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실종 24년 만에 발견된 엄마, 거리에서 사라진 사람들](http://image.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2/10/04/pd221004_1.jpg)
- 전두환 정부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부랑자들에 대한 대규모 청소를 실행했다
- 서울시의 2017년 <노숙인생활시설 인권실태 정기조사>, 영보자애원 주요 인권 침해 사례를 특이사항 없다고 보건복지부에 보고해
4일 밤 PD수첩 <엄마의 24년, 거리에서 청소된 사람들>에서는 1983년 출근길에 실종돼 24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임경애 씨와 과거 노숙인 수용 시설에 강제 입소하게 된 피해자들에 대해 취재했다. 임경애 씨가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영보자애원에서 확인한 엄마의 신상기록카드. 기록으로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같은 해 임씨가 <동부여자기술원>이란 곳에 입소됐다는 것. 그곳은 1980년대 윤락 여성들을 보호하고 계도 및 직업훈련을 돕는 목적으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기관이었다.
![[PD수첩] 실종 24년 만에 발견된 엄마, 거리에서 사라진 사람들](http://image.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2/10/04/pd221004_2.jpg)
5년 전 <영보자애원>의 노숙인생활시설 인권실태 조사를 담당했던 민간 조사원 박병섭 씨. 그는 당시 조사대상자 십여 명을 인터뷰하며 충격적인 내용을 듣게 됐다. 시집간 언니를 보러 서울역에 온 여성이 길을 찾다가 노숙인 수용시설에 강제 입소됐고, 그 뒤로 아직도 시설에서 살고 있다는 것. 또 다른 조사원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혹은 버스 정류장에서 잡혀 시설에 강제 입소됐다는 말도 들었다고 밝혔다. <영보자애원>에서는 강제 입소된 사람들에 대한 의혹에 사실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곳의 원장 수녀님은 “여기를 전부 다 봐도 갑자기 차에 태워갔다는 분은 없었다”라며 임경애 씨의 경우 1986년 3월 서울시가 운영하던 <대방동 부녀보호소>에서 옮겨 온 것일 뿐 이전 시설의 일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PD수첩은 여러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본 결과 임경애 씨와 입소 경위가 유사한 이들이 여럿이었고 대부분은 서울시립 영보자애원이 개원할 때 서울 대방동 부녀보호소에서 한꺼번에 옮겨온 것으로 확인됐다. 대방동 부녀보호소는 오갈 데 없는 부랑 여성과 성매매 여성을 일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시가 운영하던 기관이었다. 동네 주민 일부는 그곳이 마치 교도소처럼 차단됐고 탈출을 시도하는 여성들이 많았다고 했다. 1960년대부터 설립된 <대방동 부녀보호소>는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인 여성 인권침해 공간으로 알려졌다. 여성 수용시설에 대한 연구를 한 황지성 박사는 “임씨가 실종된 1983년은 경찰의 단속이 센 상황”라고 설명했다. 임씨와 비슷한 시기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놀던 한 여성도 경찰 같은 사람이 와서 무작정 잡아가 <동부여자기술원>으로 넘어갔다는 것. “임경애 씨의 경우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충분히 잡혀갔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사회 정화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부랑인 단속은 전두환 정부의 주력 사업이었다.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대외적으로 깔끔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정화사업을 펼쳤다. 행색이 초라하거나 불량해 보이면 집과 가족이 있어도 부랑인으로 몰려 강제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1981년 10월에는 대통령의 지시로 구걸행위자 보호대책도 수립됐다. 주요 내용으로는 부랑인 단속을 늘리고 전국에 부랑인 시설을 확충하라는 것. 올림픽을 앞두고 ‘거리 청소’가 시작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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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호를 근거로 마구잡이식으로 부랑인 단속이 가능했다. 훈령에 부랑인의 정의를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건전한 사회 및 도시질서를 저해하는 모든 부랑인‘ 등의 개념이 모호했고 행정기관의 단속 권한까지 명시하면서 경찰들은 영장 없이도 부랑인을 잡아들이는 게 가능해졌다. 경찰은 형제복지원에 사람을 넘기면 가산점도 주어졌는데, 1986년 형제복지원의 전체 수용자 3,975명 중 3,117명이 경찰에 잡혀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1984년부터 9년간 성인 부랑인시설 수용 현황을 보면 행정기관의 의뢰로 수용된 사람은 전국적으로 6만 8천여 명. 그 절반 가까이가 내무부 훈령이 폐지되기 전인 80년대 중반에 수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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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는 집으로 돌아와 3년 동안 건강 상태가 악화돼 결국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임씨의 뜻 모를 얘기가 신경 쓰였다고 했다. 매일 알 수 없는 약을 주고 아침이 되면 사람이 죽어 있었다는 것. 하지만 영보자애원 관계자는 의무기록상 2005년경 임씨는 이미 고혈압 약밖에 먹지 않았으며 임씨가 퇴소할 때는 건강하다고 기록돼있다고 답했다. 그 외 이전 기록들은 문서 보존 연한이 지나 모두 폐기된 상황이었다. PD수첩은 시설 내 사망한 이들의 기록은 보관돼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개원 이후 올해까지 총 입소자 1,885명 중에 전원 및 퇴소자 819명을 뺀 1066명. 이중에 750명은 이미 사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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