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가 또 살인으로‥스토킹처벌법엔 '잠정조치' 있었는데‥>
서울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31살 전주환이 스토킹 하던 20대 여성을 살해했습니다. 스토킹 범죄는 이렇게 또 다시 한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스토킹범죄는 다른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지난 7월초 MBC 법조팀은 최근 2년간 선고된 스토킹 범죄 판결문 131건을 분석해 보도했습니다. 스토킹 131건 중 96건, 73%가 주거침입이나 감금, 폭행, 강간, 살인 등 추가 강력범죄로 이어졌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됐습니다. 법에는 스토킹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 뿐 아니라 피해자 예방조치도 담겨있습니다. 바로 '잠정조치'입니다.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검찰을 거쳐 법원에 신청해 스토킹 가해자에게 내릴 수 있는 조치입니다. 잠정조치 1호는 서면경고, 2호는 주거지나 직장에 대한 접근금지, 3호는 휴대전화 등으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입니다. 가장 강력한 잠정조치 4호가 결정되면 일정 기간 가해자를 유치장에 가둬 격리시킬 수도 있습니다.
수사와 재판 이전 단계에서 가해자를 유치장까지 가둔다니 스토킹 피해를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과연 이 잠정조치는 스토킹을 멈추는 효과가 있었을까요? MBC는 잠정조치의 실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판결문들을 분석했습니다.<스토킹 가해자 5명 중 4명, '잠정조치' 명령 받고도 '무시'>
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에서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된 사건 중 잠정조치가 언급된 판결들을 추렸습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잠정조치가 적용됐던 이들의 1심 판결은 모두 46건이었습니다.
잠정조치는 주로 2호와 3호, 즉 접근금지와 통신금지 조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잠정조치가 내려진 46명 중 이 명령을 지킨 사람은 10명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36명, 그러니까 78%의 스토킹 가해자들은 수사기관의 명령을 무시한 채 계속 스토킹을 지속했습니다.한달동안 수천통 문자를 보냈다가 잠정조치 3호 통신금지 명령을 받은 한 가해자, "나중에 사과하면 늦는다", "조만간 남자 몇 명 보내겠다", "대가 똑똑히 치르게 해 주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계속 보내며 피해자를 위협했습니다.
접근금지 결정문을 받자마자 피해자를 찾아가 "가만두지 않겠다"며 결정문을 집어던진 가해자도 있었습니다. 신고를 못하게 휴대전화까지 빼앗았습니다.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자마자, 그 대상자를 찾아갔다니 도대체 수사기관이나 법원 명령을 어떻게 여긴 건지 모를 일입니다.
"다시 신고하면 감옥에 가니, 제발 신고하지 마라".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한 가해자가 피해자의 차에 붙여둔 쪽지입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차 안에서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에 다가가며 소스라치게 놀랐을 피해자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잠정조치를 어긴 스토킹 가해자들은 자신이 신고당한 데 대해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강한 원망을 넘어, 보복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상당수였습니다. 수사와 재판에 앞서 신속히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잠정조치'. 가해자들이 무시하면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던 셈입니다.<잠정조치 어기고 또 범행했는데도‥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법원 결정까지 무시하고 범행을 계속한 이들, 법원은 엄하게 처벌했을까요?
지난해 11월, 세들어 살던 집 주인의 요양보호사를 스토킹한 한 남성.넉 달 동안 50번 전화를 걸고, 집 주소까지 수소문해 찾아갔다가, 잠정조치 2호와 3호, 즉 접근금지·통신금지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하루 7번씩 전화를 걸고 집 근처를 찾아갔습니다. 피해자의 이웃들에게 "그 여성에게 남편이 있냐"고 묻기도 헀습니다. 결국 잠정조치 4호까지 결정돼 유치장에 가둬졌지만, 3주 뒤 풀려나자마자 또 스토킹 범행을 이어갔습니다.
잠정조치를 반복해 어기면서 범행을 이어간 이 남성,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정조치를 어긴 36명 중,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간 사람은 8명 뿐. 그나마도 모두 협박이나 폭행 등 다른 범죄를 함께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람을 숨지게 하는 등 무거운 전과가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른 강력범죄가 없었다면 대부분 처벌 수위는 낮았습니다. 집행유예를 받은 21명, 벌금형을 선고받은 7명 등 모두 28명은 재판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잠정조치가 스토킹 가해자들의 추가 범행을 막지도 못했고, 잠정조치를 어겨도 엄한 처벌이 내려지지 않은 겁니다.<김병찬도 무시했다‥참변 막지 못했던 '잠정조치'>
스토킹 가해자들이 잠정조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 범행을 이어간다는 사실은 이미 끔찍한 사건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바로 지난해 11월, 여성을 다섯달 동안 스토킹하고 흉기로 협박한 뒤 끝내 찾아가 살해한 김병찬 사건입니다.
당시 피해자는 여러차례 경찰에 신고했고 김병찬에게는 잠정조치가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법원은 피해자 주거지 100미터 이내에 접근을 금지하고 연락도 하지 못하게 했지만, 김병찬의 범행을 막지 못헀습니다. 긴급 신고를 위해 지급된 스마트워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경찰도 뒤늦게야 도착했습니다.
<"피해자 신청 없이도 실효성 있게 분리하도록" 제도 개선 목소리>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현재 피해자 보호 시스템은 피해자가 직접 스마트워치를 누른다거나 경찰에 신고를 하는 등 피해자의 행동에 기대는 방식"이라면서 "접근 행위의 횟수나 위반의 방식 등을 고려해 추가 위해를 가할 우려가 높은 가해자는 피해자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경찰이 인지할 수 있도록 위치추적 등을 도입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9연구원 연구위원은 "가해자를 유치하는 잠정조치 4호와 나머지 사이에 격차가 큰 것이 문제"라면서 "정부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휴대전화 위치 정보 등을 바탕으로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해자에게 이동할 것을 요청하는 방식의 잠정조치를 추가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법무부도 최근 "잠정조치 조항 중 가해자에 대한 위치추적을 새로 만들겠다"며 2차 스토킹 및 보복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제도 마련에 나섰습니다.
작년 11월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서 김병찬이 스토킹 피해자를 살해했습니다. 한달 뒤 이석준이 스토킹 대상자의 어머니를 살해해고 남동생을 중태에 빠뜨렸습니다. 지난 2월과 6월, 서울 구로와 경기도 안산에서도 각각 스토킹 범죄가 살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서울 신당역에서 또 한 명이 스토킹 범죄에 시달리다 끝내 숨졌습니다. 마치 몇달전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또 다시, 뒤늦은 대책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회
정상빈
[서초동M본부] 스토킹 범죄자 78%는 접근금지 명령 무시했다‥오히려 보복협박
[서초동M본부] 스토킹 범죄자 78%는 접근금지 명령 무시했다‥오히려 보복협박
입력 2022-09-21 09:27 |
수정 2022-09-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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