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이나 정부나 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일촉즉발의 상황.
대통령까지 공권력 투입을 암시하며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고용노동부 장관도 내려왔고, 행정안전부 장관도 내려왔고, 경찰청장 후보자도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50일 가까이 지속된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주변은 공권력 투입이 오늘 내일한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만 무성하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 "지금처럼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사방 1m도 안되는 철제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 하청노동자의 외침. 그들은 "경력 20년 넘은 용접공의 시급도 하청의 하청 구조때문에 1만원 안팎에 불과하니 일하러 오는 사람이 줄고, 결국 남은 노동자들에게 일이 몰려 노동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며 "하청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싸움은 길어졌고, 이제는 지역 경제와 조선 산업의 중흥을 위해 '그만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로 강제 진압이 언제 시작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까지 와 버렸습니다.
■ "노동에 적대적인 사람은 정치인이 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벌써 가물가물하지만, 불과 한달 전 전국의 물류가 8일동안 사실상 마비됐던 화물연대의 파업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돌이켜보면 8일만에 끝나서 다행이라지만, 당시에도 파업의 장기화 조짐이 보였고 산업계에 미칠 악영향과 우려가 담긴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장관의 엄포도 마치 파업의 공식처럼 발표됐고 실제 사법처리된 화물연대 노조원들도 속출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달 전 화물연대 파업이 한창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지금과는 사뭇 다른 답변을 내놨습니다.
- "저는 노사문제에는 정부는 법과 원칙 그 다음에 중립성 이런 거를 가져야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자기들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그 역량이 축적돼 나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6월 10일 윤 대통령 도어스테핑 中)
노조의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 뿐 아니라 '정부의 중립성'과 '노사의 자율성'도 함께 강조한건데요. 윤 대통령은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 "정부가 늘 개입해서, 또 여론을 따라가서 이렇게 너무 노사 문제에 깊이 개입을 하게 되면은 노사 간에 원만하게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그 역량과 환경이 전혀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그 동안의 정부의 그 입장이라든가 개입이 결국은 노사 관계와 그 문화를 형성하는데 과연 바람직했는지 의문이 많고요." (6월 10일 윤 대통령 도어스테핑 中)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고 노사간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을 축적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26년 경력의 특수부 검사답지 않아 파격으로 들리기도 했는데요.
이어진 윤 대통령의 발언은 특히 기자들의 이목을 붙잡았습니다.
- "노동에 적대적인 사람은 정치인이 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6월 10일 윤 대통령 도어스테핑 中)
■ 보수층 결집? 지지율 반등? 정부 개입 부추기는 외부 요인들
윤 대통령은 이번 파업에 강경 대응이 필요한 이유로 법치주의와 경제 위기를 내세웠습니다.
- "지금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 이 위기 극복에 매진해야 될 때입니다." (7월 19일 윤 대통령 국무회의 中)
정부가 밝힌 추정 손해액은 약 5천 7백억원,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불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작게는 거제시 크게는 영남권 전체에 타격이 불가피하니 정부가 개입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이 정부 내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새 정부와 노동계가 임금 협상으로 다투는 상황에서, 하반기 투쟁 수위를 높이려는 노동계와 기선제압에 나서려는 정부간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또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초반까지 급락하다보니 20%대로 더 떨어지느냐 30%에서 저지하느냐가 관심인데, 정부가 강력한 공권력을 내세워 보수층 결집을 노린 포석이라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강경 기조의 배경이 어떤 것이든, 제2의 용산참사나 제2의 쌍용차 사태를 막기 위한 결단도 필요해 보입니다.
"통합과 포용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던 윤 대통령의 리더십이 발휘돼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 아닐까요?
환하게 웃어 보이며 "노동에 적대적인 사람은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했던 바로 그 모습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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