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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브라더 정권'의 몰락

스리랑카 '브라더 정권'의 몰락
입력 2022-07-21 10:34 | 수정 2022-07-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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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카 '브라더 정권'의 몰락

    스리랑카 총리 집무실 점거한 반정부 시위대 [사진 제공: 연합뉴스]

    스리랑카 국회가 어제 새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현직 총리이자 대통령 권한 대행인 라닐 위크레메싱게(73)는 의원 투표에서 2위 야권 후보를 큰 표 차로 제쳤습니다. 이변은 없었습니다. 지난 13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궁지에 몰린 고타바야 라자팍사 당시 대통령이 해외로 도피하면서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지명하고, 여당이 총리에 대한 지지를 표명할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위크레메싱게 신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으로, 총리를 6번 역임한 정계 원로입니다. 그는 두 달여 전 유혈 시위와 국가부도의 혼란 속에 총리로 임명됐습니다.
    스리랑카 '브라더 정권'의 몰락

    주유소 앞에 길게 줄 선 스리랑카 릭샤 운전사들 [사진 제공: 연합뉴스]

    <라자팍사 형제들의 실각>

    스리랑카의 유력 가문인 라자팍사 형제들은 두 차례 집권했습니다. 1차는 2005년부터 2015년까지(3선에 실패), 2차는 2019년부터 지난 13일 몰디브를 거쳐 싱가포르로 도피할 때까지. 1차 집권기에는 마힌다 라자팍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형제들을 국회와 정부 요직에 앉혔고, 2차 집권기에는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대통령으로서 형제들을 임명해 고위직을 장악했습니다. 그동안 이들이 차지한 요직은 이렇습니다.

    첫째 차말 : 국회의장
    셋째 마힌다 : 대통령·총리
    다섯째 고타바야 : 대통령·국방차관(국방장관은 대통령이 겸직)
    여섯째 바실 : 경제개발부장관·재무장관

    <물가 50% 폭등 인플레‥국가부도>

    스리랑카는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19로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주요 수입원이 관광산업이었으니까요. 스리랑카 관광업은 2018년에 44억 달러(약 5조7천억 원)에서 2020년에 6억8천만 달러(약 9천억 원)를 기록하며 6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만큼 외화 수입이 감소했고, 외환위기와 최악의 경제난이 현실화했습니다. 달러가 없어서 주요 필수품마저 수입이 끊겼습니다. 최근 스리랑카에서 귀국한 한인 사업가는 기자에게 “대형 마트 진열장이 텅텅 비어있는 때가 많다. 닭고기나 계란 같은 식료품조차 구하기 어렵다. 약국에 가도 약이 없다.” “석유가 없어 발전을 못하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정전이 된다. 양계장에선 닭들이 수없이 폐사한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습니다.

    국가 경제가 무너지면서 자국 통화 가치 폭락-수입품 가격 급등-인플레 악화의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휘발유·가스·우유·식용유 등 생필품을 수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의료기기가 부족해지고 약품은 바닥났습니다. 스리랑카의 지난달(6월) 기준 소비자물가는 1년 만에 50% 이상 폭등했습니다. 스리랑카는 결국 지난 5월 18일 외채 이자를 갚지 못하고 국가부도를 맞았습니다.

    <경제 위기에서 정치 위기로‥라자팍사의 무능·부패>

    올 초부터 시작된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는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지난 5월 총리인 형 마힌다를 사임시키고 위크레메싱게를 새 총리로 임명하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미봉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9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대는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을 점거했고 총리 사저를 불태웠습니다. 지난 13일엔 고타바야가 해외로 도피하며 총리를 권한 대행으로 지명하자 총리 집무실을 점거하고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이때 전국에 국가 비상사태를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라자팍사 가문은 족벌정치로 대통령,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 권력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경제 위기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부패하기도 했습니다. 고타바야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바실 전 재무장관이 연루된 의혹이 대표적입니다. 바실은 정부 관련 각종 계약에서 10%의 커미션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별명이 ‘미스터 10%’라고 합니다.
    스리랑카 '브라더 정권'의 몰락

    시위대 철수 뒤 텅 빈 대통령궁 [사진 제공: 연합뉴스]

    <새 대통령의 과제, 산 너머 산>

    새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벌써부터 스리랑카 정국이 다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반정부 시위대가 대선 직전까지 “총리도 물러나라”고 요구했으니까요. 새 대통령도 전임 라자팍사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여기는 거죠.

    신임 대통령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데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미국, 일본, 호주에서 수억 달러를 지원받았지만 급한 불을 끄기엔 역부족입니다. 이웃나라 인도, 이미 상당한 빚을 지고 있는 중국에서 추가로 긴급 자금을 끌어오려 노력 중입니다. IMF에는 구제 금융을, 러시아에는 원유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아직 답이 없습니다.

    스리랑카 국민 상당수는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스리랑카 인구의 14%인 300만 명이 긴급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선 만약 최악의 경제난과 정국 혼란이 계속된다면, 강력한 대안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라자팍사 가문이 부활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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