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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양소연

[서초동M본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 340명의 판결문을 읽다

[서초동M본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 340명의 판결문을 읽다
입력 2022-05-28 10:55 | 수정 2022-05-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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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M본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 340명의 판결문을 읽다
    < MBC 법원기자들이 340개 판결문 분석에 나선 이유… >

    시작은 4장 분량의 '불기소결정서'였습니다.

    ■ 피의사실은 인정된다.
    ■ 피의자는 초범이고 대학생이다.
    ■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고 건전한 사회적 유대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누구에 대한 결정이었을까. '박사' 조주빈이 운영하던 텔레그램 '박사방' 가담자 중 한 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운영진의 지시에 따라 이른바 '실검 챌린지'에 참여하고 인증하는 등 조주빈의 범행을 방조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실검 챌린지', 운영자의 지시로 어린 피해자의 이름 등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리는 작업을 말합니다. 새로운 성착취물이 유통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홍보수단이었습니다. 극히 악랄한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수법이었습니다.

    ■ 지시에 따라 제시어를 검색한 것 외에 추가 범행을 하지는 않았다.

    수사기관은 '실검 챌린지'에 참여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도 재판에 넘기지는 않았습니다. 죄를 저질렀는데, 그 죄 밖에 안 저질렀으니, 재판을 받지 않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였습니다.
    [서초동M본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 340명의 판결문을 읽다
    [서초동M본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 340명의 판결문을 읽다
    <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심판 >

    2년 전,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체포 당시 24살이었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약 1년 7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42년 형을 확정받았습니다. 텔레그램 닉네임 '갓갓'. N번방 운영자 문형욱도 지난해 8월 징역 34년 형이 확정됐습니다. 주요 공범들도 연이어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박사방, N번방에서 '관전'하고 '가담'했던 이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었습니다. MBC 법조팀은 법조계 안팎에서 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담자들에 대한 수사결과나 판결문을 수소문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불기소결정서는 그 중 한 조각이었습니다. 그저 하나의 사례일 뿐일까… 비슷한 결정문이나 판결문을 찾았지만, 변호사들을 통해 알음알음 자료를 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서초동M본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 340명의 판결문을 읽다
    < 340명의 판결… 그들은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

    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에서 판결문을 최대한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박사방'이나 'N번방'도 검색해봤지만, 검색되는 판결문이 적었습니다. 다시 '텔레그램'과 '착취'를 함께 입력해 검색했습니다. 두 단어가 공통적으로 명시된 판결문 430여건을 확보했습니다.

    텔레그램 대화방의 참가자 또는 텔레그램으로 성 착취물을 사거나 전송받은 사건을 추렸습니다. 성 착취물을 직접 제작했거나, 또는 강간·추행·불법촬영 등 다른 범죄를 함께 저지른 경우는 제외했습니다. 단순 가담자에 대한 처벌 수준를 확인하려는 취재 목적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전송받은 340명이 남았습니다.

    이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340명 가운데 집행유예가 271명으로 전체의 80퍼센트였습니다. 벌금형은 62명으로 18퍼센트, 죄질이 약하다며 선고를 미뤄준 선고유예는 7명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340명 가운데 단 한 명도 감옥에 가지 않은 겁니다.
    [서초동M본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 340명의 판결문을 읽다
    < 그들이 감옥에 가지 않은 이유, 초범과 반성 그리고… >

    텔레그램으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2천여 개를 내려받은 한 피고인. 선고를 미루어주는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며, 초범이라는 점이 참작됐습니다.

    340명 판결의 양형 사유를 분석했더니, '초범이거나 동종 전과가 없다'는 이유가 311건으로 가장 많이 거론됐습니다. '반성하고 있다'는 293건이었습니다. 10건 가운데 1건 꼴로 '나이가 어리다'는 사정 또한 반영됐습니다.

    이쯤에서, 앞서 소개한 불기소결정서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겠습니다. '피의자는 초범이고 대학생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고 건전한 사회적 유대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초범, 반성, 대학생‥ 법정에 세우지 않은 이유, 그리고 법정에 세워도 선처하는 이유는 거의 똑같았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처리 과정을 추적해 온 익명활동가 '연대자D'는 '초범'이라는 선처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초범이라는 것은 범죄를 최초로 한 번만 저질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제서야 최초로 걸렸다는 이야기거든요. 이것이 '경미한 범죄를 저질렀다'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겁니다."
    - 연대자D (성폭력 추적 익명 활동가)

    선처를 받은 기록은, 훗날 다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또 다시 선처를 받는 이유가 됩니다.

    79명이 모여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성 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를 받은 한 피고인.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 전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전과가 있는데도 그때 처벌이 약했으니, 이번에도 선처한다는 이상한 논리였습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2백 개 넘는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을 전송받고 18차례 다른 접속자들에게도 공유한 가담자, '동종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그런데, 이 구매자는 청소년 성매매로 처벌 전과가 있었습니다. 청소년 성매매와 성 착취물 구매를 다른 범주의 범죄라 볼 수 있을까요? 과거의 범죄 전력이 왜 이번 범죄의 선처 이유가 되는 걸까요?

