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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유기농 국가'‥스리랑카의 눈물

실패한 '유기농 국가'‥스리랑카의 눈물
입력 2022-04-13 10:05 | 수정 2022-04-1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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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한 '유기농 국가'‥스리랑카의 눈물

    [사진 제공: 연합뉴스]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주민.

    '실론 티'로 유명한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

    불교와 힌두,이슬람 기독교 등 다양한 문화가 어우려진 천혜의 아름다운 섬이 현지 시각으로 12일 일시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습니다.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스리랑카는 마취약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고 종이가 없어서 시험을 못보며 기름이 없어 전기가 끊기는 상황.

    분노한 시민들이 "정권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거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일뿐" 디폴트보다 더 무서운 기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 세계적인 원자재 농산물 폭등이 유독 스리랑카에게 더 어렵게 다가온 배경 중 하나엔 코로나 사태 와중에 강행된 '세계최초 100% 유기농 국가 건설'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의 "정권 퇴진" ..비상 사태 선포>

    스리랑카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대통령 집무실 입구를 점거하고 하야를 요구했다고 외신들이 전하고 있는데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 1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통령과 총리를 제외한 장관들이 물러나는 '내각 총사퇴'로 수습에 나섰습니다.

    전국적으로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시위대와 기자들을 체포하는 강경책도 나왔는데요. 하지만 여론이 나빠지자 5일만에 비상사태를 해제했다고 합니다.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 제공되기 전까지 510억 달러의 대외부채 상환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매년 2백만명 넘는 해외 여행객이 찾는 스리랑카는 2018년 관광산업 규모가 43억 달러에 달하는 관광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이후 여행이 중단되자 달러를 벌어들이지 못하게 됐죠.

    석유 가스 등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데 남은 외환보유고가 20억 달러도 안됩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대외 채무만 40억달러 수준.달러가 없다 보니 석유 대금으로 이란에 실론 티를 현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
    실패한 '유기농 국가'‥스리랑카의 눈물

    [사진 제공: 연합뉴스] 연료를 구하기 위해 주유소에 줄을 선 스리랑카 사람들

    <현실화된 생활 위기..단전 의약품 부족 물가 폭등>

    시민들이 분노하는건 연료와 식품 의약품 등 생활필수품이 크게 부족하고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인데요.

    약이 없어 치료를 못하게 되자 의사들마저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의사들은 '102개의 필수의약품 부족으로 인한 의료 위기'를 선언했습니다.

    연료 부족으로 화력발전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 전기가 끊기는 경우가 자주 있고 교통 신호등마저 꺼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8.7%에 달했고, 식품 물가는 30.2%나 치솟았습니다.

    스리랑카 루피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화폐 가치 하락으로 수입 물가는 더욱 오르고 있습니다.

    실패한 '유기농 국가'‥스리랑카의 눈물

    [사진 제공: 연합뉴스]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오른쪽)과 그의 형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

    <형제가 교대로 대통령과 총리 장관.. 정부가 가족기업?>

    글로벌 위기에 시민들이 고타비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건 그의 형제들이 총리와 장관까지 독식하며 정부 운영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현직 대통령의 형은 전직 대통령이자 총리,동생은 재무부 장관, 제일 큰 형은 관개부 장관, 젊은 조카는 청년체육부 장관입니다.

    2005년부터 10년간 형인 마힌다가 대통령을 할때는 현 대통령은 국방부 차관을 했습니다.

    행정부가 가족 기업인 셈이니 경제위기의 책임을 그들에게 묻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대통령과 총리 형제는 사퇴를 거부하고 시위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패한 '유기농 국가'‥스리랑카의 눈물

    [사진 제공: 연합뉴스] 논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농부

    <농약 남용 피해 심각..세계 최초 100% 유기농 국가 선언>

    작년 4월 대통령과 그 형제들은 스리랑카를 '유기농 100%' 국가로 만들겠다고 전격 선언했습니다.

    5월에는 화학비료와 농약의 수입을 아예 금지해 버렸습니다.

    나라 전체를 유기농 지역으로 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겠다는 '유기농 혁명'에 나선 겁니다.

    스리랑카에선 무절제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으로 연간 2만명이 농약에 중독돼 2천여명이 숨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심각해 졌고 비료를 더 써도 작황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수입하는 달러를 아끼고, 이로 인해 생산량이 다소 줄어도 '100% 유기농'으로 국제 농산물 시장에 고급품으로 판매한다면, 특히 '실론티'를 훨씬 비싸게 수출하면 외화획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꽤 그럴싸한 전략이었습니다.

    2020년 스리랑카의 비료수입액이 2억5900만 달러였으니 스리랑카의 외환 보유고를 감안하면 큰 액수였죠.

    대통령의 원래 공약대로 10년에 걸쳐 농민들과 협의하며 단계적으로 실시됐다면 21세기 농업혁명의 모범사례가 됐을 겁니다.

    <준비없는 '유기농 국가' 선언..농사 포기 속출 수확량 반토막>>

    하지만 속도와 준비가 문제였습니다.

    갑자기 발표된 정책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농민들은 준비할 틈이 없었습니다.

    수십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주던 관광산업이 중단되어 마음이 급했을 수도 있습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대체할 유기비료와 천연농약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채 전격적으로 단행한 '100% 유기농'선언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농약과 비료에 절어있던 농토는 농약 살포가 중단되자 작물의 질병이 번져갔습니다.

    정부가 판매한 유기 비료를 뿌린 논에선 벼가 노랗게 병들어 갔습니다.

    비료를 못 구한 농민들이 농사를 중단해 버리는 곳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암시장의 화학비료는 품귀현상을 빚었습니다. 차와 옥수수 수확량이 절반으로 감소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국가기관에서 나왔습니다.

    화학비료 사용 금지에 대한 농민들의 항의가 계속되고 식료품 가격이 한달 만에 22% 올랐습니다.

    결국 경제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작년 11월 농약과 화학비료 수입금지 조치를 해제하면서 농약 사용이 허용됐습니다.

    '유기농 국가'실험이 반년여 만에 실패해 국내 농산물 생산량이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와 농산물의 국제 가격이 폭등했고 대처할 시간이 없었던 스리랑카는 직격탄을 맞게 됐습니다.

    <디폴트 이후가 더 걱정.."위기는 이제 시작,기아 닥칠 것">

    마힌다 야파 아베와르다나 스리랑카 국회의장이 지난 6일 콜롬보 의회에서 식량위기를 공개 경고했습니다.

    국회의장은 “최악의 위기라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이건 시작일뿐이다. 국민들이 기아 상태로 내몰릴 수 있다"는 강도높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수입은 허용됐지만 구입할 달러가 없고, 엄청나게 올라 버린 국제 물류비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증산에 나서도 수확까지는 6개월이 걸립니다. "쌀 수확량이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2천2백만 인구 중 27%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극심한 식량난을 앞두고 있습니다.

    스리랑카는 '인도양의 눈물'이란 별명이 있습니다. 인도의 남쪽 바다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1948년 독립이후 26년간 내전에 시달렸던 스리랑카,긴 내전으로 농업국가이지만 2011년에 와서야 식량자급에 성공했다고 합니다.인도양의 눈물은 언제쯤 마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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