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군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존안 자료 속 밀고 정황, 김순호 국장 이름으로 보고된 동아리 후배들의 명단과 행적들
- 고 최동 씨 여동생 “오빠가 제 귀에 대고 말해요. ‘이상하다고 누가 말해준 것처럼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안다고’ 지금도 그 눈빛은 잊을 수 없어요”
- <김순호 파면·녹화공작 진상규명 국민행동> “통상 순경 공채자가 경위 승진까지 최소 15년”이라며 “김순호 국장은 4년 8개월 만에 초고속 승진”으로 그 과정에 의문을 제기
13일 밤 PD수첩 < 경찰국장, 그는 밀정이었나? >에서는 지난 8월 2일 31년 만에 부활한 경찰국의 수장,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의 밀정 의혹에 대해 취재했다. 김 국장이 경찰 특채되기 전 학생 운동을 함께한 ‘심산연구회’ 동아리 후배들과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인천 부천 민주노동자회> 약칭 ‘인노회’ 회원들. 그들은 김 국장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PD수첩은 그들을 만나 김순호 국장의 과거 행적을 들을 수 있었다. 1980년대 군사정권에서 대학생들은 학생 운동을 하다 군대로 강제 동원되고 녹화사업의 대상자가 되는 등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났다. 언론을 통해 김순호 경찰국장의 존안 자료 일부가 공개됐다. 과거 국군 보안사령부가 작성했다는 문건. 자료의 내용 속 침투 목표는 ‘심산연구회’ 김 국장이 1981년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해 가입한 동아리의 이름이었다. 김 국장과 같은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 그의 모습과 행적에 대해 들었다. 동아리 후배 이은정(가명) 씨는 “81학번 선배 중 제일 신뢰가 가고 많이 따랐던 선배”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동아리 회장이었던 1983년 전두환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같은 해 4월 강제로 군에 입영됐다. 국군 보안사령부에서 진행됐던 ‘녹화사업’에 동원된 것. 보안사 ‘녹화사업’을 당시 심사장교였던 석락희 씨는 “(대상자를) 순화시켜 빨간 물이 들었던 학생들을 파랗게 만든다”라고 밝혔다. 전두환 정부는 당시 대상자들을 활용해 학생 운동권을 와해시키려 했다는 것. 녹화사업의 대상자가 담당 장교에 의해 ‘순화’되면 보안사는 출신 대학의 동향을 수집해 오도록 끄나풀 활동을 강요했다고 밝혔다.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양창욱 씨가 거쳐간 보안사 산하 진양 분실. 그는 이곳에서 공작 임무 받았다고 밝혔다. 시위를 주동할 학생들을 감지해 명단을 가져오는 게 그의 임무. 양씨는 그들이 “잘하면 안기부로 보내줄게”라며 ‘회유’와 ‘협박‘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들의 지시를 거부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친구 김두황 씨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선택의 문제죠, 여기서 저항하면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라며 후배들을 만나 술 먹는 척 정보를 갖고 올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 국장은 보안사에 친구들과 술 마신 내용만 보고했다고 말했지만, 보안사에서 김순호 국장에게 보고받았다는 기록은 달랐다. 문건의 실적에는 김 국장이 경양식집 들꽃에서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 파악한 정보들이 적혀있었다. 당시 경양식집은 후배들이 도청 위험을 피해 모임을 갖던 장소였다. 동아리 회원들의 이름과 학과까지 상세히 작성된 문건에는 신입생 정보까지 기록돼 후배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의 문건 전체는 88쪽, 언론에 공개된 문건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정부 당시 녹화사업에 동원돼 끄나풀 활동 지시를 받은 인원은 확인된 사람만 2천5백 명이 넘었다. 그중에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본인의 기록을 공개한 양창욱 씨는 “공작 수행은 한 2~3일 정도만 하면 할 얘기를 다 하는데 그걸 (김 국장이) 11일 동안 했다는 것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임했거나 무언가 추가할 게 많았거나”라며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때가 되면 문건 전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던 김순호 국장은 지난달 말, 자신도 녹화 공작의 피해자라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하지만 문건 속 담겨있는 내용은 군 복무 시절의 활동으로 김 국장은 제대 이후에도 밀정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김 국장과 대학 동기인 박종근 씨는 ‘인노회’ 회원으로 부천의 한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다 1989년 4월 29일 갑작스럽게 경찰에 연행됐다. 박씨는 경찰이 그들을 이적단체로 몰며 진술을 강요했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인노회’의 구체적인 조직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평, 주안, 부천 지역 중에서 유독 ‘부천’만 9개 분회의 전체 명단을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 안재환 당시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 회장은 “‘이건나도 작성할 수 없는 건데’할 정도의 내용”이라고 밝혔다. ‘인노회’의 회원들에게 내부자로 지목된 건 김봉진이란 가명으로 활동하던 김순호 국장. 