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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박소희

'이순신 최후 순간' 담긴 서애 유성룡의 달력 일본서 환수

'이순신 최후 순간' 담긴 서애 유성룡의 달력 일본서 환수
입력 2022-11-24 09:52 | 수정 2022-11-2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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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최후 순간' 담긴 서애 유성룡의 달력 일본서 환수
    '이순신 최후 순간' 담긴 서애 유성룡의 달력 일본서 환수

    임진왜란 당시 명재상이자 ‘징비록’의 저자로 잘 알려진 서애 류성룡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달력이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를 일본에서 구매해 지난 9월 되찾아왔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력’은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어 농사를 짓는 데 유용하게 쓰였고, 일상에서도 많이 활용됐습니다.

    책자 형태로 날짜 옆에 일정이나 개인적인 생각 등을 적기도 해 오늘날의 일기와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에 돌아온 달력에는 1600년인 경자년 한 해의 기록이 담겼습니다.

    대통력은 국내에 남아 있는 유물이 많지 않은데다, 특히 경자년 대통력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크기는 가로 20㎝, 세로 38㎝로, 먹물로 쓴 글씨를 뜻하는 묵서(墨書), 붉은색의 주서(朱書) 등으로 그날의 날씨, 약속, 병의 증상과 처방 등이 적혀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정보 등을 토대로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 등을 검토한 결과, 그의 가까이 놓고 자주 이용한 '수택본'(手澤本)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대통력은 임진왜란 당시 군사 전략가로도 활약한 류성룡이 남긴 기록이라는 점과 그 안에 담긴 내용으로 보아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됩니다.

    별도 표지 없이 종이를 사용해 임시로 책을 매어둔 표지에는 총 83자가 남아 있습니다.

    위아래가 일부 잘려 있는 이 글에는 ‘여해’(汝諧)라는 이름과 함께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여해는 이순신의 자(字) 즉 충무공을 부르는 또다른 이름입니다.

    이어지는 글에는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주변의 만류에도 전장에서 지휘하다 전사한 상황을 묘사한 기록입니다.

    이 유물은 일본인 소장자가 2년 전 경매를 통해 사들였고,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올해 5월 문화재청과 재단 측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확인됐습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향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전하게 보존 관리하면서 조선의 과학 문화재와 함께 류성룡 관련 원천 자료로서 연구·전시 등에 폭넓게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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