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트라우마를 승화시키는 '외상 후 성장'을 방송에서 처음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피해자들의 고통이 끝났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평생 떨쳐낼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타인을 돕고 힘이 되려는 이들의 노력과 비교했을 때, 8년 동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답해 왔는지, 대체 어떤 부분이 나아졌는지를 묻고 돌아봐야 한다는 부끄러움이 컸습니다.
방송에 다 담지 못한 그분들의 이야기를 사흘간 취재후기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4월에만 이렇게 연락 드리고 찾아와서 죄송해요." 세월호 유가족, 생존자, 관계자 분들을 취재할 때면 이렇게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지원단체의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해외 대형 재난을 연구한 사례를 보면요, 언론사에서 이렇게 매년 취재라도 오는 게 딱 5주기까지예요. 1년, 2년, 3년, 4년, 5년까지는 해마다 와요. 그 다음엔 안 와요. 5년 뒤 10주기 때 찾아오죠.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래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이 수치조차 '표본의 한계'가 숨어 있다고 말했습니다.채정호 교수
"세월호 희생 학생이 250명이니까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 약 500명 정도 되는데, 그 중 한 절반 정도는 단 한 번도 검진을 받지 않으셨어요. 사실 정말 위험한 분들은 검진도 아예 받지 않고, 유가족 분들과 같이 활동도 하지 않는.. 초기에 안산 지역을 떠나 버려서 연락이 되지 않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보통 트라우마 이후에 연대하고 유대하면서 같이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회복을 잘 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이런 것을 회피하는 분들이 사실은 지표상으로 더 안 좋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저는 4년 전 '유가족 중 20명 가까이 암을 앓고 있다'는 집계를 받아서 보도했지만, 지금은 그런 수치를 정확히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마비 증상을 비롯해 뇌졸중, 신장 투석, 불면증, 호흡 곤란 등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많은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는데, (-4·16세월호 가족협의회 강지은 회원조직부장), 참사 이후 트라우마와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2018년,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승섭 교수는 자신의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서 "보수언론이 매년 3월이면 천안함 생존 장병을 찾았고, 3월이 지난 후에는 소식이 끊겼다"고 전했습니다. 언론이 이들을 찾은 목적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천안함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부각시켜 보수 진영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는 겁니다.김승섭 교수
"천안함과 세월호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인데요. 그런데 그와 동시에 두 사건은 서해 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그 안에서 사망한 사람, 생존한 사람들이 있다는 측면에서 되게 유사성이 있는 사건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 두 사건에서 언론이 그런 생존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했는가, 그리고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이런 측면에서 그 둘은 공통점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꼭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세월호 참사에서도 또 천안함에서도 희생자나 생존자를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신의 정치적 진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고,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았다는 겁니다."
천안함 생존장병 중 한 명은 실태조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수는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다." 피해자를 모욕하는 진영 논리가 두 사건 모두에서 비슷하게 작동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종종 그 생각을 하거든요. 가장 큰 폭력들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정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 같아요.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옳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나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그 모욕의 시간을 '견뎠기 때문에' 생긴 변화들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군인들이 굉장히 열악한 환경,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트라우마를 겪을 일이 많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까지는 국가유공자 판정이나 연금을 받는 과정에서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같은, 트라우마로 인한 질병이라고 하는 게 보상받거나 인정받는 게 매우 어려웠어요. 그런데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견뎌준 시간 덕분에, 그런 문이 열렸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한국 사회가 그 분들에게 빚진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승섭 교수는 책의 제목을 '미래의 피해자들은 (생존자들 덕분에 이미) 이겼다'고 지었습니다.(기자 : 세월호에 관해서도 더이상 듣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사라고 하는 것은 배가 가라앉은 그 과정에서 끝난 게 아니에요. 그 이후 8년 동안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두고 대하는 태도 역시 세월호 참사의 정의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사건이 현재진행형인 면도 있지만, 우리가 자꾸 현재진행형처럼 되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는 거죠.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는 그 영향력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기자 : 이미 우리와 뗄려고 해야 뗄 수 없는 일인 거네요.)
"'뗄 수가 없다'는 것이 당위가 되면 안 되고, 저는 이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인간은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되게 빨리 잊어요. 내 고통이 아니니까. 원래 그런 거예요.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고통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걸 통해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하는 교훈이라는 건 의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사라지는 거거든요."
"내가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는 자각이란 건, 계속 의도적으로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없어지는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다고 그걸 개인적 반성이나 성찰로만 머물게 하면 또다시 개인에게 떠넘기는 게 될 거고요. 학교, 공무원, 국가, 이런 모든 조직들의 책임과 성찰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원래 타인의 고통을 빨리 잊는다, 그게 당연하다. 그러니 일부러, 불편하게, 의도적으로라도 자꾸 떠올려야 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사건과 그 트라우마는 탄핵과 촛불집회를 거쳐 집권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도 해소되지 않았고, 새로운 윤석열 정부에서 치유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원래 올해 완성될 예정이었던 '4·16 생명안전공원'은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생존자들에게, "8주기가 7주기보다 더 힘들다"는 얘기는 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4월마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게 지겹다"는 지난 기사의 어떤 댓글에, 5월 1일 오늘의 기사로 답을 대신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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