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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조국현

청와대를 서둘러 미술관으로?‥"뭐가 급한데요?"

청와대를 서둘러 미술관으로?‥"뭐가 급한데요?"
입력 2022-07-28 15:39 | 수정 2022-07-2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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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를 서둘러 미술관으로?‥"뭐가 급한데요?"
    청와대를 미술관, 전시장 등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문화재계를 중심으로 청와대의 역사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여당까지 ‘속도 조절’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청와대 관리를 맡고 있는 문화재청의 어제 기자간담회는, 그래서 더 이목이 집중됐는데요. 논란은 오히려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청와대를 서둘러 미술관으로?‥"뭐가 급한데요?"
    <반응>
    어제 정오 무렵, 섭씨 32도가 넘는 푹푹 찌는 더위에도 꽤 많은 관람객이 청와대 내부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푸른 지붕'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본관과 영빈관 내부는 덧신을 신고 들어가 구석구석 살피는 모습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일에 맞춰 지난 5월 10일 전면 개방된 청와대. 어제까지 두 달 여 간 139만 6천859명이 방문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경복궁을 다녀간 108만 명보다 30여만 명 많습니다. 창덕궁 연간 관람객을 기준으로 하면 2배 수준입니다. 이 수치를 통해 청와대 개방에 대한 국민 호응은 가늠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발단>
    개방 이후 활용 방안에 국민 관심이 큰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온 17살 이준서 군은 "대통령이 살던 곳이니 확실하게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죠. 그런데 현실은 다릅니다. 보존과 활용 방식 등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발단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1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공개한 ‘청와대 활용 방안’입니다.
    방안에 따르면, 우선 청와대 본관과 관저는 미술품 상설 전시장으로 운영합니다. 본관 앞 녹지 대정원엔 종합 공연예술 무대를 올립니다. 8월 13일 오후 7시 10분,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특별공연을 시작으로 문체부 구상은 현실화됩니다.
    영빈관도 미술품 특별 기획전시장으로 구성해 청와대 소장품 기획전과 이건희 컬렉션 등을 유치합니다. 이른바 '청와대 미술관'이라는 일각의 평가가 그저 과장된 말은 아닐 겁니다.

    <역사>
    당장 우려가 쏟아졌습니다. 그 우려를 이해하기 위해 이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먼저 살펴야겠습니다. 무려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고려는 개국하면서 전국에 삼경, 즉 세 개의 주요 거점을 뒀습니다. 수도 개경(개성)과 서경(평양), 동경(경주)였습니다. 그러던 1068년, 고려 문종은 ”동경은 개경과 너무 멀다“는 이유를 들며 남경을 추가로 지정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 청와대 자리입니다.
    숙종은 한술 더떠 남경으로의 천도까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직접 행차한 숙종이 지세를 둘러본 뒤 왕이 이동할 때 머무르는 별궁인 ‘이궁’을 지었다고 역사는 전합니다.
    이후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도 이곳에 궁궐을 지으려 했습니다. 다만 터가 넓지 않았던 탓에 남쪽 평지에 큰 궁을 세웠습니다. 경복궁입니다. 이후 이곳 청와대 터는 경복궁 후원으로 명명돼 서현정, 취로정 등 여러 건축물이 지어졌습니다.

    <반발>
    이렇게 청와대 자리는 고려시대부터 '최고 권력의 공간'이었습니다. 그 천년의 역사적 의미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게 바로 이번 '청와대 활용 방안'을 우려하는 문화재계의 일관된 논리입니다. 문화재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문화재위원회가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큰 청와대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보존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우려를 내놓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후 문화재청 노조는 물론이고,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속도 조절’ 주문이 나왔습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이용호 의원은 "국무총리 산하에 TF를 설치한 뒤 시간을 가지고, 좀 더 면밀히 활용 방안을 마련해 국민에게 발표하는 것이 옳다"고 조언했습니다. 이런 지적은 문화재 전문가들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선 "청와대에 어떤 문화재와 유적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간 최고 권력자의 거처였던 청와대 지역에 대한 학자와 일반인의 접근은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현장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연구했거나 조사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겁니다.
    문화재청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기초조사'의 중요성은 그래서 더 강조됩니다. 섣불리 '활용'부터 한 뒤, 다시 되돌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역사상 처음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권역 기초조사' 시간을 충분히 보장하고 관련 학계의 연구, 또 국민 공감대까지 형성하는 과정을 거쳐 활용 방안을 확정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청와대를 서둘러 미술관으로?‥"뭐가 급한데요?"
    <진땀>
    청와대 관리를 맡은 문화재청도 이 순서가 맞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초조사'의 중요성은 문화재청 스스로 수차례 밝혀왔습니다. 물론 상급 기관인 문체부 방침에 각을 세우기 쉽지 않은 현실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걸 이해한다해도, 어제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의 최응천 문화재청장 발언에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현재의 논란을 잘 알고 있다. 온전히 국민에게 돌려드리기 위해 청와대 지역의 기초조사가 선행돼야하는 만큼, 면밀한 조사가 이뤄진 뒤 활용 방안을 논의하자고 문체부에 제안하겠다"는 정도의 언급이라도 했다면 어땠을까요. '혼선'보다는 부처간 '건전한 논의'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습니다.
    최 청장은 그러나, 간담회가 진행된 1시간 내내 "청와대청이 아니라 문화재청이다. 문화재청이 청와대 하나만 지키는 기구는 아니지 않느냐"는 등의 논리로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몇 안 되는 순간에도 "문화재청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할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했습니다.
    최 청장이 강조한 문화재청의 '본연'은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을 위해 조사와 연구에 매진하고, 바람직한 활용 방안을 모색해 제안하며, 그것을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청와대 활용을 둘러싼 혼선을 줄여나가려면 문체부, 더 나아가 대통령실이 이같은 문화재청 본연의 업무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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