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명이 숨지고 196명이 다친 '10·29 참사'가 일어난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국민들은 슬픔과 애도에 잠겨 있고,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재난 관리 주무부처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장관은 "주어진 현재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겠다"며 사실상 사퇴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취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발언에 대한 잘못은 일부 인정했습니다. 참사 다음날인 30일 이 장관은 “(핼러윈 당일)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다”라며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형 참사를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며 주무 장관으로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알고보니>는 지난 1일 해당 발언이 책임 회피성 발언이라는 비판을 넘어, 어떤 사실과 근거를 가지고 한 발언인지를 따져봤습니다. 마침내 이상민 장관은 어제(7일), 참사에 대해 공식 보고를 받은 바는 없었으며 "(해당 발언은) 개인적인 판단이었다"며 충분한 상황 판단을 통해 한 말이 아니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발언을 앞두고 이 장관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상황은 어떤 게 있었을까.
경찰 인력 예년 핼러윈 때보다 많았다?
이상민 장관이 발언한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장관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출입 기자단에게 발표했습니다. "일각에서 이태원 사고 당시 경찰 배치 부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로 시작하는 해명성 자료입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올해를 제외한 지난 5년간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투입된 경력은 적게는 37명, 많게는 90명 규모였습니다. 그에 반해 올해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지역경찰 32명과 수사 담당 경찰 50명, 교통경찰 26명을 포함해 총 137명입니다. 구체적으로 2017년 90명, 2018년 37명, 2019년 39명, 2020년 38명, 2021년 85명, 2022년 137명입니다. 즉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서 생긴 일이지, 경찰 투입이 적어서 벌어진 일은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용산경찰서' 소속만 놓고 보면 사실
하지만 이는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숫자만을 따진 것입니다. 정복 차림의 경찰 기동대는 뺀 숫자입니다. 경찰청의 11월 1일자 '이태원 사고 관련 조치 및 향후 대책'에 따르면 경찰 기동대는 지난 2020년엔 1개 중대, 2021년엔 3개 중대가 투입됐습니다. 기동대 중대는 통상 60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해당 병력을 포함시키면 2020년에는 98명(60명+38명), 2021년에는 265명(180명+85명)의 경찰 병력이 투입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숫자만을 놓고 보면 2021년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 기동대를 경찰력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서울경찰청은 "당시(2020년, 2021년)에는 코로나 방역 예방을 위한 목적으로 배치된 것"이라면서 핼러윈 행사의 안전관리 업무와 무관한 인력임을 시사했습니다. 즉 방역을 위한 인력은 핼러윈 보행자 통제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경찰 병력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되는 숫자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상민 장관의 발언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된 "경찰 투입이 예년 대비 부족하지 않았다"는 정부 측의 설명은 '질서유지와 보행자 통제'라는 임무를 가진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는 경우에만 사실입니다.
이전에 보행자 통제가 더 잘 됐다?
정복 차림 경찰관이 사복형사보다 현장 통솔에 효율적입니다. 대규모 인파에서 정복 차림이 눈에 잘 띄고, 경찰 신분임이 드러나 통제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빠져나온 생존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의 교통정리) 그것도 코스프레인 줄 알고 잘 안 비켜줬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정복 차림 경찰관조차 통제가 힘들 정도로 인파가 몰린 상황에서, 사복형사의 현장 통제력은 더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이태원에 배치된 '정복 차림'의 경찰관은 지역경찰과 교통경찰, 그리고 방역을 위해 투입됐다는 기동대를 포함해 총 228명이었습니다. 올해는 전체 137명 가운데 정복 차림 경찰은 58명이라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투입된 경찰력에 비해 정복 경찰의 비중이 낮은 것은 마약 수사를 위해 예년보다 훨씬 많은 '수사 경찰'이 50명 투입됐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규모 인파 속에서 경찰관임이 드러나는 정복 차림 경찰 기준으로 집계를 할 경우, 2017년에는 90명 안팎이었고, 2020년에는 84명, 2021년에는 228명이었습니다. 정복 경찰 숫자만으로 집계하면 2021년 > 2017년 > 2019년 > 2022년 순으로 최근 6년간 올해가 가장 적은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통제가 잘됐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 현장 사진과 영상이 대부분 2021년, 2017년 사례에 몰려 있는 건 이 정복 경찰의 숫자와 무관치 않습니다.
