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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전준홍

[알고보니] '세금 축내는 노인 알바'?‥"우리 쌀값인데요"

[알고보니] '세금 축내는 노인 알바'?‥"우리 쌀값인데요"
입력 2022-09-10 07:45 | 수정 2022-09-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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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니] '세금 축내는 노인 알바'?‥"우리 쌀값인데요"
    ‘공공형 노인 일자리’ 축소 방침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금 축내는 노인 단기 알바 자리로 취업 통계를 부풀린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내년부터 6만 1천개의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입니다. 2023년 예산안에 따르면, 줄어드는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전체 10% 수준으로 결코 적지 않습니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 6만 1천개 감축"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환경 미화나 도시락 배달같은 노인 도우미, 시설물 점검 같은 공익활동을 하는 노인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소득 등의 기준에 따라 선발된 60살 이상 노인이 공익활동에 참여하면서, 통상 월 30시간을 일하고 월 27만 원을 받는 일자리입니다. 이는 세금으로 직접 월급을 지급하는 ‘직접 일자리’로 분류되는데 정부는 이 직접 일자리 예산을 약 900억 원 줄이기로 했습니다. 예산이 줄면서 직접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인원도 105만 8천 명에서, 98만 3천 명으로 4만 7천 명 감소합니다. 이 가운데 공공형 노인 일자리만 놓고 보면 6만 1천개가 감소합니다.

    "공공형 줄이는 대신 민간 채용 유도"

    대신 정부는 보조금 등을 민간기업과 사회적 기업 등에 지원해 노인 채용을 3만 8천 개 늘리겠다는 계획입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예산안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직접적인 단순 노무형 일자리를 소폭 줄이고 민간의 노인 일자리는 조금 더 늘어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노인 일자리를 줄여 예산을 조정하려는 이유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령층 진입'입니다. 새로운 세대가 노인층에 편입되는 만큼 그들의 교육 수준과 생활 수준에 맞춰 노인 일자리도 변화돼야 한다는 겁니다. 즉 월 30시간 일하고 27만 원을 받는 식의 일자리보다는 더 높은 임금과 고용이 안정적인 일자리로 많이 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노인들의 일자리 이동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정책입니다.

    “일해서 번 돈으로 쌀 사니까 좋죠”

    <알고보니>는 공공형 일자리를 할 수 없게 될 6만 1천 명의 노인이 ‘어떤 노인’인지에 주목했습니다. 그들은 노인 중에서도 ‘더 늙고’, ‘더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이었습니다. <알고보니>팀이 만난 지하철역 봉사 활동을 하는 노인들은 나이가 각각 87살, 80살, 79살 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세금 축내는 노인 알바'?‥"우리 쌀값인데요"
    * 이선자 할머니 (80살) -지하철역 안내활동

    (27만원 받으면 주로 어디에 쓰세요?)
    “쌀도 좀 사먹어야 돼요. 또 집안에 없는 것도 사고 그래.“

    (힘들지 않으세요? 보람은 있으세요?)
    “보람 있죠. 좀 뭐 없는 거 사고 쌀 사고 그러니까 좋죠.”

    (일 하시면서 어떤 부분이 제일 좋으세요?)
    “누가 길을 물으면 이렇게 인도하고, 여기 나오시는 분이 문 열어주고 그러면 너무 고맙다 그래요. 그게 제일 좋아요. 그게 제일 보람 있어요.”

    (만약 일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실거예요?)
    “아이고 어렵죠.”


    ‘70대 이상’이 90%‥3분의 2가 '할머니'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발표한 「2020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통계 동향」에 따르면, 공공형 노인일자리 참여자 중 60대는 6만 3천여 명에 불과합니다. 반면 70대 참여자는 37만 7천 명에 이르고 80대는 18만 3천 명에 달합니다. 공공형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의 90%가 70대 이상입니다. 85살 이상 참여자도 4만 1천 명입니다. 노인 중에서도 ‘더 늙은’ 노인들인 것입니다.

    [알고보니] '세금 축내는 노인 알바'?‥"우리 쌀값인데요"
    공공형 노인일자리 참가자의 연령 분포

    성별로 보면, 남성은 약 18만 명 여성은 43만 명으로 여성 참가자가 전체의 3분의 2입니다. 공공형 일자리에 주로 고령자들이 참여하다보니 생겨난 현상입니다. 주지하다 시피, 우리나라의 70, 80대 여성은 전문 지식이나 사회 경험이 적어 경력을 살려 회사에 채용되기 쉽지 않습니다.

