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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조재영

사라지는 성범죄자들…믿을 수 없는 '알림e'

사라지는 성범죄자들…믿을 수 없는 '알림e'
입력 2021-06-19 07:38 | 수정 2021-06-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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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는 성범죄자들…믿을 수 없는 '알림e'
    ■ 알림e 사이트에 올라온 성범죄자 주소…산 속 염소 우리, 10년째 폐가?

    올해 3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올라온 김 모씨의 주소지. 자신의 딸을 강제추행한 혐의 등으로 징역 9년을 살고 나온 김 씨는 10년간 신상정보 공개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이트에 올라온 주소를 지도에 찍어보니,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산 한가운데 위치였습니다. 제보자는 본인이 직접 현장에 다녀온 뒤 경찰과 여가부에 여러 차례 민원 전화를 넣었다고 전했습니다.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혹시나 주변에 이사오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 봤는데 그래도 설마 이런 황당한 위치에 주소가 등록돼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직접 현장에 가봤더니, 나오는 건 산 중턱에 흑염소 두 마리가 뛰노는 우리 뿐. 한참 더 인적 없는 산길을 오르고 나서야 정확한 번지 수와 일치하는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0년간 비어있는 폐가였습니다. 멀쩡히 주인이 있는 남의 빈 집을 자신의 주소지로 등록해 놨던 겁니다.

    (**다행히 지금은 알림e 사이트에 주소가 제대로 수정돼 있습니다. 해당 보도와 관련해, 부산경찰청은 성범죄 전과자 김 모씨가 지난 3월 출소 전에 신고한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김모씨를 직접 대면하는 방법으로 실제 거주지를 파악하여 신상정보를 변경등록하였으며, 이후에도 대상자의 신상정보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알려 왔습니다.**)
    사라지는 성범죄자들…믿을 수 없는 '알림e'
    20대 여성을 성폭행해 교도소에서 7년을 살고 나온 김 모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이트에 올라온 주소는 충남 청양의 폐업한 식당 건물. 잠시 이 곳에서 지내다가 3~4달 전에 떠났다는데, 알림e 사이트에는 현재 김 씨의 실거주지로 해당 주소가 떡하니 올라와 있었습니다. 여성가족부에 주소가 왜 틀렸냐고 전화해 보니 "현장 담당은 경찰 업무"라면서 그쪽에 확인해 보라고 하고, 관할 경찰서는 "법무부가 관리하는 대상자(전자발찌 착용자)이니 실 거주지는 법무부에서 관리한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국가기관에서 직접 공개하고 있으니 시민들은 100% 정확할 거라고 믿고 있는 정보가 틀렸는데도, 어느 한곳에서 "즉각 처리하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 법무부-여성가족부-경찰청, 성범죄자 관리 업무 3원화해놨더니..

    사실 현행 시스템상 이런 '떠넘기기' 현상은 필연적입니다. 법무부는 성범죄자 등록정보 관리, 여성가족부는 알림e 사이트 공개와 관리, 경찰은 대상자 관리와 현장 확인 업무를 맡고 있는데, 3개의 부처를 거치면서 정보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스템상 문제가 생겨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기관이 어디인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성범죄자가 주소지를 제대로 등록하지 않거나, 20일 이내 신고 기간을 넘기는 등 신상정보 등록 의무를 위반한 사례를 경찰이 파악해 입건한 건수만 5천 건이 넘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 대상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제대로 처벌됐는지까지가 궁금하다, 자료를 요청했더니 세 기관 중 어느 곳도 제대로 된 통계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챙겨보지 않는 겁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각 기관 담당자들이 1년에 두 번 정도 모여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업무상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현행법상으로는 이렇게 서로 자료를 공유할 만한 근거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제도의 공백을 인력으로 겨우 메우고 있는 셈이 아닌가, 싶어 한편으로는 안타까웠습니다.
    사라지는 성범죄자들…믿을 수 없는 '알림e'
    알림e 사이트가 왜 중요할까요. 전과자의 재범을 막는 심리적 억지력, 지역 주민들의 위험 대비 차원도 있겠지만 성범죄 피해자 입장에서도 가해자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우리나라 제도상 알림e 사이트가 유일합니다. 조두순이 출소해서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자 나영이 가족이 이사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나도 씁쓸하지만, 거주이전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 제한할 수 없다면, 최소한 피해자에게 '알고 피할 수 있는 선택권'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라지는 성범죄자들…믿을 수 없는 '알림e'
    나영이 주치의였던 신의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겸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 회장)에게 성범죄 피해자들의 마음이 어떨지, 물어봤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성범죄 피해자들을 치료하면서 느낀 건, 이분들이 다시 그 가해자를 마주칠지 모른다는 공포의 수준은 정말 우리가 볼 때는 비이성적으로 높습니다. 피해자들은 사람의 눈만 마주치면 '바로 나를 덮칠 것 같다', 이렇게까지 얘기를 할 정도로 불안이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신상공개를 영원히 해줬으면 싶은 거죠. 항상 자기들이 볼 수 있게. 조두순도 신상공개 기간은 5년밖에 안 됩니다. 피해자들의 마음에 한참 못 미치는 거죠."

