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작지 않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러시아군 진영에서 이탈리아제 장갑차량이 발견된 겁니다. 이 소식은 이탈리아 방송의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가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도운 셈이 됐으니까요. 그런데 이 논란이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유럽 탐사보도 단체의 노력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세계 각국 군 당국은 잠재적 위협 국가나 경쟁하는 국가의 무기를 손에 넣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시험용으로 소량의 무기를 구입해서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작전계획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지피지기인 거죠. 하지만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유럽제 무기는 시험용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유럽 국가들, 러시아에 수천억 원 상당 무기 수출>
유럽연합(EU) 10개 회원국들은 2015년~2020년 사이에 러시아에 3억4천600만 유로(4천645억 원) 상당의 군사 장비를 수출했습니다. 유럽의 탐사보도 전문 단체인 ‘유럽 탐사보도’(Investigate Europe)가 조사해서 지난 1일 발표한 내용입니다. 유럽의 군사 강국 프랑스, 경제 대국 독일이 가장 많이 러시아에 수출했습니다. 프랑스는 폭발물, 전차용 열화상 카메라, 전투기용 적외선 탐지기 등 1억5천200만 유로(2천억 원)어치를 팔았습니다. 2위 독일은 소총과 특수보호차량 등 1억2천100만 유로(1천600억 원) 상당을 수출했습니다. 이탈리아는 2천247만 유로(301억 원)를 수출했고,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체코도 대 러시아 무기 수출국 명단에 올랐습니다.
‘유럽 탐사보도’(IE)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2013~2020년 사이에 러시아에 총 6억700만 유로(8천100억 원) 상당의 군사 장비를 수출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도 무기를 수출했는데, 금액은 러시아의 절반 수준인 3억2천만 유로(4천200억 원)어치입니다.
<러시아에 무기 수출 금지했는데..어떻게?>
유럽연합은 2014년 7월부터 러시아에 무기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름(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것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한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했을까요? 금수 조치 이전에 체결한 계약에 따라서 수출하는 것은 허용하는 예외 조항의 허점을 이용한 겁니다.
유럽연합은 2014년 대 러시아 무기 금수 조치 이전에도 공통의 무기 수출 정책(Common Position)을 시행해 왔습니다. 2008년부터 도입된 이 정책은 무기를 수출할 때 국제 의무, 인권, 역내 평화 유지 등 8가지 기준을 준수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준들은 서류상 존재할 뿐 실제론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러시아, 침공 전 군사비용 증액..세계 각국 군비 경쟁>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 25일, 세계 군사비 지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러시아는 지난해 659억 달러(82조4천억 원)를 쏟아 부었습니다. 러시아 GDP의 4.1%, 전년 대비 3% 가까이 늘어난 금액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군사비용을 대폭 증액한 셈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지난해 국방비 지출은 59억 달러(7조3천억 원)로, 러시아의 10분의 1이 채 안 됩니다.
미국의 지난해 국방비는 8천10억 달러(1천1조 원)로 압도적 1위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방비를 합쳐도 미국의 절반이 안 됩니다. 2위 중국은 2천930억 달러(366조 원)인데, 전년 대비 4.7%나 증가했습니다. SIPRI는 이번 보고서 제목을 ‘세계 군사비 지출 2조 달러 첫 돌파’로 뽑았습니다.
증가 추세인 세계 군사비는 올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산 무기 구매에 나서고 있습니다. 독일이 미국제 스텔스 전투기 F-35를 최대 35기 구매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군비 증강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난 25일은 ‘세계 군축 행동의 날’이었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 시민사회단체들은 군비 증강 중단과 평화의 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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