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이 있는 곳에 전관이 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팀은 '전관예우'라는 말 대신 '전관특혜'라는 말을 사용해왔습니다.
가장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인데요.
감사원 퇴직자들의 피감기관 취업문제를 지적한 취재후기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소위 힘 센 정부기관 퇴직자들의 전관특혜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협회 임원 차지한 전관들
올해 6월 서울 여의도에서 제주도 지정면세점 상생 발전방안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면세점협회 박 모 이사장과 변 모 본부장은 각각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한국면세점업계가 다시 옛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부나 국회에서도 더욱더 지원해주셔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박 모 이사장)
"2, 3년 후 그 이상을 바라볼 때는 기존에 우리에게 씌어진 온갖 규제를 다 혁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변 모 본부장)
면세점협회 임원 입장에서 충분히, 아니 당연히 할 수 있는 말들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전직 관세청 고위 관료, 그러니까 관세청 전관이었다는 점입니다.# 전관들의 수상한 취업기
박 모 이사장은 지난해 10월부터 면세점협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억여 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장 채용 당시 면접을 본 건 박 이사장 한 명뿐이었습니다.
면세점협회는 관세청과의 유착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지난 2016년 이사장 선임 방식을 공모제로 전환했습니다.
선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모제 전환 이후에도 관세청 출신 이사장의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변 모 본부장의 취업 과정은 더 수상합니다.
변 본부장은 원래 협동통운이라는 다른 회사의 대표였습니다.
협동통운은 공항이나 항만에서 아직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물건들의 운송을 주로 담당하는 알짜 기업인데 관세청 출신들이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역시 관세청 전관이 대표를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협동통운을 이끌던 변 대표는 3년짜리 임기를 14개월이나 남기고 협동통운 대표직을 사임했습니다.
그러고는 면세점협회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입니다.
# 전관 돌려막기의 실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원래 면세점협회 본부장 자리에 지원한 다른 인물이 있었습니다.
관세청 4급 서기관이었던 김 모 씨였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에서 부적합, 그러니까 취업 불가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김 씨는 곧장 다른 기업의 대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 기업이 바로 협동통운이었습니다.
조금 전 언급했듯이 협동통운에는 변 모 대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 대표가 돌연 사임하면서 자리게 비게 되었고 김 씨가 새 대표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변 전 대표는 면세점협회 본부장 자리를 차지했습니다.김 씨가 취업불승인 판정을 받은 바로 그 자리입니다.
이 일이 일어난 시기는 2020년 2월 무렵입니다.
변 본부장은 2016년 12월 관세청을 떠났습니다.
퇴직한지 막 3년이 지나 면세점협회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취업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현행 취업심사는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변 본부장이 면세점협회로, 김 대표가 협동통운에 자리를 잡으면서 취업심사는 무력화됐습니다.# 배후는 관세청?
이 사건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실의 추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됐습니다.
박 의원은 국감장에서 전직 면세점협회 내부 직원의 폭로도 공개했습니다.
일련의 사태의 배후에 관세청이 있다는 폭로였습니다.
"(관세)청에서는 그렇게 요청이 왔다. 여태까지 이사장 인사고 본부장 인사고 다 그렇게 (관세)청이. 너네는 공고만 띄우면 그러니까 다른데서는 다 알고서 공고만 띄우면 안들어오잖아. 아예 경쟁자가 없잖아." (면세점협회 전직 직원)
관세청은 면세점협회에 대한 인사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개채용 절차 등을 통해 퇴직자가 지원을 하고 협회 등의 필요에 따라 채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의구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습니다.
면세점협회가 생긴 뒤 이사장과 본부장 자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돼있는 듯 늘 관세청 출신이 차지해왔기 때문입니다.
관세청은 스트레이트 취재진에게 해명하는 과정에서 '협회 등의 필요에 따라 채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을 썼습니다.
저는 이 말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세청은 면세점 사업자 인허가 심사과정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면세점 관련 민간 기업들의 모임이자 이익집단인 협회는 관세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권이 있는 곳에 전관이 있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대목입니다.# 문제의식이 없는 전관들
물론 이 같은 전관특혜 문제가 면세점업계에만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
시계를 1년 돌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한국주류산업협회의 회장을 국세청 출신이 도맡아온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의 이 모 회장은 국세청 재직 당시 주류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소비세과장을 지낸 이력이 있습니다.
그런 그가 퇴임 후 주류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주류산업협회 회장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문제 의식도 가지고 있지 못한 듯 했습니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이번에도 주류업자들을 가로막고 주류협회 회장직을 차지했다는데 지금이라도 회장직 주류업계에 돌려줄 의향 없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이 회장은 "그런 생각이 없다"며 "저는 당연히 제 전문성을 평가받아서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서 취임한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전관특혜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답변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인식을 가진 퇴직 공직자가 많기에 전관특혜 문제도 지금껏 근절되지 않는 것일 겁니다.
# 두 가지 해법
전문가들은 전관특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조언했습니다.
우선, 정부 기관에 과도하게 부여된 권한들을 찾아 이를 축소하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의 경우 과거 정부 주도의 성장 과정에서 정부 기관에 많은 권한이 집중됐고, 그 결과 공무원에게 줄을 대려는 문제가 발생한 만큼, 지금이라도 과도하게 부여된 권한을 찾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권을 줄이면 자연히 기업들이 전관을 찾을 이유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투명한 정보 공개입니다.
전관특혜가 가장 심한 분야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검찰, 법원 분야만 해도 검사의 수사이력이나 판사의 재판이력 같은 공적인 기록마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확정된 판결문을 확인하는 과정마저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정부 기관의 퇴직 공무원들도 과거에 무슨 업무를 담당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맡고 있는지, 그 대가로 연봉은 얼마를 받고 있는지와 같은 이력이 추적돼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어야합니다.
전관특혜 문제를 하루아침에 근절할 수 없습니다.
비록 더디더라도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감시와 견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연관기사] 전관들의 달콤한 특혜- 스트레이트 150회
https://www.youtube.com/watch?v=-oQyFOayUAc
사회
곽승규
[2021전관특혜보고서] 업계 대변인으로 변신하다
[2021전관특혜보고서] 업계 대변인으로 변신하다
입력 2021-11-06 11:36 |
수정 2021-11-0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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