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자리에서 오래 장사할수록 내쫓기 쉬워요" "어차피 법 바깥에 있는 거예요"
- "상가는 부르는 게 값" 임대료 인상, 퇴거 요청 등 임대인 요청에 임차인은 속수무책
- 을지OB베어, 공씨책방, 청량리수산시장 … 가게의 역사는 임차인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
지난 1년 사이 약 23만 개 가게가 문을 닫았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 석 달 동안엔 하루마다 1,500여개의 가게가 사라졌다. 코로나19가 휩쓴 자리에서 자영업자들의 생계는 위태롭기만 했다.
지난해 9월, 국회는 이런 현실을 반영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했다. 개정안에는 코로나19와 같은 1급 감염병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대료 감액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임차인들이 감액을 요구하더라도, 임대인이 이를 수용할 의무는 없기 때문. 한때 ‘착한 임대인’ 운동이 불기도 했지만 역시 임대인의 의지가 우선이었다.
임차인의 생존권이냐, 임대인의 재산권이냐.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이런 갈등으로 고통받는 곳들이 있다. ‘힙지로’의 상징이자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효시와 같은 을지OB베어도 그 중 하나다. 1980년 개업해 40년 업력을 자랑하는 을지OB베어. 이곳은 최근 2년 넘게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2018년 10월 계약이 만료되기 한 달 전, 건물 주인이 퇴거를 요청하며 명도소송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2013년 계약을 갱신할 때만 해도 “이 동네가 폭발하지 않는 이상 나가란 말씀 안 드린다”던 임대인은 입장을 바꿨다. 계약 조건을 맞추겠다고 했지만 건물주는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건물주는 그 곳에서 카페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을지OB베어는 결국 패소했다. 꼼짝 없이 가게를 비워야 할 처지가 된 을지OB베어.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고, 을지OB베어가 ‘백년가게’로 지정된 사실도 건물주의 의지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이 일대에선 수상한 소문도 돌았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만 7개 점포를 갖고 있는 A호프 주인이 실세고, 을지OB베어를 내보낸 뒤 또 하나의 A호프를 차린다는 것. 인근 상인은 “다 내쫓고 A호프 거리를 만드는 게 (A호프 주인의) 목표”라고도 했다. 최근까지 을지OB베어에 두 차례 강제집행이 시도됐다. 인근 상인들의 도움으로 강제집행은 가까스로 막아냈다. “이것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 생각했다는 을지OB베어 최수영 2대 사장. “1대 창업주 평생 직장인 이곳을 원형 그대로 지키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은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청량리 수산시장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2019년, 대명종합건설과 그 계열사가 청량리수산시장의 새 주인이 되면서 상인들은 재계약을 ‘강요’받았다. 임대인은 기존보다 2배가량 높은 임대료를 요구했다. 상인들은 거절할 수 없었다. 바로 퇴거 압력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유불문이에요. 무조건 나가라고.” 상인들이 받은 계약서는, 임차인에게 불리한 조건들이 여럿 포함돼 있었다. 계약 기간은 임대인의 재량이었고, 단체 행동은 금지됐고, 임차인들은 임대인의 퇴거 요청 시 3개월 이내에 이행할 것을 적시한 이행 각서에도 동의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노비문서와 같은 거예요.” 올해 들어선 이곳 일대가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후보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곳 상인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오랜 기간 노포에 주목해 온 박찬일 셰프는 “노포는 생각보다 공공성이 있다”며 “우리가 힘겹게 얻은 것을 법률의 이름으로 잃어버리는 건 모두의 손해”라 말한다. 하지만 임차인들에게 현행법은 미약하기만 하다. 역사와 자본의 가치가 상충하는 사이, 임차인의 생존권은 여전히 위태롭다. PD수첩 ‘생존전쟁 2부작 1부 – 건물주와 벼랑 끝 노포들’은 오늘(20일) 밤 10시 40분에 방송된다.
사회
PD수첩팀
[PD수첩 예고] '생존전쟁 2부작 1부' 임대인의 재산권, 그리고 임차인의 생존권
[PD수첩 예고] '생존전쟁 2부작 1부' 임대인의 재산권, 그리고 임차인의 생존권
입력 2021-04-20 08:46 |
수정 2021-04-2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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