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PD수첩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주인공은 윤정희 씨의 동생 손병욱 씨. 손병욱 씨는 "윤정희 씨 걱정에 잠을 못 잔다. 우리 누나를 좀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1960년대 한국영화계를 풍미했던 여배우인 윤정희 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윤정희 씨는 2019년 1월,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 장례를 치른 뒤, 윤정희 씨는 윤정희 씨 동생과 함께 지냈다. 그 당시 윤정희 씨는 남편인 백건우 씨를 찾으며, 하루에 수십 번 전화를 걸기도 했다. 윤정희 씨의 동생은 "(백건우 씨가) 나는 언니를 안 보겠다. 언니가 자기 얘기를 물어보고 하면, 자기를 생각나게 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2019년 4월 29일, 백건우 부녀는 윤정희 씨를 찾았다. 윤정희 씨 동생은 "들어가서 언니가 주무시는데 막 일으켜 세웠어요."라며, 백건우 부녀가 윤정희 씨를 데려갔다고 말한다. 윤정희 씨는 즐겨 매던 가방과 치매약까지 그대로 놓고 떠났다.
그 이후, 윤정희 씨의 딸은 프랑스 법원에 윤정희 씨의 후견인 선임을 신청했다. 성년후견제도란 치매 등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사람들을 위해서 후견인을 선정하고, 법률행위를 대신하도록 하는 제도다. 후견인은 당사자를 대신하여 재산을 관리하고, 치료와 요양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윤정희 씨의 딸은 자택 근처에 집을 매입해 윤정희 씨를 돌보겠다고 밝혔다. 이에 윤정희 씨 동생들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동생의 자택을 공사해 돌볼 수 있다며, 공동후견인 선임을 신청했다. 그러나 프랑스 고등법원은 윤정희 씨의 딸을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공동후견인으로는 프랑스의 한 후견협회가 선임됐다. 노승혜 프랑스 변호사는 "가족 우선주의라는 원칙이 민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당사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가족 중에는 우선적으로 배우자, 직계가족 그리고 같이 거주하거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지, 지인 순으로 후견인을 찾게 되어있다"고 설명했다.
윤정희 씨의 후견인이 선임된 후, 윤정희 씨와 동생들의 연락은 제한되었다. 전화 통화는 한 달에 한 번, 만남은 3개월에 한 번 가능했다. 전화 통화는 2주 전, 만남은 한 달 전에 요청해야 했다. 윤정희 씨 동생은 공동후견협회에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내 방문을 요청했지만, 만남은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굉장히 드문 경우다. 후견인이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며, "후견인이 되고 난 다음에 그동안 쭉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부분이며, 넓게 교류하도록 돕는 것이 후견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윤정희 씨 후견인 측은 동생 측이 윤정희 씨의 사진을 촬영한 뒤, 배포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거나 이미지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며 초상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배우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영화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심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동생이 서울에서 윤정희 씨에게 보낸 우편물이 반송된 적도 있었다. 반송된 우편물에는 보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윤정희 씨 동생은 "저희 누나를 고립시키고 있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통신의 자유, 우편물 배달, 방문의 자유를 강력하게 제한시키고 있다"며, "기가 막힌 일"이라고 울먹였다.
윤정희 씨 남편 백건우 씨는 후견인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PD수첩은 백건우 씨를 만나 인터뷰를 요청했다. 백건우 씨는 "후견인으로서는 본래는 나하고 우리 딸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PD수첩은 윤정희 씨의 후견인인 딸에게도 입장을 물었다. 윤정희 씨의 딸은 ”제가 보호해 드리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뒤, 백건우 씨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2020년 10월, 윤정희 씨 딸은 서울가정법원에 윤정희 씨의 후견인으로 자신을 선임해달라는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윤정희 씨 동생 측은 이해 관계없는 제3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해달라고 요청했다. 윤정희 씨 동생은 "보고 싶고, 목소리도 듣고 싶은데 빨리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후견인 선임 신청 건수는 매년 증가했다. 2016년 후견인 선임 사례를 조사한 결과, 다툼의 69%가 재산에 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툼이 벌어진 사례의 25%는 피후견인 재산이 10억 원 이상인 경우였다.
이은아(가명) 씨는 아버지의 후견인 선정 문제를 두고 분쟁 중이다. 이은아(가명) 씨는 아버지의 신변 보호를 위해 후견인을 선임해달라고 신청했다. 그리고 올해, 한 변호사가 아버지의 임시후견인으로 선임됐다. 그런데 일주일 뒤, 임시후견인에 대한 항고가 들어왔다. 작년, 이은아(가명) 씨의 아버지는 중증도 인지장애를 진단받았다. 이은아(가명) 씨는 아버지가 스스로 항고를 결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현했다. PD수첩은 이은아(가명) 씨의 숙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은아(가명) 씨 숙모는 지금은 아버지와의 인터뷰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치매는 치료하면 되는 것이고, 일찍 밝혀지든, 늦게 밝혀지든 법에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법원에서 후견인을 선임한 뒤에도 분쟁이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박영숙(가명) 씨를 모시고 산다는 김성원(가명) 씨는 "다른 자식들이 가끔 기억력 없는 것을 치매로 몰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원의 의뢰로 실시된 후견 감정에서는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로 진단됐다. 후견인 선임 이후, 가족들 간 소송전이 벌어졌다. 박영숙(가명) 씨의 딸은 김성원(가명) 씨가 후견인 지정 전 어머니를 데려가 유리하게 계약했으며, 어머니를 때린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원(가명) 씨는 여전히 어머니는 치매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김성원(가명) 씨는 후견인을 자신으로 바꿔 달라고 신청했다.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김성원(가명) 씨는 "나이가 자꾸 들수록 기억력이 자연적으로 감퇴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후견인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라며 입장을 밝혔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독일 같은 경우는 후견을 할 때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한다. 공무원들이 후견 사건이 있을 때 피후견인을 만나 조사를 해서 의견서를 제출한다.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성년후견 제도 시행 8년, 이제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져 사회안전망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정비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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