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궁지에 몰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꾸 핵무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미국 백악관도 최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반응을 냈습니다. 유럽에선 핵 공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푸틴의 핵무기 발언은 최근에 처음 나온 건 아닙니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할 때, 개전 선언에서 이렇게 대놓고 말했습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핵보유국이다. 어떤 침략자라도 우리나라를 직접 공격하면 패배와 불길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시 푸틴의 이 발언은 실제 핵무기 사용 의도라기보다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 개입을 막기 위한 위협용 카드로 해석됐습니다.
‘핵 위협’ 수위 높이는 푸틴 “허풍 아냐”
하지만 지난달 들어 상황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예비군 30만 명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예비군 소집, 이는 러시아군이 예상보다 더 열세라는 정황 증거가 됐습니다. 궁지에 몰린 푸틴이 핵버튼에 손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그날 푸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러시아는 다양한 파괴 수단을 갖고 있다. 러시아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이는 허풍이 아니다.”
이에 대해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만일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심각한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 뒤에도 푸틴의 핵 위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30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토를 지키겠다.” “미국은 일본에 두 차례 핵무기를 사용하는 선례를 남겼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점령지 4곳에 대한 불법 병합을 선언하면서 한 말입니다.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라고 우기면서 영토 방어를 위한 핵무기 사용의 명분을 쌓았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저위력 핵무기 써야”‥푸틴 측근의 위험한 발언
급기야 다음 날인 1일, 푸틴의 최측근이 핵무기 사용을 부추기고 나섰습니다.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은 "개인적인 의견으로, 국경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저위력 핵무기를 사용하는 보다 과감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소총과 탱크 전투에서 밀리니까 소형 핵폭탄을 터트리자는 겁니다.
카디로프(46)는 푸틴에게 절대 충성하는 인물로, 푸틴의 지원을 업고 30세에 체첸 대통령이 됐습니다. 인권 탄압으로 체첸을 통치하는 ‘푸틴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초기부터 참전했습니다.
카디로프의 발언 의도가 단순히 푸틴의 비위를 맞추려는 건지, 실제로 전술핵을 쓰라는 건지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매우 위험한 언행임은 분명합니다.
전술핵도 핵무기‥"자멸의 길"
그렇다면 저위력 핵무기 사용은 위험성이 덜할까?
영국의 저명한 민간 군사문제 연구소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윌리엄 알버크 국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알버크 국장은 나토에 근무하면서 무기통제·군축·핵확산방지 분야에서 25년 이상 경력을 쌓은 전문가입니다.
알버크 국장은 지난 10일 IISS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전장에서 우크라이나 군대를 물리치려면 한 번의 공격이 아닌 수십 개의 전술 핵무기가 필요할 것이다. (미국 육군의 1977년도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미 육군은 60마일(약 96km)의 전선에서 결정적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136번의 핵 공격 계획을 세웠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선은 현재 400마일에 달한다.”
알버크 국장은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군인들의 방사능 공포와 피폭 위험, 우크라이나 점령지·벨라루스·러시아에 떨어질 낙진, 그리고 주민들의 공포가 엄청날 거라고 우려합니다.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77년 간 금기였던 핵무기 사용은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지를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한마디로 러시아의 의도와 정반대로 역풍이 분다는 겁니다.
알버크 국장은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핵전쟁 가능성을 낮게 봤습니다. 그래서 알버크 국장의 글 제목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입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7일, 상대적으로 파괴력이 약한 전술핵이라고 해도 한쪽이 핵무기를 쓰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체면 구긴 푸틴, 최종 선택은?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일,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거론해서 미국 언론들을 바짝 긴장시켰습니다.
"상황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래 처음으로 우리는 핵무기 사용의 직접적인 위협에 처하는 것이다." 바이든의 말대로라면 핵전쟁의 위험성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바이든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래 아마겟돈이 일어날 가능성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푸틴의 핵 위협이 성경에 나오는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에 비유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겁니다.
당시 백악관은 곧바로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거란 징후는 없다”고 진화에 나섰는데, 바이든의 강경 발언은 푸틴의 말폭탄에 맞대응하는 차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1일엔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바이든은 CNN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게 얼마나 현실적이냐는 질문에 "나는 그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알버크 국장의 분석이 빗나갈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바이든의 예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위신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 최고 권력자는 ‘강대국 러시아’를 재건했다고 외쳤지만, 국방비가 러시아의 10분의 1 규모인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고 있습니다. 미국 CNN 방송은 푸틴이 ‘굴욕, 아니면 핵 사용’의 궁지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푸틴은 이성적인 행위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푸틴에게 보내는, 비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보입니다.
러시아의 핵은 푸틴에게 최종 결정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명한 핵 전문가인 한스 크리스텐센 미국과학자연맹 핵정보국장의 최근 SNS 글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알버크 국장의 글을 ‘탁월한 분석’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푸틴도 핵무기 사용이 좋지 않은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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