    그 조두순마저도 신상정보 공개기간은 겨우 5년, 5년이 지나면 나영이를 포함한 우리들은 조두순의 새로운 주소지를 영영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기간조차도 정확한 정보가 제때제때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안한 일일까요.

    ■ 언제까지 끔찍한 범죄 터진 뒤에야 허둥지둥 대책 마련할 건가

    그렇다면 부실투성이 성범죄 알림e 사이트, 어떻게 제대로 해야 관리할 수 있을까요? 현행 시스템상 3개월, 6개월, 1년마다 정해진 주기에 경찰이 실제 주소지 확인 등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걸 더 적극적으로, 자주 할 수 있을까요?
    사라지는 성범죄자들…믿을 수 없는 '알림e'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경찰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게 강력범죄, 살인나 강도, 성범죄 사건에 우선적으로 수사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고, 일의 긴급성 내지 우선순위를 따지면 성범죄자 주소지 등록 관리 업무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얘기했습니다. 경찰이 원체 많은 업무를 맡고 있기도 하고 인력과 예산상의 지원이 부족한, 그런 문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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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래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고질적인) 문제는 인력과 예산"이라며, "범죄가 발생하고 범죄자를 잡는 건 성과가 있는데, 범죄를 예방하는 건 원래 성과가 없어요. 얼마나 범죄가 발생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측정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예산을 들이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형사정책 연구를 하다 보면 범죄가 발생하고 난 뒤에 사후 검거는 정말 낙후된 정책이고, 진짜 중요한 건 선제적인 예방 기술이에요."
    사라지는 성범죄자들…믿을 수 없는 '알림e'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주소 확인 업무에 나설 경우 또다른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닌데, 과거에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앞으로도 또 저지를 거라는 전제 하에 왜 나를 감시하냐, 라는 또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될 거죠. 그러면 그러한 인권 침해 논쟁으로 인한 이득이 더 큰지, 아니면 지역사회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지켜서 얻는 이득이 더 큰지, 그것은 결국 국민들이 선택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사라지는 성범죄자들…믿을 수 없는 '알림e'
    "우리나라는 1회성 단순 강제추행부터 지독하게 흉악한 강간살인범까지 몽땅 뭉뚱그려서 하나의 '성범죄자' 집단으로 취급해서 성범죄 대책을 만들고 시행하기 때문에 늘 한계에 부딪치고,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이다. 성범죄자를 유형별로 나누고, 각 유형에 따라 어떤 대책이 가장 효과적일지 살펴보는 국내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

    신상공개제도만 하더라도 그렇다. 사회 복귀 의사가 있는 범죄자에겐 효과가 있지만, 이미 너무 여러 번 범죄를 저질러서 교도소에서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보낸 소위 '막가는 흉악범'에게는 오히려 주소지 공개가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수도 있다. 이미 이들은 대부분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끊겨있고, 고시원이나 모텔을 짧은 기간씩 전전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의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제대로 된 국내 성범죄자 연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또한 성범죄 재발을 위해서 우리 사회가 과연 얼마나 비용을 치를 수 있을지, 어떤 가치부터 우선 순위에 둬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다같이 고민해야 될 시점이 왔다."

    신상공개제도 시행,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도대체 왜 업무가 세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지, 담당자들도 그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구멍 숭숭 뚫린 채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안전한 나라"를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법무부와 경찰, 여성가족부로 삼원화된 현행 시스템이 과연 최선의 형태인지 점검해 보고, 이를 제대로 정비하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실천에 옮겨야만 끝없이 반복되는 성범죄 피해를 한 건이라도 더 막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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