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카불 공항은 한동안 전쟁터였습니다.
그런데 이 혼란 속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유기동물 보호소를 운영하던 영국인 '폴 파딩'이 개와 고양이 1백여 마리를 데리고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개·고양이 100여 마리만 데리고…직원들은 못 나와>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탈출이지만 동물들만 구출하고 아프간인 직원들은 데려오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전직 영국 해병인 파딩은 개와 고양이를 아프간에서 구하는 과정을 '방주 작전'이라 이름 붙이고 동물 애호가들로부터 소셜 펀딩을 받아 전세기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군 당국이 전세기의 이착륙을 허락하지 않자 파딩은 "영국은 나를 버렸다"고 주장하며 영국 정부와 충돌했습니다.
이에 아프간 내 영국인 탈출 작전을 총괄하는 벤 윌리엄스 국방장관은 "파딩과 그의 직원들은 영국 여권 소지자로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지만, 동물이 사람을 우선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결국 파딩은 동물들은 화물칸에 실으면 된다고 주장하며 영국 정부를 거칠게 밀어붙인 끝에 전세기 이용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지난 29일 영국 히스로 공항에 도착한 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방주작전이 끝났다"며 "부분적 성공"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초 2백 마리 이상의 동물을 탈출시키려 했지만 170마리 정도밖에 구조하지 못해 아쉽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면서 "아프간에 남은 직원들과 관련해 긍정적 결론을 낼 수 있게 노력 중"이라며 왜 동물만 데려왔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참전용사들 "영국군과 일한 아프간인 더 구했어야" 비난>
아프간 참전용사들은 파딩의 이번 탈출을 두고 거세게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아프간에 참전했던 톰 투겐트하트 하원 외무 특별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항으로 사람들을 데려와 탈출시키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 개 200마리를 데려오는데 많은 병력을 사용했다"며 "내 통역사의 가족들은 살해당할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역사 한 명이 며칠 전에 '왜 5살짜리 내 아이가 개보다 가치가 작냐'고 물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세 차례 파병됐고 통역사 구출을 지원해온 앤드루 폭스 소령은 "탈레반은 동물이나 동물을 돌본 서양인을 죽이려는 게 아니다"라며 "영국 국적자와 통역사들을 밖에 두고 동물들의 공항 진입을 도운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시 아프간 참전군인인 제임스 볼터 소령도 "전세기는 영국군과 일한 직원 수백 명을 데려오는 데 쓰일 수도 있었다"며 "남은 사람들이 왜 영국은 그들보다 유기동물을 구하는 데 더 애쓰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라고 밝혔습니다.
영국은 카불에서 폭탄 테러 위험이 커지자 지난 28일 서둘러 철군을 마쳤습니다.
아직 150명가량의 영국인과 1천여 명의 아프간 내 협력자들을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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