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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곽승규

딸을 잃은 어머니가 1인 시위를 결심한 이유

딸을 잃은 어머니가 1인 시위를 결심한 이유
입력 2022-01-08 09:11 | 수정 2022-01-0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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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을 잃은 어머니가 1인 시위를 결심한 이유
    "피고인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합니다."

    선고가 나오는 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이 말을 끝으로 법정을 떠났고 예진 씨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7월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남자친구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해 숨진 고 황예진 씨.
    재판부는 황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친구 이 모 씨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사전에 계획된 범죄가 아닌 우발적인 폭행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정상참작의 이유였습니다.

    어머니는 분노했습니다.
    "딸이 사망한 대가가 7년이라면 부모는 살아갈 수가 없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딸을 잃은 어머니가 1인 시위를 결심한 이유
    "경찰과 검찰, 법원은 최선을 다 한 건가요?"

    예진 씨 어머니가 분노한 이유는 낮은 형량 때문만은 아닙니다.
    피해자를 대신해 진실을 밝혀야 할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범법행위를 단죄하는 역할을 맡은 법원이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이들을 믿었습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예진 씨가 기적처럼 일어나길 기도하는 것 외에 어머니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가해자 이 씨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애초 경찰과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자체가 부실했던 건지, 아니면 법원이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기각한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누구도 영장이 기각된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으니까요.

    한 가지 분명한 건 뇌사상태인 딸이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는 사투를 벌이는 동안 구속을 피한 가해자는 회사에 출근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3주간의 사투 끝에 예진 씨는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론사에 제보했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습니다.
    딸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가해자에게 무참히 폭행을 당하는 모습이 담겨있는 그날의 CCTV 영상도 공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딸의 억울함을 꼭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여론이 움직였습니다.
    그제야 법원은 두 번째로 청구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딸을 잃은 어머니가 1인 시위를 결심한 이유
    방청석에서의 안타까운 외침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어머니는 방청석에 앉아야 했습니다.
    모든 형사사건의 원고는 검사입니다.
    유가족이 할 수 있는 건 검사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어머니의 요구는 하나였습니다.
    살인죄를 적용해 가해자를 심판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어머니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살인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며 상해치사죄 적용을 끝까지 고수했습니다.
    어머니는 도저히 수긍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완력이 훨씬 강한 가해자 이 씨가 예진 씨를 잔혹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CCTV에 명확히 담겨있고 쓰러진 예진 씨에 대한 구호조치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명확한데도 어떻게 이게 살인이 아니냐고 몇 번을 물었지만 검찰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CCTV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별도의 폭행 정황까지 어머니가 직접 분석해 검찰에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법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는 재판부에 현장검증에 나서줄 것과 법의학과 범죄심리학 전문가의 법정 진술을 통해 살인의 고의성을 따져봐 줄 것을 요청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가해자가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검찰의 구형인 10년보다도 낮은 징역 7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어머니의 눈에 검찰이나 법원은 그저 사건을 빨리 끝내기 위해 서둘러 재판을 마무리하려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가해자 이 씨에게 징역 7년이 선고된 1심 재판이 끝난 뒤 어머니는 곧장 항소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2심에서 다시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바람대로 항소가 이뤄질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항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검찰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그저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머니가 검찰이 항소를 받아주지 않으면 1인 시위라도 하겠다며 계속해서 언론의 관심을 부탁하는 이유입니다.
    딸을 잃은 어머니가 1인 시위를 결심한 이유
    '황예진 법'이 전부가 아닌 이유

    재판이 열리기 하루 전, 정치권에서는 황예진법을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교제 관계에서 벌어진 연인 간 살인이나 폭력,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가해자에 대한 보다 강한 처벌에 중심을 맞춘 내용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빠진 게 있습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 의구심이 남지 않도록 유가족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일 방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유가족은 형사재판에서는 제3자의 위치이기에 그저 검찰과 법원이 하는 대로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적어도 유가족들이 수사 진행 상황도 모른 채 답답한 마음에 직접 조사에 나서는 일이 벌어지는 건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검사와 판사가 촉박한 일정에 재판을 서두르다 유가족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버거운 유가족이 사법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또 한 번 상처를 받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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