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종용' 의혹 "이재명 조사할 필요 없다"던 검찰
지난 2월 3일, 서울중앙지검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를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이 후보는 2015년 2월 6일 황무성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사퇴를 종용했다는 혐의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검찰이 이 후보를 대면조사는 물론 서면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봐주기 수사'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검찰은 "관계인 진술 등에 비춰 이 후보의 지시, 공모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후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조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겁니다.
당시 사건 내용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015년 2월 6일, 유한기 성남도시개발공사(도개공) 개발사업본부장은 황무성 도개공 사장을 찾아가서 사표를 내라고 합니다. "왜 나가냐"는 항변에 "시장님의 뜻"이라고 일곱 차례 언급했습니다. 이 대화는 모두 녹음돼 지난해 10월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이 본격화할 무렵 어떤 세력이 황 사장을 몰아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직급상 아랫사람이 사장에게 나가라고 하는 상황도 이상합니다. 게다가 대화에선 '시장님'이 7차례 등장하니, 이재명 후보가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겁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후보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성남시 비서실장, 그리고 유한기 전 본부장과 유동규 전 도개공 기획본부장 등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이 후보를 직접 불러 조사할 만큼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시간도 쫓겼습니다. 직권남용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 2022년 2월 6일이 만료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고발한 시민단체가 재정신청을 하면서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사건 처리 기한이 열흘 정도 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나도록 결론을 못 내렸다면 검사로선 치욕스러운 일일 겁니다. 물론 검사는 피의자가 혐의가 없다는 게 명백하면 조사 없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 공소시효 만료를 코 앞에 두고 검찰은 이재명 후보를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고 발표한 겁니다.
"조사할 필요 없다"면서‥ 집까지 찾아가 출석 통보?
그런데 이 말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검찰이 이 후보에게 여러 차례 출석 통보를 한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겉으론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사실 필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작년 10월 국민의힘과 시민단체가 이 사건을 고발했습니다. 검찰은 그 후 올해 1월, 검찰은 이 후보 측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 받으러 오라고 통보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후보 측은 이른바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보통 검찰은 소환장을 변호사에게 전달하는데, 전달할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후보의 집을 찾아갔지만, 집은 비어있었습니다. 검찰은 민주당 대선 캠프 법률지원단장이던 양부남 전 고검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후보에게 출석을 통보했으니 전해달라"고 합니다. 공소시효가 임박해 임기응변으로 이 후보 변호인이 아닌 양 전 고검장에게 전화를 건 겁니다.
양 전 고검장은 MBC에 "이런 예민한 사안에 대해선 내가 이 후보에게 직접 말하는 것보다 측근을 통해 전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그렇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후보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는지 등에 대해선 답을 피했습니다.
이 후보는 검찰에 답하지 않았고, 검찰은 그대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대면 조사가 어려웠으면 서면조사라도 했을 법한데, 검찰은 어떤 형태로든 조사 없이 이 후보를 불기소했습니다.
이 후보를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던 검찰… 검찰 말대로 이 후보의 혐의가 없는 게 명백했다면, 무혐의 처분 직전까지 여러 번 출석 통보한 일은 분명 이상해 보입니다.
대선 앞두고 나란히…윤석열 부인 김건희씨도 출석 통보
대통령 선거 당시 다른 후보의 부인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바로 윤석열 국민의힘 당시 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였습니다. 검찰은 비슷한 시점 김 여사에게도 출석 통보했습니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김 여사 명의의 계좌 6개를 발견했습니다. 이 계좌들이 모두 284차례, 미리 짜고서 사고 파는 '통정매매' 등 주가조작 의심 거래에 이용됐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팀은 그러나 대선 전 김 여사에 대해 "현재 수사내용으로는 기소하기 어렵다"고 지휘부에 얘기했습니다. 김 여사가 자신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쓰이는 걸 알고 있었는지 여부 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반면, 검찰 지휘부 일부는 "기소할 수 있다"는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다만, 수사팀도, 지휘부도 김 여사에 대한 대면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은 일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 여사에게도 출석해달라고 통보한 겁니다.
앞서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해 서면조사를 진행하습니다. 김 여사의 기획사 코바나컨텐츠의 전시회에서 받은 대기업 협찬금이 뇌물은 아닌지 의혹에 대해 물었습니다. 서면 조사 결과 코바나 콘텐츠 전시회 중 시기가 오래된 전시들, 즉 공소시효가 임박한 전시회는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이 서면조사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했는지 의혹에 대해서도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공소시효가 아직 남은 도이치모터스 의혹은 김 여사에 대한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소환조사 하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김 여사는 대면조사에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지금까지 처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석불응' 수사가 미뤄진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 당선인이 됐습니다. 취임은 다음주로 다가왔습니다.
검찰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예민한 시점, 이재명 후보, 또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 모두를 불러 조사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대로 조사하려 했다는 점은 평가할 일입니다. 만약 조사가 이뤄졌다면, 또 그 결과에 따라 기소 등 조치가 이뤄졌다면 정치권에선 공방과 논란이 거셌을 수도 있지만, 이뤄지지 않은 일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 다음 과정은 석연치 않습니다. 답이 없던 이재명 후보에 대해선 최종 불기소 처분을 했습니다. 서면조사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출석통보까지 해놓고도 '조사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발표했던 것도 이상합니다. 더구나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개발사업에 직접 개입했는지, 큰 줄기의 의혹 수사는 여전히 검찰에 남아있습니다.
김건희 여사 사건도 검찰에겐 부담으로 남았습니다. 출석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염없이 수사를 미뤘습니다. 선거 결과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사건 처분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정권 교체기 검찰이 예비 영부인 혹은 영부인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양쪽 진영 두 사람 모두 조사해서 사건을 처리하려 했다는 겁니다. 두 사람이 응하지 않으면서 검찰이 난처해진 것 뿐일 수도 있습니다.
"수사는 공정해야 하는 동시에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
사건의 일거수일투족을 담당 검사만큼 알지 못하는 기자가 수사 과정에 대해 말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법조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수사는 공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한다 해도 국민이 보기에 신뢰할 수 없다면 좋은 수사가 아니라는 뜻일 겁니다.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입니다. 이재명 후보를 출석 통보까지 했었다면 무혐의 처분을 하기 전에 서면조사라도 하는 게 국민들이 보기에 공정해 보였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김건희 여사에게도 출석 통보를 했었다면 사건 처리를 계속 미루고만 있을 일이 아닙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된 상황,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건 처리는 더 어려워지고, 과연 처리가 공정한지 국민들 시선도 집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공정성을 지적하면서 이른바 ‘검수완박’을 추진했고 완료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법안 통과에 따라 오는 9월, 검찰의 직접 수사대상이 축소됩니다.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대형 사건들은 한번 변곡점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넉 달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검찰은 이 후보가 대장동 개발에 직접 개입해 특혜를 줬는지, 또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했는지, 결론을 내야 합니다. 남은 몇 개월, 검찰이 공정하면서도 또한 국민들에게 공정해 보이는 수사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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