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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양소연

[서초동M본부] 드디어 공개된 정영학 녹음파일‥그런데 1.4배속 빨리 재생?

[서초동M본부] 드디어 공개된 정영학 녹음파일‥그런데 1.4배속 빨리 재생?
입력 2022-05-05 11:01 | 수정 2022-05-0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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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M본부] 드디어 공개된 정영학 녹음파일‥그런데 1.4배속 빨리 재생?

    남욱 변호사 [사진 제공:연합뉴스]

    < 고요한 법정서 울린 대화…"4천억짜리 도둑질, 완벽하게 하자" >

    "4천억짜리 도둑질을 하는데 완벽하게 하자, 문제가 되면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도배할 것이다."

    재판부와 검찰, 피고인석까지 마이크가 모두 꺼진 고요한 법정. 누군가 나눈 대화가 법정을 가득 채웁니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법정 풍경입니다.

    문제의 대화는 2014년 11월 5일자 정영학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의 통화였습니다. "4천억짜리 도둑질"이란 말은 남욱 변호사의 대사였습니다. 대장동 개발을 위한 민간 사업자를 공모하기 전인데도, 이들은 이미 대장동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불법성도 이미 알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선 정국을 뒤흔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최근 법정에선 이른바 '대장동 5인방'이 나눈 대화 또는 통화의 녹음파일이 재생되고 있습니다. 바로 '정영학 녹취록', 그 녹음파일입니다.

    '정영학 녹취록'은 이제껏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실체를 밝혀줄 결정적 증거, 이른바 '스모킹 건'으로 꼽혀왔습니다. 정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오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들이 나눈 대화와 통화 내용 등이 담겨 있습니다.

    "한구 형(강한구 성남시 의회 의원) 부분도 내 선에서 처리하겠다" (김만배씨)
    "그게 맞는 것 같다, 10억, 20억을 가져가서 거기서 정리하셔야 한다" (정영학 회계사)
    - 2013년 3월 대화, 지난 2일 법정에서 공개

    "'유유'(유동규 전 본부장)가 갖고 오라 난리치는 것을 들었다, 좀 심하더라, 돈 맡겨놓은 것처럼, 빚쟁이 다루듯이 하더라" (정영학 회계사)
    "신경 쓸 일 아니다, 완전 지겹다" (남욱 변호사)
    - 2013년 10월 전화통화, 지난 3일 법정에서 공개

    실제 녹음에는 시의회 로비 정황, 이익 배분을 둔 갈등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들은 하나하나 법정에서 공개됐습니다. 문제는 그 분량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서초동M본부] 드디어 공개된 정영학 녹음파일‥그런데 1.4배속 빨리 재생?

    정영학 회계사 [사진 제공:연합뉴스]

    <'140시간 녹음파일'…"법정서 다 들어야…" VS "다 듣는 건 무리" >

    '정영학 녹취록' 녹음파일의 수는 모두 133개, 분량은 140시간에 달합니다.

    피고인석에 나란히 선 과거의 '동업자'들은 저마다 혐의를 부인하고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겨 왔습니다. 이 녹음파일을 두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3월, 이 사건의 15번째 재판에서는 '대장동 5인방' 사이에 녹음파일 재생 문제를 두고 신경전도 벌어졌습니다.

    김만배 씨와 남욱 변호사는 '이 녹음파일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음파일은 그 자체로 정영학 회계사가 1차로 고른 것이고, 거기에 검찰이 한 번 더 선별한 거라, 앞뒤로 어떤 맥락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반면 검찰은 "이미 오래전 녹취록을 제출해 변호인들이 이미 내용을 검토했을 텐데도, 막연하게 '다 들어야 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재판부 역시 난처함을 표했습니다. "다 듣는다면 한두번 기일로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133개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66개, 30시간 분량의 녹음 파일만 법정에서 직접 들으며 증인신문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서초동M본부] 드디어 공개된 정영학 녹음파일‥그런데 1.4배속 빨리 재생?

    정영학·남욱

    < 30시간 다 들으려면…법정서 등장한 '빨리감기 1.4배속' >

    지난달 29일, 녹음파일이 처음 법정에서 재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일과 3일까지, 현재 세 번의 재판에서 녹음파일은 계속 재생되고 있습니다.

