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나라시에서 선거 지원 연설 중이던 아베 전 총리가 총탄을 맞고 숨졌습니다.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은 41세의 ‘야마가미 데쓰야’였습니다.
야마가미의 어머니는 1억 엔, 우리 돈으로 약 1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통일교에 헌납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상속받은 수 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통일교에 헌납했고, 남편의 사망보험금까지 통일교에 갖다 바쳤습니다. 결국 야마가미가 대학생 시절인 2002년에 그의 어머니는 월세 70만원을 내지 못해 파산하게 됐습니다.
야마가미는 통일교 때문에 가정이 파괴됐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처음엔 통일교의 고위 관계자를 암살하기로 계획했지만 기회를 노리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통일교가 주최한 국제행사인 ‘Think Tank 2022'에 아베 전 총리가 축하 영상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야마가미는 이때 범행을 결심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엔, 야마가미의 말을 '허황된 망상'이라고 치부해 버렸습니다. 도대체 아베가 통일교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 영감상법靈感商法에 분노한 일본
그런데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지 사흘째인 7월 12일, 일본의 <전국영감상법대책 변호사연락회>라는 단체가 기자회견을 자청했습니다. 그동안 통일교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신자들의 사연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통일교는 이른바 ‘영감상법靈感商法’이라는 상술을 썼다고 합니다. 영계의 지옥에 있는 조상들의 고통과 악한 기운을 없애고 후손들이 잘 살려면 통일교의 영험한 책을 사고 헌금을 내야 한다는 게 영감상법의 핵심입니다.통일교의 경전 1권이 무려 3천만 엔에 강매됐다고 합니다. 신자들 중엔 4~5권을 강매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3천만 엔이면 과거 환율로는 3억 원이 훌쩍 넘는 돈입니다. 한 사람이 4~5권을 샀다면 12억 원에서 15억 원을 갖다 바친 셈입니다. 저격범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낸 헌금 액수와 얼추 비슷합니다.
통일교는 일본 신자들에게 가혹하게 헌금을 거뒀다고 합니다. 도자기나 염주 등 통일교 기업이 만든 제품을 고액에 구매하는 건 다반사였고, 심한 경우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게 해서 그 돈을 통일교가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히는 헌금 방식에 일본 언론들이 앞다퉈 통일교 관련 보도를 쏟아냈고, 일본 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아주 극히 일부지만, 온라인에선 야마가미가 왜 저런 극단적인 범행을 했는지 이해한다는 글도 등장했습니다.
■ 일본 뒤흔드는 ‘통일교 게이트’
그런데 언론들이 통일교에 대해 파고들수록 일본 정치권과의 수상한 관계가 드러났습니다.
처음엔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비서)이 통일교와 연관이 있었다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일교 연루 의혹을 받는 정치인들이 늘면서 지금은 약 120명의 정치인들이 통일교와 관계를 맺어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입니다.
(원래 기시 노부오 방위상의 본명은 아베 노부오였습니다. 아들이 없는 외가에 입양되면서 외가의 성인 ‘기시’를 따른 겁니다.)기시 방위상은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통일교 관계자들을 몇 명 알고 있다. 친분도 있고 선거를 할 때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친형인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 때문에 암살됐는데, 동생인 기시 방위상이 ‘통일교의 도움을 받아 선거를 치렀다’고 밝히자 일본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무시했던 ‘광기의 저격범’ 야마가미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일본인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일본의 매체 닛칸겐다이는 통일교와 연루된 정치인들을 보도하면서 집권 자민당이 98명, 입헌 민주당이 6명, 일본유신회가 5명, 국민민주당이 2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이른바 '아베파'로 분류되는 현역 의원들입니다.
5명이라던 일본유신회도, 자체조사 결과 13명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하루하루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급기야 자민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대표가 “자민당의 통일교 연루 의혹을 제대로 설명하라”며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공명당에까지 불똥이 튈까 다급해진 겁니다.
■ 아베의 외할아버지와 통일교 문선명 총재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가 친구사이였다’
‘아베가 총리였던 2015년 통일교의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변경하도록 승인해줬다’
연일 쏟아지는 아베 전 총리와 통일교의 수상한 관계는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반대하는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8월 1일 교도통신의 여론조사 결과,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3%, 찬성한다는 의견이 45%로 나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전 한 보도에서, 1984년 ‘탈세’ 혐의로 미국에서 구속된 통일교 문선명 총재를 석방해 달라며 기시 노부스케가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가 공개됐습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아베 전 총리의 외할아버지입니다. 총리도 지냈습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편지에서, 문선명 총재를 ‘문 존사尊師’로 표현했고, ‘희귀하고 귀중한 존재’라고 설명했습니다.
외할아버지 대부터 통일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 온 탓에,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과 2002년, 일본 법원은 통일교의 무지막지한 ‘영감상법’ 헌금 방식과 합동결혼식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에 제재를 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통일교의 헌금 모금과 포교 활동에 어려움이 생기자, 통일교는 원래 이름을 버리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간판을 바꾸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고 합니다.
통일교의 명칭은 일본 문부과학성의 승인을 받아 2015년에 바뀌었는데 당시 총리가 아베 신조였습니다.
암살범 야가마기의 말이 허황된 망상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 통일교 향한 분노, ‘혐한’으로 번지나
그런데 일본의 분위기가 좀 이상합니다.
통일교가 원래 한국에서 생겨난 종교 아니냐며, 한 두 마디 엮더니 본격적으로 통일교와 한국의 관계가 조명되고 있습니다.특히 TBS는 통일교가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해마다 6백억엔, 우리 돈 6천억원의 헌금을 일본인 신자들로부터 거둬들였는데, 이 가운데 2천억원에서 3천억원이 매년 한국으로 송금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통일교가 일본인 신자들에게 가혹하게 헌금을 거둬, 그 돈을 꼬박꼬박 한국으로 보냈다고 하니 일본 국민들 입장에선 기분 좋을 리가 없습니다.
좀 황당한 건, 통일교가 주장하는 ‘속죄 헌금’입니다.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아 악행을 저질렀으니, 그 원죄를 속죄해야 한다며 일본의 통일교 신자들에게 헌금을 강요했다는 겁니다.
일본 정부나 전범기업이 과거 식민지배 시절의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일본인 신자들이 통일교에 속죄 헌금을 바쳐야한다는 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는 일본 우익 인사들은 통일교 논란을 지렛대 삼아 혐한 정서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SNS에도 통일교의 속죄 헌금 관련 기사가 링크되며 퍼지고 있습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 가뜩이나 예민해진 일본의 보수세력들이 분노할 만한 기사들입니다.
한일관계 개선을 희망해 온 우리 정부는 갑자기 튀어나온 ‘통일교 게이트’의 불똥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제 한일의원연맹 회원인 우리 여야 국회의원 11명이 일본으로 입국했는데, 자민당 분위기가 이 지경이라 면담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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