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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진의 세계는] 초유의 주유소 대란‥'브렉시트' 저주의 시작?

[권희진의 세계는] 초유의 주유소 대란‥'브렉시트' 저주의 시작?
입력 2021-09-30 12:17 | 수정 2021-09-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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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희진의 세계는] 초유의 주유소 대란‥'브렉시트' 저주의 시작?

    [사진 제공: 연합뉴스]

    기름 떨어진 주유소들‥여기가 영국?

    기름이 남아있는 주유소를 찾아 전전하고 그러고도 몇 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얼마간의 기름만 넣을 수 있는 초현실적인 풍경.

    영화에서나 봄직한 전시 비상상황과도 같은 일이 지난 9월24일부터 '영국'에서 벌어졌습니다.

    영국 최대 석유회사인 브리티쉬페트롤리엄(BP)이 유류 수송에 문제가 있어 일부 주유소를 당분간 닫는다고 발표한 게 영국인들의 불안감을 폭발시켰던 거죠.

    공포는 공포를 낳아서 운전자들이 주유소로 일단 몰려드는 '패닉 바잉' 때문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습니다.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졌으니 환자를 수송해야 하는 앰뷸런스가 멈춰서고, 암환자 수술이나 중환자 치료도 연기될 정도로 온 사회가 마비됐습니다.

    '기름을 못넣을 것'이라는 우리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로 영국인들이 공포에 빠진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조가 있었기 때문이죠.

    쌓여왔던 불안감이 '주유 대란'으로 폭발

    영국은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진 세인즈버리나 테스코 같은 전통의 유통 회사들을 비롯해 유수의 수퍼마켓 체인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유통 산업의 격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유통 업체들이 가격과 품질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영국의 물가가 살인적이어도 장바구니 물가는 우리에 비해서도 놀라울 정도로 낮습니다.

    시골이든 도시든 어디를 가든 영국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수퍼마켓 체인점들이 매대에 물건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영국의 수퍼마켓들이 물건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코로나19 초기처럼 사재기에 나서는 바람에 물건이 동난 게 아닙니다.

    물건을 운송할 화물트럭 운전자가 모자라서 생긴 일입니다.

    그래서 영국인들의 사랑방인 펍에도 맥주 공급이 안되고, 수퍼마켓에 생필품이 부족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채혈에 필요한 튜브 공급이 안돼 일선 병원에선 혈액 검사까지 중단될 정도로 영국의 물류마비는 지금 상당히 심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쉽게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권희진의 세계는] 초유의 주유소 대란‥'브렉시트' 저주의 시작?

    [사진 제공: 연합뉴스]

    "문제의 근원은 브렉시트"

    영국엔 지금 10만명의 트럭 운전사가 부족하다고 하죠.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이 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 때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더이상 EU와 한 몸의 경제권이 아니기 때문에, EU 출신 트럭 운전사들이 자유롭게 영국에 와서 운전사로 취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역내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이제는 불가능해졌으니까요.

    이 때문에 이전엔 필요없던 비자 문제가 생겼고요, 세금도 더 내야하는데다가 브렉시트 이후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져서 유럽에서 온 운전자들로선 소득도 줄었습니다.

    유럽 출신 노동자들이 영국에서 트럭 운전을 하는 걸 브렉시트가 법적으로 차단한 셈이죠.

    2017년 영국의 EU 국적 트럭운전사들은 4만5천명 정도였는데 브렉시트가 단행된 올해엔 2만5천명 정도로 몇 년 사이 절반 가까이가 줄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운전사들을 충원하기도 어렵습니다.

    면허시험장이 봉쇄되면서 트럭 운전사들의 면허 발급도 어려워졌고, 응시 인원 자체도 크게 줄었죠.

    다급해진 영국 정부는 군을 동원해 물류 수송에 투입하고 5천 명에게 임시 비자를 발급해 급한대로 EU의 운전사들을 데려오겠다고 했지만 정작 EU의 트럭 운전사들은 코웃음을 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급한 불을 끈 뒤엔 필요가 없다며 도로 나가라고 할텐데 굳이 임시비자를 받아가며 영국에 왜 가느냐는 거죠.

    같은 EU 국가인 아일랜드나 네덜란드로 가면 돈도 더 벌 수 있고 비자없이 자유롭게 다니며 일할 수 있는데 이제 역외 국가가 돼버린 영국에서 눈치봐가며 일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결국 영국의 트럭 운전사 구인난이 짧은 시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싱필품 부족 현상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권희진의 세계는] 초유의 주유소 대란‥'브렉시트' 저주의 시작?

    자료사진

    '브렉시트' 저주의 시작인가?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찬성 51.9%, 반대 48.1%로 아슬아슬하게 찬성으로 기울었습니다.

    찬성하는 측에선 유럽의 노동자들이 영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캠페인을 벌였고, 중부의 하층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브렉시트 지지에 표를 던지게 됩니다.

    파운드화는 즉시 폭락했고 영국의 주력 산업인 금융회사들을 비롯해 많은 회사들이 생존을 위해 런던을 떠나 유럽으로 옮겨갔습니다.

    이후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영국 경제는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죠.

    게다가 진통 끝에 유럽과 완전히 이별한 작년부터는 브렉시트의 결과가 직접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대륙의 신선식품이며 물건들을 같은 나라 물건처럼 도버해협을 통해 가져오다가 이제 통관 절차를 거쳐야하니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시간과 비용이 추가됐습니다.

    당연히 물가도 꾸준히 올랐고요, 여기에 EU 국적 운전자들마저 빠져나가면서 물류 대란으로 아예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지경에까지 다다른 겁니다.

    2016년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영국이 EU에서 빠져나오면 일자리도 더 생기고, EU에 내던 분담금을 이용해 영국의 국가의료체계(NHS)의 혜택도 더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영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반대에 가깝죠.

    당시 찬성파들은 가짜 뉴스도 교묘하게 활용해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에 브렉시트와 가짜뉴스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이 선택한 '브렉시트'의 결과는 당분간이겠지만 '일상의 파괴'라는 상당히 극단적인 형태로 일단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기에 브렉시트에 반대하던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이나 북아일랜드 문제 등 영국을 분열시킬 수도 있는 더 심각한 문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물류대란은 '브렉시트'가 몰고올 '예고된 역풍'의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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