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M본부] 금융합수단 첫 구속기소‥그런데, 따로 소송도 냈다?](http://image.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2/07/18/s2022071801.jpg)
연합뉴스TV 제공
1987년 설립된 한 섬유 회사가 있습니다. 섬유 제조 자동화 설비를 처음 도입하는 등 꾸준히 사업을 키웠습니다. 직원수를 200명 정도까지 늘렸고, 결국 코스닥 시장에 상장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 튼실한 회사는 지난 2015년 이른바 '기업사냥꾼' 일당에게 인수됩니다. 회사명은 30년 만에 '가희'에서 '에스마크'로 바뀝니다. 그리고 불과 2년 뒤인 2017년, 이 회사의 당기순손실은 84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20년에는 끝내 상장폐지 됐습니다.
'기업사냥'이란 말 그대로 기업을 사냥감으로 삼아 잡아먹는 범죄를 일컫습니다.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사채 등을 이용해 기업을 인수합니다. 인수대금을 갚기 위해 회삿돈을 횡령하고 허위 정보로 주가를 띄워 차익도 챙깁니다. 대표적인 금융사기 수법입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회삿돈 718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습니다. 이 중 횡령한 돈은 89억원. 또 허위 언론보도 등을 통해 주가를 조작해 얻은 차익은 231억원이었다고 합니다. 서울 강남구 룸살롱에서 쓴 돈만 수억원이 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에스마크를 인수한 기업사냥꾼 일당 4명, 최근 구속기소됐습니다. 이들을 구속하고 기소한 건, 지난 5월 부활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입니다.
![[서초동M본부] 금융합수단 첫 구속기소‥그런데, 따로 소송도 냈다?](http://image.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2/07/18/PCA_20220718_19.jpg)
검찰이 이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건 지난 2019년입니다. '사냥'을 당한 또 다른 코스닥 상장사를 수사하던 중, 자금 흐름을 추적하다 에스마크까지 등장하게 된 겁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고, 올해 1월 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에서 사건을 수사하다가, 합수단이 5월 출범하면서 사건이 합수단으로 넘어갔습니다. 수사 착수 기준으로는 합수단의 첫 사건은 아니지만, 합수단의 첫 구속 사건이 된 겁니다.
[관련기사][단독] 한동훈 부활 증권합수단, 기업사냥꾼 일당 첫 구속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85256_35744.html
그리고 합수단은 첫 구속기소 뿐 아니라, 여태껏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하나 더 시작했습니다. 바로 에스마크 기업사냥에 동원된 21개 법인을 모두 해산시켜달라고, 법원에 해산명령청구 소송을 낸 겁니다.
국가기관이 피해자를 대신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걸 '공익소송' 제도라고 합니다.
검찰은 범죄를 수사해 형사 재판을 하는 게 익숙한 모습이지만, 이처럼 민사사송도 할 수 있습니다. 상법 176조 덕분입니다.
'회사의 설립 목적이 불법적인 것인 때, 회사의 이사 또는 사원이 법을 위반해 회사의 존속을 허용할 수 없는 때, 회사의 이해관계인이나 검사는 해산명령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검찰은 불법 도박사이트나 보이스피싱에 쓰인 페이퍼컴퍼니들에 대해 해산명령청구 소송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 다시 범죄에 더 악용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작년 서울북부지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서울북부지검은 1년간 관할 법원에서 선고된 판결을 분석해, 아직 남은 페이퍼컴퍼니 68개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각 회사 주소지에 있는 전국 13개 법원에 해산명령을 청구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많지는 않습니다. 수사와 재판 등 가뜩이나 일을 쌓아놓고 있는 검사가 후속 조치까지 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상법 176조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에 가깝다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금융합수단의 소송은 더 뜻깊어보입니다. 수법이 복잡한 금융 사기 사건에서 후속조치까지 나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금융사기 사건에서 해산명령을 청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서초동M본부] 금융합수단 첫 구속기소‥그런데, 따로 소송도 냈다?](http://image.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2/07/18/k220718-22.jpg)
검찰이 해산시켜야 한다고 본 법인은 21개로, 이들 모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체는 없는 페이퍼컴퍼니이거나 범죄에 악용된 법인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에스마크 인수를 위해 이 일당이 설립한 U사, 또 에스마크에서 빼낸 돈을 투자받은 것처럼 속여 기업사냥꾼들이 그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준 R사 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에스마크와의 가장거래, 자금세탁 등을 통해 에스마크 주가를 부양하거나 자금을 유출하려고 만든 유령법인들도 있습니다.
검찰은 이 일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가짜 법인들이 추가로 기업사냥에 활용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고, 금융수사 분야에선 처음으로 상법 조항을 꺼내 든 겁니다.
이 법인들이 또 다른 기업사냥에 동원되면 더 많은 잠재적 주식 투자 피해자들이 생겨나는 거죠.
앞으로 검찰은, 이번을 계기로 금융사기 사건에서도 더 적극 회사 해산명령청구 소송을 제기할 걸로 보입니다. 이 사건처럼 기업사냥 사건은 많은 수의 페이퍼컴퍼니가 동원돼야 가능한데, 이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게 무척 쉬워서, 사실 해산시켜야 할 법인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법상 최소자본금 액수가 낮아진 데다가 자기자본금, 즉 '내 돈'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통장 잔고증명서만 있으면 법인을 세울 수 있는데, 온라인상에서 이런 잔고증명서를 만들어주겠다는 전문 업체들, 즉 브로커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장 '잔고증명' 단어만 검색해도 '법인 설립 잔고증명'이라는 제목의 업체 홍보 글들이 보입니다.
실제로 에스마크를 인수하는 데 쓰인 U사나 자금 유출 도관업체인 R사 역시 페이퍼컴퍼니인데, 이 기업사냥 일당은 인터넷상 브로커를 통해 U사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브로커들은 법인을 설립하려는 기업사냥꾼들에게 돈을 줘 잔고증명서를 발급하게끔 도와주고, 증명서가 발급되면 곧바로 빌려준 돈에 이자를 붙여 이득을 챙깁니다.
금융 수사를 했던 검찰 출신 변호사는 "사실상 잔고 증명 하나만 하면 될 정도로 법인 설립이 쉬워 회사들이 난립하고 기업사냥에 동원되고 있다"며 "자본시장 교란의 시발점과 같은 일명 ‘잔고 증명 서비스’를 해주는 브로커들이 자본시장에서 활개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범죄 악용 '페이퍼컴퍼니', 해산명령 청구 더 활발해져야
![[서초동M본부] 금융합수단 첫 구속기소‥그런데, 따로 소송도 냈다?](http://image.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2/07/18/k220718-19_1.jpg)
2019년 싱가포르 테라 본사에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유일한 이사로 등재돼있는 플렉시코퍼레이션이라는 법인으로 100억원 넘게 넘어갔는데, 가상화폐를 현금화하는 통로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됩니다.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검찰이 한 번도 자본시장 범죄에 연루된 회사의 해산명령청구를 하지 않은 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금융범죄를 전담하는 남부지검에는 앞으로 이런 해산명령청구 소송을 전담할 공익소송팀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히지만, 아직 이 팀에 검사는 1명뿐입니다.
이왕 검찰이 시작한 금융사기 사건 해산명령청구, 이참에 더 적극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시장 범죄는 무엇보다 서민이 피해자인 만큼, 복잡한 금융사기 사건이기 전에 민생 범죄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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