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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예고] "법적으로 사망할 수도 없는", '이름 없는' 아이들

[PD수첩 예고] "법적으로 사망할 수도 없는", '이름 없는' 아이들
입력 2021-03-09 15:56 | 수정 2021-03-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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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사랑이법 개정 이후 약 4년, 미혼부 자녀 출생신고 500건 중 인정 '70여 건'
    - "법적으로 태어나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사망할 수도 없다" 출생신고의 사각지대

    “아이가 죽었어요. 구급차 좀 보내주세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주택가.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 그 시각, 문 밖에선 두 시간 가까이 한 남자가 집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었다. 남자는 일주일 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경찰을 통해 딸의 죽음을 알게 된 그날, 남자는 아이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민’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9살 아이. 하지만 서류상 아이는 이름도,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무명녀’였다. 숨이 멎기 전까지 출생신고가 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름 없는 아이의 죽음을 신고한 사람은 낳아 길러준 엄마이자, 하민의 친아빠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백 모 씨였다. 별거를 시작한 6개월 전부터 딸을 맡아 키운 그는 생활고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딸을 죽였다고 진술했다. 이 둘은 별거 기간 내내 하민의 출생신고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계속되는 남편의 요구에도 하민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던 백 씨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곳곳에 이름 없는 아이와 그 아빠가 있다. 엄마 없이 아이를 책임지려 했던 ‘미혼부’들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아빠가 되는 절차에서 거부당하는 모양새다. 8개월 된 딸을 등에 업고, 미혼부들의 출생신고 절차를 개정하는 데 앞장선 김지환 씨. 일명 ‘사랑이법’을 이끌어낸 그는 “주민번호가 없는 아이, 그 아기를 돌보는 아빠 입장에선 하루라도 빨리 출생신고 되는 게 생활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도 당연히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미혼부들은 생각도 못한 난관에 부딪혀야 하고, 그 사이 이름 없는 아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릴 수 없다.

    6살 수정(가명)이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이대로라면 초등학교 입학도 불가능하다. 아빠 강진우(가명) 씨는 출생신고를 시도했으나 아이 출생증명서에 남은 엄마의 신상기록 때문에 거절당했다. 당시 전남편과 이혼 소송 중이었던 아이 엄마는 수정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아이가 세 살 되던 해 집을 나갔다. ”아이 엄마 손을 잡고 병원 가서 출산했는데, 아이 엄마가 누군지 몰라야 된단 얘기예요.“ 그는 지금도 언제일지 모를 법 개선만을 기다리고 있다.

    현행법상 자녀의 출생신고는 사실상 엄마만이 가능하다. 만약 하민이 엄마처럼 사실혼 관계에 있음에도 법적 남편이 따로 존재한다면, 아이는 친자 여부와 관계없이 법적 남편의 자녀로 등록된다. 생물학적 친부가 본인의 자녀를 출생신고 하려면 우선 아이 엄마의 존재를 몰라야 한다. 통상 유전자 검사를 비롯한 4~5단계의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민 부모의 경우처럼 친부가 아이 엄마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면, 아이 엄마의 법적 남편을 상대로 그가 아이의 친부가 아니란 소송 절차까지 밟아야 한다. 그조차도 아이 엄마가 출생신고를 해줄 경우 가능한 일이다. 이렇다보니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혼부들의 출생신고는 ‘산 넘어 산’인 셈. 사랑이법이 시행된 후 2019년 6월까지, 미혼부들의 출생신고 500여 건 중 단 70여 건만이 인정됐다.

    하민의 엄마 백 씨는 서면을 통해 “딸과 함께 가지 못하고 살아있는 게 고통스러울 뿐”이란 입장을 전해 왔다. 하민은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이름을 얻었지만, 또 다른 하민이들은 지금도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살고 있다. PD수첩 ‘#살아있었다 – 미혼부의 출생신고’는 오늘(9일) 밤 10시 4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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