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침공 비판 글, 2시간 만에 삭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 사흘 뒤인 지난 지난달 26일의 일입니다. 중국 베이징 대학의 왕리신 교수, 난징 대학의 손강 교수, 홍콩대학의 서국기 교수 등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5명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제기했습니다. 대만 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의 카카오톡 같은 SNS, 위챗에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유엔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 보유국인데도 약한 형제 국가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아픔에 동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글은 2시간 만에 삭제됐습니다. 중국 누리꾼둘의 비난 댓글과 함께 말입니다. 중국 누리꾼들은 이들을 향해 "중국을 괴롭히는 5명의 쥐새끼"라고 표현했고, "국가의 입장을 위반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5명 저명 학자들의 우크라이나 사태 러시아 비판 성명 사진. 출처 : 아사히 신문>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각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습니다. 같은 날인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입장을 묻는 기자회견에서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배경과 경위가 있다"며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방 언론은 '침략'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미국도 유엔의 허가 없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침략을 했다며, 이에 대해선 침략이라고 표현했느냐며 거친 비난도 퍼부었습니다. 다음날인 25일, 중국은 러시아를 규탄하는 유엔UN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기권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외신 기자들과 설전이 벌어진 지난달 24일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 바로가기>

장쥔 / UN주재대사
"각국은 대화와 협상을 계속해 평등·상호 존중의 기초 위에서 상호 관심사를 해결하는 합리적 방안을 찾기를 호소합니다."
중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항해 왔습니다. 당장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맞아 열린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 중국에 10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매년 공급하는 장기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일인 지난달 23일에는 중국이 러시아 전역에서 밀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도 내렸습니다. 앞서 러시아 일부 지역에만 한정해 왔던 수입 방침을 대폭 완화한 것입니다. 정말 이 둘은 '깐부'일까요?
중국 우크라이나 교민에 "중국 국기 붙여라" 반중정서 고조되자 "중국인 신분 숨겨라"
한국 정부가 현지 교민에 대해 침공 전부터 대피명령을 내린 것과는 달리 중국은 침공 당일에도 우크라이나 주재 현지 교민들에 대해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요? 이동할 때 중국 국기를 차량 등에 붙이면 안전하다는 황당한 안전 수칙도 공지했습니다. 중국의 관영매체 CCTV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중국 국기를 구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현지 교민 인터뷰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 덕분에 중국 국기가 있으면 중국인에 대한 공격을 피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분석됩니다. 제가 중국 외교부 브리핑에서 왜 그런 수칙을 공지했는지 물었는데, 외교부는 "현지 교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습니다.

CCTV 25일 영상 인터뷰
"이동할 때는 중국 국기를 차량에 부착하는 게 안전장치라고 (대사관에서) 공지했지요?"
[중국 현지 교민]
"맞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지금 키예프에서 중국 국기는 품절됐습니다."
< CCTV 25일 영상 인터뷰 바로가기>

'중국 SNS 웨이보 상에 중국 국기 붙은 차량 사진

자료사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이같은 중국의 태도가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보일지는 의문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중국을 보는 시선이 고울 수 없을 겁니다. 중국으로서는 전쟁이 지속되면 불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중국이 러시아의 편을 들면 들수록 대만과의 관계에 있어 모순이 생긴다는 지적인데요. 우크라이나는 주권 국가라고 주장했던 중국이 러시아의 침략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다른 나라의 개입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으로서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와 중국, 진정한 깐부로 거듭나는 일은 쉽지 않아보입니다.

자료사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거꾸로 러시아로서는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유럽에 영향력을 확장하는 게 평소 마뜩지 않았는데 이번 침공으로 중국의 기세를 약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난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중국이 러시아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기보다 기권을 택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중국의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는 지난달 28일 기사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에서 중립적인 입장에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영국과 EU 등 고위급 전화통화에서 다시 한번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되는 모든 외교적 노력을 지지한다"고 설명했다는 겁니다.

자료사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현재 중국 베이징에서는 당국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각종 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 관련 속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국으로부턴 주목할만한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BBC 등 서방 언론이 중국 외교부 브리핑에서 당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고 있지만, 그때마다 같은 답변이 되돌아옵니다. "대화의 기회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협상에 돌입했으니 실제로 중국의 기대처럼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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