    첫날 녹음파일은 원래 속도로 재생했습니다. 그러다 두번째 날부터 재판부는 1.4배속으로 녹음을 재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 진행의 효율성을 위해서입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재판부가 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피고인 주장을 받아들여 장시간 분량의 녹음 파일을 듣기로 했지만, 재판을 너무 오래 끌 수 없다보니, '1.4배속 빨리감기'가 등장한 겁니다. 아마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적당한 속도로 1.4배속을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중요한 대목은 속도를 늦춰, 정상속도 1배속으로 듣고 있습니다.

    함께 녹음파일을 들으면서도, 한때 동업자들은 녹음이 조작된 것 아니냐며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지난 3일 재판에서 김만배 씨의 변호인은 정영학 회계사에게 '자신에게 불리한 녹음은 지우고 제출한 것이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법정 상황 재구성]

    김만배 측 변호인 : (녹음파일 제목) 순서가 1번, 2번 다음이 5번이다. 그 다음은 9번이고. 그럼 결번 파일은 증인(정영학 회계사)이 삭제한 것인가?

    정영학 회계사 : 삭제한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김만배 측 변인 : 삭제한 적 없는데 번호는 왜 이렇게 띄엄띄엄 되어 있나.

    정영학 회계사 : 혹시 지웠으면 살릴 수 있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략) 번호는 자동으로 생성된 것으로 안다.

    김만배 측 변호인 : 녹음기 제출하면서 증인한테 불리한 내용 있는 녹음 삭제한 것 있나, 없나?

    정영학 회계사 : 유, 불리 떠나서 전부 제출했다. 나한테 불리한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안다. 있는대로 제출했다.
    [서초동M본부] 드디어 공개된 정영학 녹음파일‥그런데 1.4배속 빨리 재생?

    김만배·남욱 [사진 제공:연합뉴스]

    < 스마트폰 보급·첨예한 법정 다툼…결국 '빨리감기 재생'까지… >

    적게는 몇 시간짜리부터, 1백 시간을 훌쩍 넘는 막대한 분량까지… 여러 재판을 취재하다보면 법정에서 녹음파일을 재생하는 게 더 이상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재판부마다 '빨리감기' 진행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고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녹음과 녹취록이 수사와 재판에서 주요 증거로 활용되는 경우는 빈번해졌습니다. 녹음내용이 증거능력이 있는지, 어느 한편이 법정에서 따지겠다고 하면 재판부는 이를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법정에서 녹음파일을 일일이 재생하게 되는 겁니다.

    [김희준/법무법인 'LKB 앤 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예전에는 검찰이 제출한 객관적 증거에는 변호인이 웬만하면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첨예하게 다투는 사회적 관심 사건이나 중요 사건이 증가하면서 증거능력을 배제하기 위한 법정 다툼 또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재판에서 변호인이 검찰에서 제출한 녹취록 등에 부동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이고 증거능력을 부여받기 위해 법정에서 녹취파일을 재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대장동 5인방, 옛 동업자들끼리 다툼에서도 엿볼 수 있듯, 녹음파일 자체의 증거능력이 무조건 높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한 판사는 "법관 입장에서 당사자 한쪽이 일방적으로 녹음한 내용인데다, 유도신문도 있을 수 있어서, 녹음파일의 증거로서 가치를 높게 보진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 '마이크는 꺼졌지만 더 긴장된 법정'…과연 '스모킹건' 될까? >

    당분간 대장동 비리 재판에서는 '정영학 녹음파일' 재생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약간 어색한 1.4배속 빨리 돌린 음성이 나오다가, 주요 대목에선 1배속으로 멈추는 일도 반복될 겁니다.

    재판부와 검찰, 피고인의 마이크가 모두 꺼져있더라도 법정 공방은 멈춘 게 아닙니다. 노골적인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녹음파일이 재생되고 있다면, 한층 날을 세우고 공세를 펴는 검찰과, 이를 방어해야 하는 피고인 사이 '들리지 않는' 공방은 오히려 더 치열할 수 있습니다. '정영학 녹음파일'이 과연 이들의 혐의를 입증할 '스모킹 건'이 될지, 실체적 진실을 좇는 과정을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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