    공공형 참여자 94%가 ‘초등학교 졸업’

    참여자들의 학력도 살펴봤습니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의 94%는 ‘초등학교’ 졸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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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형 노인 일자리 참여자의 학력

    종합하면, 공공형 노인일자리 참여자의 경우 대부분 70, 80대의 '더 늙은' 노인들이고, 3분의 2가 여성이며, 절대 다수가 초등학교 졸업 학력입니다. 학력 수준이 낮고, 노인 중에서도 고령층인데다, 공인받은 사회 경력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 공공형 노인 일자리 참가자가 직업교육훈련을 거쳐 민간형 일자리로 이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들 입장에선 바뀐 정부 방침에 의해 처우가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기보다는 공공형 일자리 6만 개가 줄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하는 노인 74% “생계 위해 일해”

    통계청이 2020년에 발표한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하고 있는 노인 중 73.9%는 생계비 마련을 위해 경제활동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즉 우리나라 노인들에게 일자리란 '용돈벌이'나 '소일거리'라기보다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돼 있는 것입니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의 경우 경쟁을 통해 선발되는데, 같은 조건일 경우 소득과 자산 수준을 기준으로 뽑습니다. 형편이 더 어렵거나 경제활동을 오래 쉰 '더 늙은' 노인들이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령 참가자가 많은 이유입니다. 게다가 70대 상당수는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지 않습니다. 공공형 일자리가 형편이 어려운 고령의 노인들에게는 더욱 필수적인 것입니다.

    생계 뿐 아니라 정신·육체 건강에도 도움

    일자리는 경제활동이면서 사회활동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생계 보조 수단인 동시에 사회복지로서 의미도 가집니다. 치매, 우울증, 고독사와 같은 노인문제를 줄이는 복지와 사회적 안전망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22년 현재 국내 독거노인은 176만여 명으로 전체 노인의 19.5%에 달합니다. 전체 노인의 5분의 1이 혼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3개월 단위 병원 이용 횟수'가 2.4회에서 1.9회로 줄었고, '우울 의심비율'은 32.3%에서 7.3%로 4분의 1로 감소했습니다. 즉 노동을 통해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 노인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해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알고보니] '세금 축내는 노인 알바'?‥"우리 쌀값인데요"
    공공형 노인 일자리의 사회복지적 효과(출처: 보건복지부)

    * 김봉덕 할머니 (87살) - 지하철역 안내활동

    (월급 27만원은 어디에 쓰세요?)
    “약값으로도 쓰고, 손녀들이 오면 내가 돈 이제 만 원도 주고 이만 원도 주고 그게 내 재미에요. 제가 이제 병원에 가고 싶으면 또 가고 그래요.”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으세요?)
    “그럼요. 내가 나이가 있어서 그렇지만‥하고 싶어요.”

    (이 일 말고 다른 일 찾을 수 있어요?)
    “(다른 일) 해보라고 하는데, 그것보다 이게 더 나아요. 밖에 나와서 공기도 쐬고 사람들 구경도 하고 다리 운동도 할 수 있고 그래요.”


    노인 빈곤율 39%.. OECD 국가 중 1위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38.9%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1위입니다. OECD 평균 노인 빈곤율은 13.5%로 우리나라가 평균의 3배에 달합니다. 또한 2020년 기준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1.7명으로 이 또한 OECD 1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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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형 노인 일자리 비판 기사 제목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월 인사청문회 때부터 공공형 노인일자리를 두고 '질낮은 단기 일자리'라고 비판했습니다. 언론도 공공형 노인 일자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여과없이 드러냈습니다. 물론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재정적 잣대로 본다면 효율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이러한 노인 일자리를 취업률 부풀리기에 이용했다는 비판도 통계를 세분화하는 등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손주들에 용돈 줄 수 있어 좋아"

    그렇다고 공공형 일자리를 단순히 세금 낭비라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합니다. 지금도 공공형 일자리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연락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민간형 일자리로 이동이 어려운 형편의 노인들입니다. 이러한 일자리를 통해 노인들은 공동체에 기여하고 사회적 안전망에 포함돼 보다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을 통해 번 소중한 돈의 일부는 이번 한가위에 만나는 귀여운 손주들 손에 꼭 쥐어줄텐데, 그런 노년의 즐거움을 수치로 계산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 글/구성: 임정혁

    ※ [알고보니]는 MBC 뉴스의 팩트체크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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