그는 부천의 9개 분회를 총괄하는 지구장으로, 부천지구 전체를 꿰뚫고 있었다. 회원들은 김 국장이 1989년 4월 초 동료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한 뒤부터 부천 회원들이 줄줄이 연행됐다고 말했다. 특히 ‘인노회’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 이후 역할을 다하고 회원조차 아니었던 최동 씨도 같은 해 4월 말 체포됐다. 김 국장의 동아리 선배로 10여 년을 가깝게 지냈던 최동 씨. 그를 보기 위해 가족들이 매일 치안본부로 찾아갔지만, 6일째가 돼서야 겨우 오빠와 면회를 할 수 있었다는 여동생 최숙희 씨. 그녀는 면회를 나온 오빠 머리에 하얀 붕대를 댔는데 핏자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사관에게 진술을 강요받은 과정에서 자해를 했다는 최동 씨. 최숙희 씨는 “오빠가 묵비권으로 버티고 있으니까 본인이 결혼식에 간 사진이나 이삿짐을 나르는 사진 등 한 달 넘게 미행한 사진을 30장 넘게 보여줬대요. 오빠가 제 귀에 대고 말했어요. ‘이상하다고 누가 말해준 것처럼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그녀는 아직도 오빠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치안본부에서 고문을 당해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린 최동 씨. 그는 199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김 국장은 1989년 8월 초 ‘인노회’ 동료들이 잇달아 구속된 뒤 경찰로 특채됐다. 그에게 특채 안내를 해준 홍승상 전 경감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거짓 보고서 초안을 작성한 ‘공안 대부’로 유명했다. 홍승상 전 경감을 인생의 스승이라고 언급한 김 국장. 홍승상 전 경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1989년 초 김순호 국장이 자신을 찾았고 ‘인노회’ 사건 수사에 도움을 받아 특채로 받아줬다고 밝혔다. PD수첩은 그를 직접 만나 이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병원에서 치료받고 왔다는 홍 전 경감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한 달 전, 육성으로 인터뷰한 것과는 다른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김 국장이 경찰에 입문한 8월 ‘인천지역 민주노동자 연맹’에 대한 내사에 들어가 두 달 뒤 회원들이 연이어 연행됐다. 그해 12월과 그다음 해 초 인천과 부천의 노동운동가들이 연행되며 대공 수사의 표적이 됐다. 그 지역에서 활동했던 김 국장의 경험을 수사에 이용했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순호 파면·녹화공작 진상규명 국민행동> 김 국장은 경찰에 입문한 뒤 빠르게 승진했다고 말했다. 통상 순경 공채자가 경위 승진에 최소 15년은 걸리는데 김 국장은 4년 8개월 만에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것. 김순호 국장은 대공요원으로 특채되고 1년 뒤 치안본부장상을 2번 받았다. 범인 검거에 공을 세웠다는 것. 이에 대해 김 국장은 “특진은 딱 한 번 나머지는 제때 시험으로 승진했다”라고 답했다. 그는 1995년 한 노동단체 회원 15명을 구속한 사건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구속됐던 노동단체 회원 문순덕 씨. 그녀는 당시 노조를 탄압하는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의 신문을 만들어 한 번 배포했을 뿐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문씨는 “단순한 신문 배포, 집회에 나가서 그 정도 했고 아니면 그것조차도 없이 친구 만나러 왔다가 구속된 친구도 있다” 라고 주장했다. 활동한 게 없는데 어째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돼야 하는지 황당하다는 것. 그녀는 보안국 수사관들에게 약 일주일 동안 강압적인 조사를 받았다고도 설명했다. “조사관실을 보면 욕조가 있어요. 박종철 씨 물고문 사건이 얼마 안 되던 상황이잖아요. 진술을 거부하면 물고문 맛을 봐야겠냐는 식의 협박을 해 공포감을” 조장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문씨는 이적표현물 유포 등으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 그녀는 과거 행적 중 일부에 대해 2007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김순호 경찰국장이 수사했던 사건의 당사자들은 당시 경찰 수사 발표가 부풀려지고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PD수첩은 김순호 국장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그는 문자로 “이해가 안 되는 억지 주장”이라고 답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국 신설이 치안본부로 회귀라는 여론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경찰국 초대 수장이 치안본부의 밀정이었다는 의혹은 그 말의 진의를 의심하게 했다. PD수첩은 경찰청에 김 국장이 인노회 사건 당시에 자수하고도 아무런 처벌 없이 바로 특채된 이유에 대해 묻자, 경찰청은 김순호 경찰국장은 행정안전부 경찰국 소속이라 이 부분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논란 속에 출범한 경찰국과 첫 수장이 된 김순호 국장. 시민들은 경찰국장의 밀정 의혹에 대한 명쾌한 답을 기다리고 있다.
사회
PD수첩팀
[PD수첩] 행정안전부 초대 경찰국장의 과거 '수상한 행적'과 '끄나풀' 의혹
[PD수첩] 행정안전부 초대 경찰국장의 과거 '수상한 행적'과 '끄나풀' 의혹
입력 2022-09-13 22:40 |
수정 2022-09-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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