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대통령, 야권인사 체포하기 위해 비행기 강제 착륙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현지시간 23일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를 전투기까지 동원해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로 착륙시켰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발해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향하던 언론인이자 야권활동가인 라만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하기 위한 조치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체포된 언론인은 '구독자 200만 SNS 스타'
프라타세비치는 2015년 동료 반체제 인사 스테판 푸틸로와 함께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에 '넥스타(NEXTA)' 채널을 만들고 해당 채널 편집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지난해 6월부터는 별개의 텔레그램 채널 '벨라모바(Belamova)'에서 글을 썼는데, 구독자가 200만명에 달하고, 야권 인사들이 정보를 공유하거나 시위를 조직하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자매 채널 '넥스타 라이브(NEXTA Live)'에도 경찰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모습의 사진이나 영상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프라타세비치는 10대 때부터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고, 이 때문에 2011년 퇴학당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는 폴란드로 건너가 망명 생활을 해왔으며, 지난해 1월에는 폴란드 시민권을 신청했습니다.
프라타세비치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대선 승리를 선언했을 당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대규모 불복시위를 부추긴 혐의로 같은 해 11월 벨라루스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테러활동 가담자' 목록에도 올랐습니다.
프라타세비치는 지난해 11월 공공질서를 해치고 사회증오를 조장한 혐의와 테러 혐의로 기소됐고, 유죄가 인정되면 사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습니다.벨라루스 국영 매체, 체포한 인사 영상 공개
벨라루스 국영 매체는 현지시간 24일 프라타세비치가 민스크의 한 구금 시설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전하며 건강한 상태라고 말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벨라루스 당국이 해당 영상을 촬영하도록 프라타세비치를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프라타세비치의 아버지 드미트리는 BBC 인터뷰에서 "아들이 고문당하고 있을까봐 두렵다"며, "21세기 유럽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강제 착륙 당시 기내는 아수라장…승객들 "공포와 혼돈"
벨라루스 당국이 비행기를 수도 민스크에 강제 착륙시켰을 당시 120명의 승객이 탑승한 여객기는 혼돈 그 자체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리투아니아 출신인 라셀 그리고리에바 씨는 ABC와 인터뷰에서 "비행기가 충돌하는 줄로만 알고 패닉에 빠졌다"며, "고도를 급격하게 낮추며 거의 내리꽂히는 듯했고, 비행기에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비행기가 향하고 있는 곳을 눈치채자마자 반체제 인사로 체포된 프라타세비치는 두려워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한 승객은 그가 곧바로 일어서 짐칸에서 노트북을 꺼내 해체하기 시작했다고 했고, 또 다른 승객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은 사형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한 리투아니아 커플이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프라타세비치는 "이 비행기는 나 때문에 강제 착륙했고, 모든 게 나 때문"이라며, "내 이름을 검색해보면 내가 누군지 알 것이고, 사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버스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프라타세비치는 곧바로 연행됐는데, 리투아니아 당국은 폭탄협박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나머지 승객들을 대상으로 몸수색을 진행하는 소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벨라루스, '유럽의 북한' 되나
이번 사건이 발생한 뒤 국제사회는 벨라루스가 '유럽의 북한'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벨라루스 당국이 체포한 프라타세비치는 지속적인 반정부 투쟁을 벌임으로써 루카셴코 대통령에게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라고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가 보도했습니다.
프라타세비치가 향한 리투아니아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벨라루스 야권 인사에 정치적 망명지가 되고 있습니다.
벨라루스에서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대선에서 당선됐지만, 야권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시위가 계속돼 내정이 불안한 상태입니다.
벨라루스의 야권 인사들은 루카셴코 대통령의 친위 정보부대가 구석구석 감시망을 뻗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포린폴리시는 "정치적 망명을 택한 인사들이 벨라루스가 바다에서 해적 행위를 벌이는 소말리아나 잔인한 북한과도 같아졌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유럽과 미국이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를 의논하고 나선 가운데, 벨라루스의 국경까지 봉쇄되고 나면 고립이 더욱 심화하면서 '유럽의 북한'이라는 규정에 한 발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라고 포린폴리시는 전망했습니다.
EU, 벨라루스 항공사 소속 여객기 역내 비행금지…제재 나서
유럽연합은 이번 사건을 비난하며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에 나섰습니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은 현지시간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임시 정상회의를 열고, 벨라루스 항공사 소속 여객기가 역내 영공을 비행하고 공항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경제 제재안에 합의했습니다.
유럽연합 정상들은 벨라루스 고위 관리를 추가로 제재하고 벨라루스 기업을 더 광범위하게 제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유럽연합 역내 항공사에 벨라루스 상공 비행을 피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제재안에는 벨라루스 정부에 체포된 야권 인사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하고, 국제민간항공기구에 이번 사건을 조사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유럽연합은 이미 지난해 벨라루스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탄압을 이유로 루카셴코 대통령을 포함해 벨라루스 인사 88명을 제재 대상에 올린 바 있습니다.
바이든 "벨라루스 충격적 행위 강력 규탄…제재 동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여객기 강제 착륙 사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제재에 대한 전폭적 지원 입장을 밝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벨라루스의 강제 착륙과 프라타세비치의 체포는 국제 규약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이라며 "미국은 가장 강력한 용어로 이번 사태를 규탄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이 충격적인 사건과 협박을 받고 촬영된 듯한 프라타세비치의 영상은 정치적 이견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부끄러운 공격"이라며, "유럽연합의 제재 결정을 환영하며 미국 역시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방침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프라타세비치를 비롯해 루카셴코 체제에서 불법적으로 구금된 수백명의 인사들의 석방을 촉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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