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빌딩 외벽에 여성 얼굴을 그린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고, 도심 대로를 가득 메운 인파가 손에 횃불을 하나씩 들고 행진합니다.
70년 전인 1952년 세상을 떠난, 전 영부인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을 그리워하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대통령 남편보다 사랑받은 영부인 '에비타'>현지시간 26일, 아르헨티나에선 추모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작은 에바라는 뜻의 애칭인 '에비타'로 알려진 에바 페론 전 영부인이 잠든 레콜레타 공원묘지엔 꽃을 든 추모객들이 줄지어 찾아왔고 정부 청사 건물 외벽엔 에비타의 얼굴이 등장했습니다.
에바 페론은 1919년, 아르헨티나의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에바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상경해 삼류 배우부터 시작해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 등을 하며 이름을 알려나갔습니다.
그러다 1944년, 한 모금행사에서 노동부 장관이던 후안 도밍고 페론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했고 에바는 1946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남편의 유세에 동행해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대선 승리에 이바지하며 27세의 나이로 퍼스트레이디 자리에 올랐습니다.
후안은 집권 후 노동자들의 임금 대폭 인상 등 퍼주기식 복지 정책을 쏟아냈습니다. 에바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학교와 병원, 보육원을 지으며 빈민층을 위한 복지 사업을 벌였습니다. 부부는 포퓰리즘 정책인 '페론주의'를 내세우며 인기를 누렸지만 이후 아르헨티나 국가 재정은 악화됐고 경제는 침체에 빠져들었습니다.
<대통령 남편보다 사랑받은 영부인…'에비타' 에바 페론 사망>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에바 페론은 마돈나 주연의 영화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그리고 이들 작품에 쓰였던 노래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빈자의 대변자'로 불리며 남편인 대통령보다도 높은 인기를 누렸던 에바 페론. 1952년 7월 26일, 33세에 너무 일찍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점도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올해로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된 에바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립니다. '빈민의 성녀'로 추앙받는 에바는 한때 자신과 남편의 인기를 위해 나랏돈으로 자선 활동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파시스트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전국적인 사랑을 받은 국민적 영웅이라는 평가와 함께 아르헨티나 몰락의 단초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비타가 살아있을 때 태어나지도 않은 젊은 사람들까지 에비타의 사진을 들고 눈물짓는 모습은 그의 유산이 여전히 많은 아르헨티나인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계
박진주
[World Now]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 사망 70주기 추모열기
[World Now]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 사망 70주기 추모열기
입력 2022-07-28 13:53 |
수정 2022-07-2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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