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수원지방법원에선 10살 조카를 이른바 '물고문'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의 3번째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날 재판에서는 10살 조카에게 이모 부부가 했던 학대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검찰이 법정에서 공개한 영상은 13건.
지난 1월 중순부터 아이가 숨진 2월 8일까지 이모 안 모씨의 휴대전화와 집안에 있던 감시카메라에 찍힌 것들입니다.2021년 1월 16일 오후 4시쯤
아이는 옷을 모두 벗은 채 욕실 바닥에 쭈구리고 앉아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왼쪽 어깨와 허벅지에는 시퍼런 멍자국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이가 빨래를 하는 게 늘 있었던 일인 듯 이모 안 씨는 변기 뚜껑을 닫더니 손을 씻고 욕실 나갑니다.2021년 1월 17일 오전 7시쯤
이날도 아이는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
불이 꺼진 깜깜한 거실에서 양손을 들고 벌을 받고 있습니다.2021년 1월 20일 낮 1시쯤
아이가 파란색 대형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모 안 씨는 아이에게 흰색 비닐봉지 안에 있는 개의 대변을 줍니다.
그리고 소리칩니다.
[안 씨/이모]
"왜 핥아먹어? 그거 아이스크림 아니야. 입에 쏙 넣어. 야, 장난해?"
이어지는 다그침.
[안 씨/이모]
"입에 쏙!"
이모는 조카에게, 아니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일을 시켰고, 겁에 질린 표정의 아이는 더 한 고통을 피하려 지시를 따랐습니다.
2021년 1월 24일 저녁 7시쯤
이모 안 씨가 또 소리칩니다.
[안 씨/이모]
"야 장난해? 네가 3일 동안 똥 먹겠다며 아니라고? 내가 너한테 그렇게 하라고 시켰니?"
개의 대변을 먹는 아이의 뒤로 안 씨의 친자녀로 추정되는 아동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외에도 욕실청소를 시키고, 양 손을 들고 있으라며 고함 치는 장면들도 많았습니다.
아이가 왼쪽 팔을 벌리기 힘들다고 하자 이모는 국민 체조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죄송하다며 동영상 찍는 걸 멈춰달라고 사정합니다.
영상 속 아이의 엉덩이와 어깨, 허벅지 등 신체 곳곳엔 멍이 들어 있습니다.2021년 2월 8일 오전 11시쯤
안 씨가 "이모부 쪽으로 걸어"라고 이야기하자 이모부 김 모 씨는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합니다.
[김 씨 / 이모부]
"아이, XX"
아이는 비틀거리며 방향을 바꾸려다 강아지 울타리가 세워져 있는 거실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집니다.
안 씨도 순간 "어머"라며 놀라는 소리를 냅니다.
넘어지는 순간에도 아이는 뒤를 돌아 이모 안 씨를 쳐다봅니다.
이 영상이 찍힌 후 이모 부부는 아이를 욕실로 데려가 몸을 묶고 욕조에 수차례 머리를 넣는 물고문을 가합니다.
낮 12시 반쯤 이모는 아이가 물에 빠졌다며 119에 신고를 합니다.
아이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 영상이 삶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영상이 공개되는 동안 방청석은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일부 방청객은 이모 부부에게 욕을 하고 "사형을 내려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모 부부는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부부 측 변호인도 영상을 본 뒤 "특별히 할말이 없다"고 밝혔습니다."아이가 죽을 줄 알았을 것"
아이를 부검한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는 감정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갑자기 피해자가 엎어지는 것을 보고, 누군가(수사 검사에 의하면 이모라고 함)도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어머"하고 소리 지른다.
감정인이 이 장면을 본 순간 떠오른 생각은 <쟤, 저러다 죽지 않나?>였다.
박종철 물고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은 물고문을 당하면 죽을 수 있다고 알고 있다.
본건 동영상 장면과 박종철 물고문 사건을 겹쳐보면 <비틀비틀 걸어오다 갑자기 개 울타리 안으로 쓰러질 정도로 구타당한 아이가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뺐다 하는 물고문을 당한다면 진짜 죽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저절로 떠오를 것 같다."
법의학자는 이모에게 살해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도 입건 당시 아동학대치사 혐의 대신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했습니다.합의서 제출한 친모
아이의 친엄마 역시 방임 혐의로 불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의 학대를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의 친엄마는 지난달 31일 이모 부부와 합의한 뒤 법원에 합의서를 제출했습니다.
가해자 형량을 줄이려는 시도에 아이 친엄마도 동의한 겁니다.
하지만 이 합의서로 이모 부부의 형량이 줄어들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의 중대성과 특수성을 볼 때 재판부가 합의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게다가 학대 방임혐의를 받고 있는 친모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친모는 아이의 유족임과 동시에 학대를 방임한 가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너무나 처절해 차마 쓸 수 없는 기사
재판을 지켜 보는 내내 아이가 겪은 고통이 느껴져 힘들었습니다.
행복한 웃음으로 꽃 피어야 할 10살 아이의 얼굴은 겁에 질린 표정과 피멍으로 가득했습니다.
친모조차 가해자 부부와 합의한 걸 보면 아이에게는 살아생전 자신의 편이라곤 단 한명도 없었을 것만 같았습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보도를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아이가 받은 학대 영상은 보는 것 만으로도 너무 큰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글도 영상 표현을 최대한 자제해 써야했습니다.
하지만 영상이 너무 끔찍해 어른들이 외면하는 건 세상을 떠난 아이에게 또 한번 상처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는 것 만으로, 읽는 것 만으로 고통스러운 이 상황을 어른들은 견뎌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외로웠을 10살 서연이(가명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데도 아이의 실명조차 가족들의 반대로 쓸 수 없습니다)를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기를, 서연이를 위해 엄정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라며 재판 참관기를 마칩니다.
사회
임상재
너무나 처절해 차마 다 쓸 수 없는…10살 서연이의 마지막 석 달
너무나 처절해 차마 다 쓸 수 없는…10살 서연이의 마지막 석 달
입력 2021-06-11 10:05 |
수정 2021-06-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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