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평소 주차해 놓은 데와 다른 곳에 있었어요.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니 밤에 내가 운전을 했던 거에요. 깜짝 놀랐어요" 서울 종로구의 이 모씨 (55살).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한밤중에 여러 번 전화해서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인천 서구의 서 모씨(84살)
불면증 치료제 졸피뎀을 복용한 뒤 겪은 일이라고 합니다. 서 씨는 노인정에 나오는 어르신 대부분이 같은 약을 먹고 있어 부작용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작용과 범죄 악용 논란이 끊이지 않는 '향정신성 의약품 불면증 치료제 졸피뎀'. "효과적이며 안전한 편"이란 의료계의 평가와 함께 매년 1억정 이상 처방되던 '국민 수면제'인데 코로나19 이후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15분이면 잠든다‥초강력 수면제
졸피뎀은 뇌의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작용을 강화시켜 수면을 유도한다고 합니다. 효과가 15분 이내에 나타날 정도로 강력한데요. 때문에 반드시 잠자기 직전에 먹어야 합니다. 용량을 초과해서도, 오래 먹어서도 안됩니다. 한독약품의 스틸녹스, 한미약품의 졸피드 등이 졸피뎀 성분의 약이죠. 국내 수면제 처방의 65% 정도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졸피뎀 소비량에서 한국은 세계 6, 7위 수준일 정도로 인기입니다.
FDA 강력 경고‥"매우 심각한 부작용 가능성"
미국 식품의약국 FDA는 2019년 "졸피뎀이 몽유병과 졸음운전같은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하게 되는 매우 심각한 부작용이 드물지만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FDA는 "의사는 한 번이라도 부작용을 겪은 사람에겐 다치거나 죽을 위험이 있다는 경고와 함께 투약을 중지해야 한다"고 공지했습니다.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데요. 밤에 했던 일을 다음 날 기억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에서 수면 운전, 전화하기 등의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식약처는 하루에 10mg 초과 섭취를 금지하고 복용기간이 4주를 넘지 않도록 하는 안전지침을 고지하고 있습니다.
'연예인 마약' 별명까지
연예인이 졸피뎀과 관련됐을 때 기사가 쏟아지곤 했는데요. 방송인 에이미는 졸피뎀 복용으로 벌금형을 받은 뒤 미국으로 추방됐었죠. 가수 보아가 일본에서 처방받았던 졸피뎀을 배송받았다 문제가 됐었는데 지난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헐리웃 스타 잭 니콜슨은 졸피뎀 부작용에 의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데요. 사고 이후 졸피뎀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 졸피뎀 처방 급증‥마약류 매달 5천만개씩 처방
약사 출신 김상희 국회의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1년간 졸피뎀 처방량은 1억3천8백만개, 처방 받은 환자수는 176만명이라고 합니다. 18세 이하는 졸피뎀 투여가 금지됐지만 10대도 4,647명이 처방받았다고 합니다. 졸피뎀으로 인한 자살자수는 5년간 확인된 것만 7명, 자살시도자는 15명,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자도 25명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장기복용시 졸피뎀이 자살 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된 셈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자 졸피뎀 처방이 급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 자료에 의하면 코로나 19로 비대면 진료에서 졸피뎀의 처방 건수가 대면 진료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대량 복용한 경우가 눈에 띄었는데요. 17개월동안 252명이 졸피뎀 10만 1,442개를 처방받았습니다. 한 사람이 400개 이상을 복용했다는 얘기입니다. 졸피뎀을 포함한 마약성 의약품 전체 처방량이 2020년 열 달 동안 5억3천만개나 됐습니다. 공식루트로만 한 달에 5천만개 이상 팔렸다는 얘기입니다. 마약류 의약품의 비대면 판매가 급증하자 보건복지부는 작년말부터 제한에 나섰습니다.
성범죄에 가장 많이 악용된 졸피뎀
유부남에게 졸피뎀을 먹여 의식을 잃게 한 뒤 1억천여만원 어치의 암호화폐를 훔친 20대 여성이 최근 수원지법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뇌출혈 증세를 보인 3살짜리 입양아에게 졸피뎀을 먹인 뒤 가족여행을 갔다 아이를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부부에겐 아동학대치사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06∼2012년에 의뢰된 진정제 성분 약물 관련 성범죄를 분석한 결과 졸피뎀을 사용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의붓아들과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도 졸피뎀을 처방받았던 것으로 드러났었죠. 졸피뎀을 악용한 성폭행, 절도, 살인 등의 강력범죄는 워낙 많아 소설 소재로도 등장할 정도입니다.
미국 약물 중독 사망 사상 최다‥"5분에 한 명씩 사망"
지난 3월 KBS <특파원 보고>는 대낮 거리에서 의식을 잃고 몸이 꺾인 채 걷고 있는 미국 약물 중독자들의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애비뉴인데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들이 모여 들면서 좀비마을처럼 변했다고 합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해 펜타닐 같은 마약성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년보다 23%나 늘어 7만천여명이 숨진 것으로 잠정 집계했습니다. 전체 약물 중독 사망자는 10만7천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5분에 1명씩 사망한 셈이라고 합니다. AP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코로나 19 방역조치로 약물 중독자들이 고립되고 이들에 대한 보호가 어려워지면서 약물 과다 복용이 더욱 심해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마약보다 무서운 의약품 중독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졸피뎀을 과다 처방한 의사 1,958명을 적발해 서면경고했습니다. 식약처는 이번 달부터 석달간 이들의 처방 내역을 추적 관찰할 예정입니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처남에게 갖고 있던 졸피뎀 7정을 준 의사에게 면허정지 1개월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당국이 고삐를 조일 분위기인데요.
마약성 의약품은 치료 과정에서 원치 않게 중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마약보다 더 무섭습니다. 졸피뎀은 한 번에 4주치가 처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 의원에서 본인 확인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여러 사람 명의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불면증의 특성상 '잠을 못잔다'는 문진만으로 처방이 쉽게 이뤄지기도 합니다. '효과적인 수면제'인 졸피뎀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선 철저한 본인 확인과 수량 통제, 체계적인 복약지도가 시급해 보입니다. 미국의 펜타닐 중독자들도 처음엔 통증치료를 위해서 약을 처방받다 '좀비'가 되어 버린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사회
이승용
마약인가 수면제인가‥코로나 와중에 졸피뎀 처방 급증
마약인가 수면제인가‥코로나 와중에 졸피뎀 처방 급증
입력 2022-05-25 07:56 |
수정 2022-05-2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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