    "전과에 대한 판단도 오히려 유리한 형태로 적용하는 경우도 많아요. ‘기소유예 전력밖에 없다’, ‘벌금형만 선고 받았다’는 것을 유리한 양형 이유로 하고, 더 나아가 동종 전과인데도 불구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 정도밖에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을 유리한 양형으로 반영하는 사례들이 유독 성폭력 범죄와 관련해서는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 연대자D (성폭력 추적 익명 활동가)
    [서초동M본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 340명의 판결문을 읽다
    < 다양한 선처의 이유 "건전한 유대관계"·"대학원생이어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은 예상보다 훨씬 다양했습니다.

    "건전한 사회적 유대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역시, 종종 거론된 '선처의 이유'였습니다.

    텔레그램에서 여러 차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다운받은 한 피고인.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피고인이 부모님의 편의점 일을 도우며 함께 거주, 생활하고 있어 가족적, 사회적 유대관계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으므로 재범의 위험성이 높지 않다'고 했습니다.

    20차례 가까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내려받은 피고인 역시 집행유예, 이번에도 '가족 등 주변 사람과 사회적 유대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유대관계'라는 기준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N번방, 박사방 관련 자료들을 재유포한 사범이 있었어요. 근데 이 사람이 불행한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을 해 왔다고 합니다. 부모와 연계가 없었던 상황이었대요. 근데 재판이 시작되니까 부모가 찾아와서 선처를 위한 탄원을 계속 제출했습니다. 그랬더니 판결문이 어떻게 나왔냐면, ‘불화한 가정 환경 속에서 살아와서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범죄에 이를 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게 보이므로 선처를 한다’라는‥"
    - 연대자D (성폭력 추적 익명 활동가)

    '아직 사회초년생이다', '현재 대학생이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선처이유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에게 이 선처이유를 알려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한 시민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배운 사람이 그런 짓을 했는데 왜 더 깎아줘요?"

    < 다 처벌할 일인데… '유포' 안했으니 '소지'는 선처? >

    판사마다 제각각인 선처 이유도 문제지만, 법조문 상으로 우려스러운 선처이유도 있었습니다. '성 착취물 유포 여부'를 '소지'에 대해 선처할 때 따진다는 겁니다.

    두 달 간 네 차례에 걸쳐 7백 개 가까운 성 착취물을 구매한 혐의의 피고인, '음란물을 배포한 것은 아니'라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청소년성보호법은, 아동소년성착취물의 제작, 제작알선, 판매, 대여, 배포, 그리고 소지를 모두 각각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 처벌받을 범죄일 뿐인 겁니다.

    "다른 혐의를 적용한 게 아니라 유포하지 않았다고 감경해주고 있습니다. A라는 죄를 저질렀는데 'B라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A에 대한 형량을 깎아줄게'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거죠."
    -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서초동M본부] '텔레그램 성착취' 가담자 340명의 판결문을 읽다
    < 양형기준까지 만들어도, 판결은 여전히 '가해자 편에서'? >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도 마련돼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정적 사법처리는 그대로라는 지적이 여전합니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대응 TF가 분석한 결과 미성년자 성 착취물 사건은 징역형이 선고되도 대부분 법정형의 절반에 집중됐습니다. 판사가 재량껏 형량을 깎는 것을 '작량감경'이라고 하는데, 작량감경의 최대치가 바로 절반입니다. 판사가 최대한 깎아준다는 얘깁니다.

    "작량감경, 즉 정상 참작 반경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판사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 연대자 D (성폭력 추적 익명 활동가)

    현행 양형기준은 '범행 가담에 특히 참작할 사유가 있는 경우' 감형하도록 돼 있습니다. 범행을 주도하지 않았다면 선처할 수 있다는 건데, 역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사정을 고려한 사융입니다.

    "성 착취물을 하나의 상품인 것처럼, 호응하고, 구매하고, 이벤트에 참여하고, 피해자의 이름을 집단적으로 검색한다든지 동조한 사람들‥'수요자가 존재한다'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
    -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

    디지털 성착취물은 '찾아서 보는 사람'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그저 말단 '가담자'에 그치는 걸까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성착취물은 제작됐고 퍼져나갔습니다. 이들은 범죄가 시작되도록 한 '수요자'이자, 또 다른 '가해자'가 아닐까요.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가혹한 처벌을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죗값에 맞는, 저지른 범죄에 걸맞는 형태의 처벌을 받되 피해자는 그 과정에서 보호받는 것, 그게 핵심이죠. 피해자가 다시 회복을 하고, 다시 일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거든요."
    - 연대자D (성폭력 추적 익명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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