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만
[스트레이트] '고래 사냥'인가 '개미 사냥'인가
[스트레이트] '고래 사냥'인가 '개미 사냥'인가
입력 2022-04-17 21:30 |
수정 2022-04-1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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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송된 'MBC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쌍용차 인수 과정에서 벌어진 수상한 돈의 흐름을 추적했다. 수백억원의 투자금으로 1조원 넘는 기업을 인수하려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이들은 어떻게 돈을 챙겼는지 추적했다.
['쌍용차'의 비극]
2009년 8월 뜨거운 태양열로 달궈진 공장의 지붕위에서 '인간 사냥'이 벌어졌다. 중무장한 경찰이 도망치는 노동자의 머리를 낚아채 쓰러뜨리면, 곧바로 경찰 3-4명이 달려들어 곤봉으로 내리쳤다. 이미 저항 의지가 꺾인 노동자를 상대로 한 이 '인간 사냥'은 MB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의 민낯'이었고 3년 뒤 벌어진 '용산참사'의 전조였다. '상하이 자본'에 이어 '인도 자본'으로 주인이 바뀐 쌍용차가 또 다른 새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다시 '사냥'이 시작됐다.
[고래사냥에 나선 새우]
"옛날에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었는데, 요즘은 빠른 물고기가 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가 됐다."
방송사 PD출신으로 5년 전 친환경 버스업체 '에디슨모터스'를 인수한 강영권 대표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이렇게 기업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그가 말한 "잡아 먹을 큰 물고기"가 무엇인지 드러났다. 쌍용차였다.
먼저 에디슨모터스는 전기 경차 제조사인 '세미시스코'의 지분을 손에 넣었다. 에디슨모터스가 69억원을 투자해 최대주주가 되고, 300억원을 투자한 조합 6곳이 지분을 나눠갖는 방식이었다. 인수된 '세미시스코'는 '에디슨EV'로 이름을 바꿨다.
전기차 바람을 타고, 에디슨EV는 8백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와 '전환사채'를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들어온 자금 중 5백억 원은 에디슨모터스로 흘러들어간다. 바로 쌍용차 인수에 쓸 돈이다.
에디슨모터스가 자회사에 해당하는 에디슨EV를 통해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에디슨EV가 코스닥 상장사였기 때문이다. 최대주주였지만 비상장사였던 '에디슨모터스'는 자회사를 통해 지분 인수때 사용한 자금보다 더 많은 돈을 만들어냈다. 큰 물고기를 잡아먹은 작은 고기, 전형적인 기업사냥 방식이었다.
["선수들은 상단에서 탈출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여기서 기업을 정리하고 돈을 챙겨 떠난다. 그러나 이번 사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에디슨EV가 쌍용차 인수의 창구로 알려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이 몰려들었고, 주가는 마치 테마주처럼 급등했다. 그런데 한창 주가가 오를 무렵 에디슨EV 인수에 참여한 6개 투자조합들은 오히려 주식을 처분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최대주주는 1년 동안 지분을 못 파는 '보호예수' 규정에 묶였겠지만, 6곳으로 나뉘어 들어간 투자조합들은 이 규정을 피할 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조합들이 사들였던 에디슨EV 주식 가격은 1만5천원 전후, 이 주식들을 팔 수 있도록 조합원들에게 지분을 나눠준 7~8월엔 4만 원대까지 급등했다. 불과 2~3개월 만에 주식값이 3배가 된 것이다.
이후로도 주가를 띄우는 소식은 계속됐다. 지분을 모두 털어낸 8월 국내 유명사모펀드와 업무협약을 맺었고, 11월에는 법원에서 인수 절차가 승인되면서 8만원대까지 솟구쳤다. 당시 무상증자로 주식 1주가 4주로 늘어난 것까지 고려하면 실제 상승폭은 그 몇배에 달했다.
그 사이 개미투자자들은 더 몰려들었다. 5천명에 불과했던 에디슨EV의 소액주주가 10만명까지 늘어났다. 주가가 최고점을 찍기 직전까지 투자조합원들이 팔아 치운 물량을, 일반 투자자들이 뒤늦게 사들인 셈이다.
