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3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올라온 김 모씨의 주소지. 자신의 딸을 강제추행한 혐의 등으로 징역 9년을 살고 나온 김 씨는 10년간 신상정보 공개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이트에 올라온 주소를 지도에 찍어보니,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산 한가운데 위치였습니다. 제보자는 본인이 직접 현장에 다녀온 뒤 경찰과 여가부에 여러 차례 민원 전화를 넣었다고 전했습니다.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혹시나 주변에 이사오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 봤는데 그래도 설마 이런 황당한 위치에 주소가 등록돼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직접 현장에 가봤더니, 나오는 건 산 중턱에 흑염소 두 마리가 뛰노는 우리 뿐. 한참 더 인적 없는 산길을 오르고 나서야 정확한 번지 수와 일치하는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0년간 비어있는 폐가였습니다. 멀쩡히 주인이 있는 남의 빈 집을 자신의 주소지로 등록해 놨던 겁니다.
(**다행히 지금은 알림e 사이트에 주소가 제대로 수정돼 있습니다. 해당 보도와 관련해, 부산경찰청은 성범죄 전과자 김 모씨가 지난 3월 출소 전에 신고한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김모씨를 직접 대면하는 방법으로 실제 거주지를 파악하여 신상정보를 변경등록하였으며, 이후에도 대상자의 신상정보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알려 왔습니다.**)

■ 법무부-여성가족부-경찰청, 성범죄자 관리 업무 3원화해놨더니..
사실 현행 시스템상 이런 '떠넘기기' 현상은 필연적입니다. 법무부는 성범죄자 등록정보 관리, 여성가족부는 알림e 사이트 공개와 관리, 경찰은 대상자 관리와 현장 확인 업무를 맡고 있는데, 3개의 부처를 거치면서 정보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스템상 문제가 생겨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기관이 어디인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성범죄자가 주소지를 제대로 등록하지 않거나, 20일 이내 신고 기간을 넘기는 등 신상정보 등록 의무를 위반한 사례를 경찰이 파악해 입건한 건수만 5천 건이 넘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 대상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제대로 처벌됐는지까지가 궁금하다, 자료를 요청했더니 세 기관 중 어느 곳도 제대로 된 통계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챙겨보지 않는 겁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각 기관 담당자들이 1년에 두 번 정도 모여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업무상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현행법상으로는 이렇게 서로 자료를 공유할 만한 근거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제도의 공백을 인력으로 겨우 메우고 있는 셈이 아닌가, 싶어 한편으로는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성범죄 피해자들을 치료하면서 느낀 건, 이분들이 다시 그 가해자를 마주칠지 모른다는 공포의 수준은 정말 우리가 볼 때는 비이성적으로 높습니다. 피해자들은 사람의 눈만 마주치면 '바로 나를 덮칠 것 같다', 이렇게까지 얘기를 할 정도로 불안이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신상공개를 영원히 해줬으면 싶은 거죠. 항상 자기들이 볼 수 있게. 조두순도 신상공개 기간은 5년밖에 안 됩니다. 피해자들의 마음에 한참 못 미치는 거죠."
그 조두순마저도 신상정보 공개기간은 겨우 5년, 5년이 지나면 나영이를 포함한 우리들은 조두순의 새로운 주소지를 영영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기간조차도 정확한 정보가 제때제때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안한 일일까요.
■ 언제까지 끔찍한 범죄 터진 뒤에야 허둥지둥 대책 마련할 건가
그렇다면 부실투성이 성범죄 알림e 사이트, 어떻게 제대로 해야 관리할 수 있을까요? 현행 시스템상 3개월, 6개월, 1년마다 정해진 주기에 경찰이 실제 주소지 확인 등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걸 더 적극적으로, 자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신상공개제도만 하더라도 그렇다. 사회 복귀 의사가 있는 범죄자에겐 효과가 있지만, 이미 너무 여러 번 범죄를 저질러서 교도소에서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보낸 소위 '막가는 흉악범'에게는 오히려 주소지 공개가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수도 있다. 이미 이들은 대부분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끊겨있고, 고시원이나 모텔을 짧은 기간씩 전전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의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제대로 된 국내 성범죄자 연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또한 성범죄 재발을 위해서 우리 사회가 과연 얼마나 비용을 치를 수 있을지, 어떤 가치부터 우선 순위에 둬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다같이 고민해야 될 시점이 왔다."
신상공개제도 시행,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도대체 왜 업무가 세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지, 담당자들도 그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구멍 숭숭 뚫린 채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안전한 나라"를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법무부와 경찰, 여성가족부로 삼원화된 현행 시스템이 과연 최선의 형태인지 점검해 보고, 이를 제대로 정비하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실천에 옮겨야만 끝없이 반복되는 성범죄 피해를 한 건이라도 더 막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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