정복차림 경찰관 많을수록 통제에 유리
방역 관리를 위해 기동대 3개 중대를 투입한 지난해의 경우, 주요 길목과 인도와 차도의 경계에 경찰관이 질서 유지를 하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사진과 영상에 포착됐습니다. 지난해 핼러윈 때 이태원에서 촬영된 유튜브 영상을 보면 방역 활동뿐만 아니라, 기동대 경찰관 수명~십여 명이 순찰을 하면서 경광봉과 호루라기를 이용해 경각심을 높이고, 밀집된 인파를 해산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안전한 통행을 유도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정복 경찰이 투입된 2017년 핼러윈 축제도 경찰 통제가 비교적 잘된 사례로 거론되고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당시 이태원 도로에는 경찰들이 쳐놓은 질서유지선, '폴리스라인'이 있었습니다. 골목길 통제까지는 아니지만 인도와 차도 사이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보행자 교통사고를 방지했습니다. 거리에선 경찰관들이 제복을 입고 안내하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정복 차림의 경찰관 숫자가 일단 많아 이들의 활동이 눈에 띄고, 일부는 현장에서 질서유지 활동을 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폴리스라인도 없던 올해 상황과 대비해 "이전에는 통제가 잘 됐다"라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골목길 일방통행 등 적극적인 통제가 이뤄졌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뉴스1 등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핼러윈에서는 골목길 일방통행 통제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도로 폭이 좁은 취약지에 경찰 인력을 분산 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방역 임무 경찰은 보행자 통제 못 한다?
앞서 확인했듯이 지난해엔 방역에 투입된 경비대 인력들도 현장의 상황에 따라 재량을 발휘해 질서유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형광색 정복과 경광봉, 호루라기 등의 기본 장비를 활용했습니다. 이처럼 경찰은 위기 상황이나 무질서한 상황에서 재량권을 발휘해 질서유지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규정하는 권한이자 의무입니다. 해당 법 제5조에 따르면 경찰관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기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경고'를 할 수 있으며, 매우 긴급한 경우에는 '필요한 한도 내에서 억류하거나 피난'을 시킬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방역 단속하다 사고 시 바로 투입 가능"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관이 다른 임무를 하기 위해 현장에 갔다 하더라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다"며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 두고 있고 상당히 구체성도 띠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역 단속을 하러 갔더라도 사고가 생기면 바로 투입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위기 상황에 정복 차림의 현장 경찰관이 많을수록 도움이 됩니다. 질서유지뿐 아니라 사고 현장의 수습이나 구조활동으로 직무를 즉각 변경할 수 있습니다. 사고 직후 정복 차림의 이태원 파출소 경찰관 한 명이 사고 지역으로 밀려 들어오는 인파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영상이 화제가 됐는데,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이던 정복 경찰이 더 있었더라면 현장 통제와 구조가 보다 용이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위기 순간에 경찰이 얼마나 있었느냐'가 중요
경찰이 현장에 있었다고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지 아닌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경찰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치 못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과 소방인력이 더 투입이 됐더라도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상황 판단은 훨씬 근거가 빈약하고 가혹한 발언입니다. 경찰의 사명감도 훼손하는 말입니다.
앞서 살펴봤듯 2021년에 이태원에서 촬영된 영상에 따르면 기동대 인력이 보행자를 안내하면서 질서유지 업무에 참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위험한 순간에 경찰이 현장에 얼마나 있느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장 경찰이 예년보다 많았다' '방역 인력은 질서유지 업무와 관련이 없다'는 시각에서 내놓은 경찰청의 해명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이상민 장관의 발언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 〈알고보니〉는 MBC 뉴스의 팩트체크 코너입니다.
◎ 구성: 임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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