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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Now] "한 편의 인생 강의" 윤여정 인터뷰…옆에서 지켜보니

[World Now] "한 편의 인생 강의" 윤여정 인터뷰…옆에서 지켜보니
입력 2021-04-29 12:32 | 수정 2021-04-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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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rld Now] "한 편의 인생 강의" 윤여정 인터뷰…옆에서 지켜보니
    명불허전인 윤여정 배우 인터뷰에 감상평이 워낙 풍성하게 쏟아졌으니, 현장에 있던 기자로서 본 몇 가지만 추가해 봅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기자회견장 나타난 윤여정…받아적는 내내 감탄

    윤여정 배우는 미국 서부 시간으로 밤 9시 넘어서까지 유니언역 시상식장에서 인터뷰를 이어갔습니다. 특파원단은 거기서 20분 떨어진 LA 총영사관 관저에서 대기하고 있었죠. 9시 38분에 관저 도착. 처음에 에이전트는 윤 배우가 도착해서 옷 갈아입고 메이크업 수정하면 15분은 걸릴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단 3분 만에 인터뷰 장소에 입장했습니다. 숨 돌릴 틈 없이 사실상 화장실만 다녀올 정도의 시간인 셈이죠. 그럼에도 윤여정 배우는 늦어서 미안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입장했습니다.

    연기 철학과 입담 배경 물었더니…교수님 강의 같은 '어록' 쏟아져
    [World Now] "한 편의 인생 강의" 윤여정 인터뷰…옆에서 지켜보니
    공동 인터뷰에선 운좋게 첫 질문을 했습니다. 연기 철학과 입담의 배경을 물었습니다. 질문은 짧아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지만, 저도 들떴는지 말이 길어지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윤여정 배우가 "질문이 길어 까먹었네. 앞의 것이 뭐였지?"하며 한예리 배우를 쳐다보자, 한 배우는 '연기 철학이요'라고 되살렸습니다.

    "대본이 성경 같았다" "누군가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practice 즉 연습이라고 했다는 말이 있다"는 대답이 이때 나왔죠. 회견 내내 받아적으면서 감탄하던 게 대학 시절 어느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받아쓰기는 얼마든 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이어서 다른 특파원은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되는지 물었고, "난 최고란 말이 싫어. 최고 말고 최중. 다 같이 살면 안 되나"는 가장 회자되는 답이 나왔습니다. 워낙 답변을 잘 하는 인터뷰이였긴 해도, 그런 답을 끌어낸 질문의 배경이 궁금했어요. 나중에 해당 기자(JTBC 김필규 특파원)에게 물어보니 답변에서 뽑아낼 수 있는 제목을 염두에 뒀다고 하더군요. 남다른 답변에는 남다른 질문도 있습니다.

    인터뷰 끝나자, 주변 사람들에게 "트로피 한번 들어봐요"

    "어머, 나 취했나봐" "이런 말 하면 사회주의자가 되나?" 등등 윤여정 배우가 아니면 방송 사고처럼 취급되지 않았을까 싶은 꾸밈없는 장면의 연속이었죠. 그걸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저멀리 한국에서 방송으로 보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니 더 웃음이 나왔습니다.

    근엄하게 뉴스 앵커가 나오다가 윤 배우의 등장으로 장르 전환. 자막은 뉴스처럼 나가는데 프로그램은 예능으로 장르 융합. 그것도 거의 모든 방송사가 정규 편성을 끊고 말이죠.

    인터뷰 이후 현장은 팬미팅처럼 됐습니다. 기자들, 방송 스탭들, 영사관 관계자 등에게 윤 배우는 피곤할 텐데도 기꺼이 시간을 더 내주었습니다. 오스카 트로피를 신기해하는 기자들에게 "이게 얼마나 무거운 줄 알아요. 한 손으론 못 들어."하며 들어보라고까지 했죠. 저한테도 기회가 왔는데 왠지 불경스러운 듯하여 정말 그래도 되냐고 하니 "못 들을 게 뭐 있어. 들면 되지"하며 역시 쿨하게. 정말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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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예리는 알고 있을까?…"'미나리'는 '한예리의 영화'이기도"

    모두가 윤여정 배우에게 몰려 몇 마디 더 물을 때, 저는 다른 한쪽에 서 있던 한예리 배우에게 다가갔습니다. 좋은 연기 보여줘 감사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한 배우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줄 알았다고 했더니, 수줍게 웃기만 했습니다.

