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아프간' 첫날…"울면서 청바지 태웠다"
현지시간 30일 밤 11시 59분 미국이 철수한 뒤 '탈레반 세상'이 된 아프가니스탄.
"오늘 아침에 모든 것이 끝났다. 거리에서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포와 절망으로 뒤덮인 아프간 시민들의 이야기를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습니다.
아리파 아마디(가명)는 현지시간 31일 아침 청바지와 탈레반의 눈엣가시가 될만한 옷들을 전부 불태웠습니다.
그는 "오빠가 나가서 부르카를 사다 줬다"며 "난 울면서 청바지를 태웠고 동시에 희망도 같이 불태웠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디는 지난 20년간 서방의 지원을 받는 정부 아래서 일상에 자유를 누렸던 세대입니다.
그는 파라에 있는 세관 사무소에 취직하는 데 성공했으나 3주 만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여성 상당수가 사무실을 떠나라는 탈레반의 지시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수염을 길게 기른 남성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마디는 "더는 그 무엇도 날 행복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6시간 줄서서 기다렸는데…"돈 떨어졌다" 인출기 닫은 은행
카불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네사르 카리미(가명)는 탈레반 치하의 첫날 아침을 은행 입구에서 시작했습니다.
은행이 문을 열기도 전인 아침 6시 정도에 갔지만 이미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12시까지 기다렸지만, 은행에서 돈이 떨어졌다며 인출기를 닫아버렸습니다.
탈레반은 지난 28일 은행 영업 재개를 명령했지만 1인당 출금을 1주일에 200달러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백 명이 있었고 탈레반은 막대기로 사람들을 때렸다"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결국 빈손으로 집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수염 기르고 전통의상 입고…"탈레반 위협 피해야"
화려했던 수도의 풍경은 탈레반 치하의 금욕적인 분위기에 맞춰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카리미는 "카불은 아프간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도시였다"며 "화려한 헤어스타일부터 쟁글 팝, 터키 드라마까지 품었던 곳이었지만 바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자르-이-샤리프에 사는 자바르 라마니(가명)는 탈레반의 위협을 피하고자 수염을 기르고 아프간 전통의상을 입기로 했습니다.
그는 "탈레반 치하에서는 삶과 죽음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며 "수염과 의상이 다른 나라에선 매우 간단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목숨을 위협하는 투쟁"이라고 말했습니다.
라마니는 무신론자입니다.
무신론자 공동체는 아프간 내에서도 매우 작아 이전 정부에서도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그는 "아프간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다"며 "사람들이 우리를 탈레반에 넘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안 해도 하루에 다섯 번은 기도하러 가야 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습니다.
그는 "한 세대의 꿈이 이렇게 된 것은 국제사회에도 책임이 있다"며 "이렇게 떠날 거면 애초에 왜 왔냐"고 분노했습니다.
티셔츠·반바지 차림에 총 겨눈 탈레반
운동을 즐기는 레샤드 샤리피(가명)는 평소와 같이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등산에 나섰습니다.
그는 "탈레반이 날 보고 멈춰 세우더니 총을 겨눴다"면서 "돌아가서 무슬림처럼 차려입고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탈레반은 1기 통치(1996년~2001년) 때와는 달리 유화적인 면모를 보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앞서 지방 경찰청장을 처형하거나 부르카를 쓰지 않고 외출한 여성을 총살하는 등 과격한 행태가 전해지면서 탈레반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