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진의 세계는] 우크라이나의 비극, 중국은 공범인가?

[사진 제공: 연합뉴스] 장준 주유엔 중국대사

<'가해자 러시아' 싸고도는 중국>

현지시각으로 4월 5일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희생자들의 모습을 담은 끔찍한 영상이 상영됐습니다.

참혹한 장면에 회의장이 술렁거릴 정도였지만 중국은 러시아를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재차 드러냈죠.

장준 주유엔 중국 대사는 “부차에서의 민간인 희생에 대한 영상과 기사는 아주 끔찍하다”면서도 “사건의 전후 상황과 정확한 원인부터 검증해야 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발언의 형식과 내용이 지금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일 겁니다.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그동안 러시아의 편에서 말해왔습니다.

러시아의 미사일이 키이우와 하르키우, 마리우폴의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순간에도 중국은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서의 긴장을 고조시켰다고 비난했습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려 한다는 러시아의 일방적인 주장을 중국이 되풀이하기도 했으니까요.

<'러시아와 공범'으로 인식되는 중국>

코로나 19를 둘러싼 논란이라든가, '전랑외교'로 표현될 정도로 힘을 내세운 강압적 외교정책으로 국제사회의 평판이 떨어진 중국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일정한 역할은 '이미지 세탁'을 위한 좋은 기회였는데, 이 기회를 흘려버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히려 지금 중국의 이미지는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러시아와 '사실상 공범'이라는 쪽으로 굳어지는 듯합니다.

국제 관계에서는 '이미지'도 상당히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고 수단인데도, 이를 내팽개치면서까지 중국이 러시아 편을 드는 건 자국의 이익을 계산하는 방법 때문일 겁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중국에 주는 것>

중국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지역에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느라 미국이 힘을 쓰는 틈을 타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려는 계산이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의 힘과 관심을 다시 유럽으로 쏠리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급부상하는 중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려고 했던 바이든의 계획이 틀어지게 된 거죠.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국 러시아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킬 겁니다.

전쟁이 길어져서 러시아가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치게 되면 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지금보다도 더욱 커지게 될 거고, 결국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중국에 이익이 될 거라는 셈법이죠. 중국은 개전 이후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다는 보도를 부인했지만 지금 러시아가 기댈 곳이 중국뿐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진 제공: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복잡한 계산>

하지만 중국으로서도 계산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동맹들이 재무장하게 되면 미국은 결국엔 중국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을 잡았던 유럽을 2차 대전 이후처럼 미국으로 급격하게 쏠리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일본이나 호주 같은 미국의 동맹들은 러시아의 침공을 빌미로 군비 증강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에게는 결코 탐탁지 않은 전쟁의 부작용입니다.

<그럼에도 복잡한 중러 관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지금 동맹을 강화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 두 나라의 관계는 이해관계로 얽힌 '전략적 동거'라고 평가됩니다.

서로의 이익이 같을 뿐이지 둘 사이에 어떤 응집력이나 역사적인 끈끈한 결속력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러시아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근에서야 급하게 진행된 중국과의 유착에 대한 내심의 우려가 있습니다.

중국이 지금은 러시아를 가까이하고 있지만 중국에게는 힘빠진 러시아와의 관계보다는 미국이나 유럽과의 관계가 결국 더 중요하다는 현실 때문이죠. 러시아는 중국이 미국, 유럽과의 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러시아와의 관계를 선택할 거라고는 보고 있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등 러시아의 효용이 낮아지면 그때엔 중국의 태도도 변할 거라는 의구심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금 러시아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중국의 머릿속은 복잡할 겁니다.

전쟁이 길어져 러시아가 지금보다도 더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우크라이나 영토를 파괴할수록 중국도 전쟁에 방관자적 책임이 있다는 국제 여론은 커질 겁니다.

'러시아와 사실상 공범'으로 지목되며 '비호감과 고립'의 길로 빠질 수도 있는 지금의 상황을 중국이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지켜볼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