 즉, 불가항력적인 희생이었다는 뜻밖에 안 됩니다. 이제 모든 국민은 위험에 처하면 스스로 탈출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구해주지 않습니다."


    '판결이 사회를 회귀시켰다'는 비판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는데요.

    예컨대 이번 판결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보면 이렇다는 겁니다.

    만약 대형 수난 사고가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통신이 원활해 모든 보고가 제때 정확히 이뤄지고,

    지휘부가 현장 영상까지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선박이 예상 그대로 서서히 침몰하고,

    현장 요원들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데도 명백히 잘못된 지휘를 해야만 구조 책임자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현장에 출동한 말단 지휘관은 상급자가 제대로된 지휘를 하지 않아도 구조를 미흡하게 하면 처벌받습니다.

    결국 지휘 권한과 책임의 무게에 완전히 반비례하는 법적 판단이라는 것이죠.

    이 때문에 이번 무죄 선고는 재난에서 국민을 구조해야 할 국가의 헌법상 의무를 부정한 판결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선고 직후 이미 검찰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또 한 번 더 받게 될 겁니다.

    1심은 "'참사'에 대한 사회적 반성을 무참히 몰각한 판결"이란 비판을 감수해야 했는데요. 다음 판결도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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