    저는 또 말했습니다. "미나리는 윤여정 배우의 영화로도 빛나지만, 한예리의 영화라고도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라고.
    [World Now] "한 편의 인생 강의" 윤여정 인터뷰…옆에서 지켜보니
    어, 기자는 덕담이 아니라 질문을 해야지 싶어서 덧붙였습니다. "미나리는 한예리의 영화이기도 하다는 사람들의 평을 알고 계신가요?". 한예리 배우는 밝게 웃으며 "감사합니다"하고는 고개를 앞으로 많이 숙여 인사했습니다.

    사실 영화 속 한예리는 어쩌면 윤여정 배우의 실제 삶과 포개질 수도 있다 싶었습니다. 남편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두 아이를 키운 어머니였으니까 감정이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윤 배우도 인터뷰에서 밝혔듯 아카데미 후보 지명자는 1명만 동행 가능한데, 상의 끝에 딸로 나온 '예리'와 '동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했죠.

    2001년 MBC 베스트극장 '동행2'…"더우면 더운 대로 살고 추우면 추운 대로 살라는 거네요."

    동행. 이 단어에서 배우 윤여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이자 저의 인생 드라마가 2001년 MBC 베스트 극장에서 방송된 단편 드라마 <동행2>였습니다. 이순재 배우와 노부부로 출연했죠. (스포일 있습니다.)

    삶에 지친 어머니 윤여정이 출가한 아들이 있는 절에 찾아가자 아들은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거죠"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돌아와서 땡중 같은 소리라며 넘깁니다. 결국 드라마 종반에 노부부는 차 안에 연기 피워 생을 마감하려 하고, 명곡 '연기가 눈에 들어와'(Smoke gets in your eyes)가 애잔한 바이올린 버전으로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 죽은 줄 알았다가 눈을 뜨던 윤여정은 남편에게 말합니다.
    [World Now] "한 편의 인생 강의" 윤여정 인터뷰…옆에서 지켜보니

    [사진 제공:imbc]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네요. 더우면 더운 대로 살고 추우면 추운 대로 살라는 거네요." 대사의 창작자는 물론 작가였겠지만, 육성으로 체화될 때 온전히 배우의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윤여정 배우의 가식 없는 말과 인생에 대한 솔직함을 접할 때마다 자주 그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다시보기가 없던 시절, MBC 프로덕션에 전화해 1만 원인가 주고 VHS 테이프에 녹화를 떠서 여러 번 봤는데, 지금은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네요. 한국에서 재방송했다던데.

    TV조선 인터뷰 중계 '반칙'은 씁쓸한 뒷맛

    윤여정 배우 공동 인터뷰는 사실 배우 측에서 열겠다고 알려온 게 아니라 방송사 워싱턴 특파원단의 요청으로 성사됐습니다. 각 사가 윤 배우의 기획사에 오래전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긍정적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MBC도 배우의 개인 연락처로 요청을 넣었지만 소득은 없었죠.

    그래서 제가 LA로 출장 가는 방송사 특파원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어차피 개별 방송사 차원에서 성사가 어렵고, 배우의 스케줄도 빡빡할 테니 현지에 가는 기자단 공동 명의로 인터뷰를 요청해 보자고요. 출장 계획이 없던 방송사 특파원에게도 내용을 알려 합류시켰고, 소식을 듣고 동참을 희망한 연합뉴스에도 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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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MBC, SBS, YTN, JTBC, 채널A, 연합뉴스TV 등 7개 방송사 특파원이 공동 생중계단을 구성했죠. SBS가 기획사와의 연락을 맡아 하마터면 화상 간담회가 될 뻔한 것을 대면 인터뷰로 성사시켰습니다. KBS는 LA 총영사관 관저라는 훌륭한 장소를 섭외해, 급히 호텔 미팅룸을 빌려 비용을 분담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MBC, KBS는 송출에 관한 기술적 사항을 본사로부터 받아 공유했고, 각사가 맡은 바 역할을 소화해 현장에 중계 기술진 없이 해외에서 보내는 생방송을 무사히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특파원도 없던, 공동 생중계에 참여하지 않은 TV조선에 똑같이 생방송이 나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기술적으로 공유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오직 우리의 공동 취재 화면을 공유할 수 있게 회선을 열어놓는 통신사 측에, 자신들도 함께 받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다음날 TV조선은 보도본부장 명의로 무단 도용을 사과하는 공문을 각 사에 보냈더군요. 수상 소식도, 방송사의 협업도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 같았는데, 엔딩은 씁쓸했네요.

    박성호/MBC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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