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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국장' 잡아놨더니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베 국장' 잡아놨더니 엘리자베스 여왕이..?
입력 2022-09-13 08:47 | 수정 2022-09-1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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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국장' 잡아놨더니 엘리자베스 여왕이..?
    ■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장國葬'

    오는 19일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故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장이 치러집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많은 '기록'을 보유한 인물이었습니다. 25세에 즉위해 70년 간 여왕으로 활동한 그녀는 영국 역사상 최장 재위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 현재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모두 45개국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얼굴을 화폐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가장 많은 나라에서 '왕'으로 모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비롯해 영연방 국가는 53개국인데, 인구로는 1억 4천만 명에 달합니다.

    이렇게 영향력이 큰 여왕이 서거했으니 전 세계 외교가도 분주해 졌습니다.

    당장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망설임 없이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밝혔고,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 그리고 우리나라의 윤석열 대통령도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 섬나라-입헌군주제, '공통점' 많은 일본의 관심도 집중

    일본은 영국과 자신들이 비슷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꽤 많은 점이 비슷합니다.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어, 실제로는 다수당 총리가 통치를 하지만 왕 또는 여왕이 국가의 상징적인 대표로 군림하고 있고, 왕실의 행사나 왕족들의 신변 관련 뉴스에 국민들이 큰 관심을 쏟기도 합니다.

    섬나라인 것도 비슷하고, 심지어 자동차 운전석도 오른쪽에 있습니다. (제국주의 시절 주변 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것도 비슷합니다.)

    일본 언론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한 9월 8일부터 많은 시간을 할애해 특집 뉴스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소식, 국장 소식이 늘어날수록, 일본 정부가 속으로 '끙끙' 앓고 있습니다.
    '아베 국장' 잡아놨더니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베 전 총리 장례식…총리관저에 들른 운구차 [자료사진: 연합뉴스 제공]

    ■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비용 162억 원

    하필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한 9월 8일, 그날 일본 국회에선 아베 전 총리의 국장(국가장례식) 비용을 놓고 기시다 총리와 야당 의원들 간의 뜨거운 설전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폐회중 심사'

    아직 일본 국회가 열리는 기간이 아니었음에도, 워낙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라 기시다 총리는 '폐회중 심사'를 자청했습니다. 비록 폐회중이지만, 자신이 직접 국회에 출석해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당위성에 대해 국민들을 상대로 설명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7월에 암살됐지만, 일본 정계의 관례에 따라 9월 27일에 국장을 치르기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국장 비용이 우리 돈으로 162억 원이나 든다고 합니다.(기시다 내각이 처음엔 숨기려다 야당의원들의 공세 탓에 공개하게 됐습니다) 평범한 일본 국민들의 장례식 비용과 비교해 1,000배에 달하는 비용이 국가 예산으로 집행된다는 데 대해, 60%가 넘는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결정'한 기시다 총리는 국장 필요성의 근거로 '조문 외교'를 내세웠습니다. 일본 유력 정치인의 장례식에 각국 정부가 고위급 조문단을 파견할 것이고, 이를 계기로 도쿄에서 '조문 외교의 큰 장'이 열린다는 겁니다.

    전 세계가 추앙하는 일본 정치 지도자의 장례식이니 국격을 위해서라도 꼭 국장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일본의 외교적 영향력도 확대되고, 기시다 총리도 개인적으로 자신의 정치외교적 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생겼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아베 국장' 잡아놨더니 엘리자베스 여왕이..?

    성자일스 대성당을 향하는 장례행렬 [자료사진: 연합뉴스 제공]

    ■ 김 샌 일본 정부의 '조문외교론'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장은 9월 19일.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은 9월 27일.

    기시다 내각은 당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국민 반대를 무릅쓰고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강행하는 가장 큰 명분이 조문외교였는데, 딱 여드레 앞서 각국 정상들이 런던의 여왕 장례식에 모이게 됐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런 런던의 장례식은 기시다 내각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주 중의원에 출석해 미국 해리스 부통령, 캐나다 트뤼도 총리, 인도의 모디 총리, 호주 앤서니 총리, 싱가폴 리센룽 총리, 베트남 응우옌 주석 등이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참석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가 정상급 조문객은 5명이 전부입니다.

    관심을 끌던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도 오지 않기로 했고, 메르켈 전 독일 총리도 불참의사를 밝혔습니다.

    반면, 여왕의 장례식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등 주요 국가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입니다. (심지어 나루히토 일왕도 참석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한 일본 언론은 "기시다 총리가 이름을 거론한 정상들이 전원 방일한다고 해도 그들은 이미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장에서 조문 외교를 전개한 후일 것"이라고 꼬집으며,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더욱 삐걱거릴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 '아베 국장'은 '짝퉁 국장'?

    기시다 총리는 '아베 국장'의 당위성에 대한 또 다른 근거로 재위기간이 8년이 넘는 최장수 일본 총리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단명 총리가 많았던 일본에선 아베 전 총리의 재위기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70년을 재위했습니다.

    일본의 SNS에선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이야 말로 진짜 국장'이라며 '진짜 국장'(本物の國葬)이 '해시태그'되고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은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짝퉁'(ニセモノ) 국장이라는 겁니다.

    저렇게 심한 표현은 아니더라도, 각국 조문단의 위상으로 볼 때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장과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비교될 것이란 지적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반대해 온 시민단체들은 '조문외교'라는 명분도 약해진 상황이니 다시 '자민당-내각 합동 장례'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만약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국장이 취소될 경우, 기시다 내각은 큰 타격을 입습니다. 국장을 강행하더라도 국민 기대와 달리 '초라한 국장'으로 전락한다면, 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통일교 스캔들'로 기반이 약해진 기시다 내각에, '국장 실책'은 어쩌면 결정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는 오는 19일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장에 참석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남의 나라 사정이지만, 기시다 총리가 지금 거기 갈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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