이들 조합들이 중간에 채권을 매각하지 않았으면 더 큰 이익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전형적인 '먹튀' 가능성을 제기했다.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선수들은 최고 상단에서 탈출하지 않는다. 서서히 올라가는 지점에서 중상단에서 나온다. 나중에 검찰이 수사하게 되면 제일 먼저 어디를 수사하겠는가? 제일 상단에 있는 사람들부터 수사를 하니까 이 꼭대기에서는 선수들은 안 나온다."
[또다른 '화천대유']
에디슨EV의 주식과 회사채 거래에 참여한 투자조합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공시된 이들 투자조합의 주소지는 하루 몇만원이면 이용이 가능한 '공유 오피스'이거나 엉뚱한 식당인 경우도 있었다. 투자조합이 여러개였지만 관련 업무는 회사 한 곳으로 몰리기도 했다. 조합원들의 이름도 여기저기 겹쳤다. 두 곳 이상의 조합에 중복해서 이름을 올린 사람만 31명이다. 1호부터 9호까지 있었던 대장동 특혜 개발의 '화천대유'가 떠오른다.
특히 '69년생 이 모'씨는 조합 5곳에 모두 참여했고, 에디슨EV가 발행한 회사채의 유통과정에서도 등장했다. 에디슨EV가 발행한 회사채는 여러투자회를 거쳐 TG자산운용이라는 곳에 몰렸는데 이곳의 대표가 '69년생 이모씨'였다. 회사채를 발행해 돈을 만들고 주가가 뛸 때 주식을 처분하는 모든 과정은 마치 큰 플랜의 일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는데 그 중심에 이씨의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스트레이트>는 이 대표의 집과 TG자산운용 사무실을 찾아가 연락을 시도하고 메모도 남겼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직원 모두 코로나에 걸려서 아무도 없다는 말만 반복됐다.
[성공한 개미사냥은 처벌할 수 없나?]
에디슨모터스는 결국 쌍용차 인수에 실패했다. 계약 만료일까지 총 3천억원 가량을 내야하는데 계약금 300억원만 냈을 뿐 나머지 2700억원은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디슨모터스는 계약금 3백억원을 날릴 위기지만 이미 관계사의 주가가 수 백% 급등하면서 투자조합의 실제 손해는 거의 없다. "작은 고기가 큰 고기를 삼키는" '고래사냥'은 실패했지만 대신 '개미 사냥'에 성공했다. 이들의 본래 목적이 애초 불가능했던 '고래 쌍용차'였는지 아니면 이보다 손쉬운 '개미'였는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다시 매물로 나온 쌍용차를 인수하기 위해 또 다른 기업들이 나서고 있는데 이들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또 다른 '작은 고기'라는 점이다. 이들의 과거 경영 경험이나 자금력을 보면 과연 쌍용차 기업인수에 목적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쌍용차 평택공장의 부지는 85만 제곱미터, 7~8천 세대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는 땅이다. 인근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있고, 신도시 부지와도 인접해 있어 지난해에는 평택시와 '부지 개발 업무협약'이 맺어졌다. 이대로 될 경우 이 땅의 가치는 1조원이 넘는다. 좋은 인수자가 나타나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부지 개발로 나온 수익을 쌍용차 기술개발에 투자하면 쌍용차는 회생의 기회를 다시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 인수에 나선 기업들을 보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회사를 살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공장 땅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속옷을 만드는 '쌍방울'도 인수전에 뛰어든 회사 중 하나다. 하지만 인수전이 벌어지던 시기 주가가 급등하자 쌍방울은 계열사 주식을 팔아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쌍방울 그룹은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주식을 처분했을 뿐 애초 매입가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손실을 봤다고 설명했다.
[쌍용차의 눈물 개미의 눈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기업 '쌍용차'. 누군가에게는 그저 '매물(돈)'이고 사냥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목숨같은 '직장'이었다. 쌍용차의 '살인진압' 이후 '정리해고' '무급휴직' '희망퇴직'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쌍용차 직원 2642명이 길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10여년 동안 실직과 폭력 진압 등 다양한 트라우마를 겪던 33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숨졌다. '쌍용차 사냥'에 당국이 손을 놓고 있으면 이번에는 쌍용차 피해자가 2642명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MBC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일요일 오후 8시20분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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